결혼고발 9. 나는 왜 남편을 ‘친절하게’ ‘가르쳐야’ 하는가

생각하다가사 노동결혼과 비혼

결혼고발 9. 나는 왜 남편을 ‘친절하게’ ‘가르쳐야’ 하는가

사월날씨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신랑이 요리는 곧잘 하는데, 하는 과정이 문제야.

신혼생활은 어떠냐는 물음에 친구가 답한다. “집에 있는 냄비란 냄비, 집기란 집기는 다 꺼내서 써.” 아하, 그건 뻔하다. 친구 남편은 분명 설거지를 안 할 것이다. “그러지 말라고 하면 또 삐져.” 휴, 가르치는 것도 일이다. “기분 좋을 때 말해야 그나마 듣는데 타이밍 맞추기가 어려워.” 친구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답답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식과 기술의 차이

나도 딱히 배운 적 없지만 그저 상식처럼 아는 가사노동의 기초 지식에 관하여 남편은 놀라울 정도로 백지장이었다. 둘 다 자취 경험이 없고, 모든 가사노동을 엄마에게 의존하며 살아왔으나, 나와 남편의 출발지점은 꽤 달랐다. 나는 알게 모르게 엄마가 일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폈는지, 나의 집안일을 맞닥뜨리니 엄마가 어떻게 했는지 저절로 기억이 났다. 적성과는 별개로 가사노동을 미래의 내 일로 여기며 자랐는지도 모른다. 딸과 아들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용인하는 선이 다르므로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설거지조차 가르칠 게 산더미였다. 분명 남편은 결혼 전 본가에 살 때 종종 설거지를 맡았다고 했다. 그럼 그때 남편이 설거지를 다 했다고 주장하는 후의 부엌, 즉, 거품이 흥건한 싱크대, 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는 컵, 기름 튄 가스레인지와 벽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연히 그림이 그려진다. 싱크 안 접시들만 쏙 설거지해놓고는 “으아, 힘들다.” 하며 소파에 눕는 아들에게 시모는 흐뭇한 미소로 고맙다고 하셨겠지. 우리 아들 장하다고까지 하셨으려나. 이 사회가 아들을 키우는 익숙한 방식이다. 

그렇게 자란 남자와 결혼한 나는, 빨래는 탁탁 털어서 널어야 구김이 가지 않는다는 것마저 알려줘야 하는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남편이 기분 상하지 않게 받아들일 만한 적당한 타이밍을 찾아서, 가능한 한 친절하게.

몰라도 당당하다

서두에 쓴 친구의 사례를 포함하여 내 친구들과 나는 결혼 후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우리는 성격이나 자라온 환경, 로맨틱 파트너 취향까지 모두 다르지만, 기혼여성이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만으로 같은 고민을 갖게 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나는 남편보다 가사노동을 더 잘 안다. 그래서 남편의 비효율적이거나 어떨 때는 완전히 틀린 행동을 목격한다. 스스로 적응하고 나아지길 기대하며 지켜보다, 안 되겠다 싶어 알려준다. 약간의 답답함이 섞인 말이 남편에게 지적으로 들린다. 그러자 남편이 말한다. “그것 좀 모를 수도 있지, 왜 화를 내요? 친절하게 알려줘야 나도 할 마음이 들 거 아니에요!” 나의 인내심이 애를 쓴다. 반복되는 당신의 잘못된 행동을 보며 참아왔는데, 그 답답함을 누르며 겨우 말했는데, 돌아오는 건 더 상냥하라는 주문이다. 모르는 사람은 당신인데, 알려주는 내게 맡겨놓은 것처럼 감정노동까지 요구하며 당신은 왜 그리 당당할 수 있는가.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다. 본인이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에게는 일단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모른다는 걸 알았을 땐 알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나. 특히 고정된 성역할 때문에 배우자가 부당하게 가사노동의 짐을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배우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게 당당한 일이 될 수는 없다. ‘네가 친절하게 알려주면 해볼까 싶지만, 아니면 하기 싫어져. 내가 안 하는 건 화내는 네 탓이야’라는 건 너무도 비열한 태도다. 본래 가사노동에 대해 달갑지 않은 마음을 상대 탓으로 돌리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듣기 좋은 말로 부드럽게 페미니즘 해야 들어주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남편에게 없는 것

애써 답답함을 누르고 최대한 친절을 발휘해도 남편은 크게 배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시켜야 겨우 했고, 시키는 것만 했다. 집안일에 있어서 유난히 발전이 더뎠다. 남편이 제 몫을 해내지 못하는 동안, 모든 부담은 내 몫이었다. 가사노동이란 한 쪽이 게으름을 피우면 딱 그만큼 다른 쪽이 부담을 지기 마련이다. 조모임 과제 같은 것. 가사노동에 무심한 남편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그래도 되는 사회 분위기, 즉, 가사노동에 무지하고 책임의식 없는 남성상을 용인하는 차별적 성역할에 분노했다.

남편은 왜 아무 상관없는 본인 책임과 내 상냥함 여부를 연결 지으며 핑계를 대는가. 왜 본인 임무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거쳐 나아지지 않고 미숙한 시행만을 반복하는가. 업무를 모르면 배워야 하고, 업무방식에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는 게 담당자의 역할 아닌가. 일할 때 언제나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애쓰는 현대인들 아닌가.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남편은 가사노동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남편에게 가사분담에 관해 토로하던 중, 내가 외쳤다. 

당신은 집안일에 주인의식이 없어!

무심결에 나온 말이었지만, 말해놓고 보니 무척이나 정확한 언어다. 아내가 시켜서 하는 일, 아내를 돕기 위해 하는 일, 이 순간만 임시로 하는 일, 어쩌다 보면 안 할 수도 있는 일로 여기기에 딱 그 정도 퍼포먼스가 나오는 거였다.

남편은 회사에서 결코 이런 태도로 일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로 치면, 업무 범위와 방법에 대해 모르는데, 파악하려는 의지가 없으며, 동료에 대한 배려조차 없는 신입사원이다. 남편은 모든 기획과 관리를 내게 떠맡기고 자꾸만 내게 구체적인 임무를 할당받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잊지 말아야 할 건 나도 같은 신입사원이라는 사실이다. 가정이라는 조직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함께 일하는 동료다.

여성의 수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자에게 말한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며, 무한한 칭찬과 인정으로 가사노동에 ‘참여’하게 만들라고. 그래서 여자들은 고민한다. 남편이 가사노동을 잘 배우고 수행하도록 어떻게 독려해야 하는지 방법을 연구한다. 그런데 이 방법이 과연 효과적인가? 아니, 그 전에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여자들은 언제까지 밥 안 먹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것처럼 남편 엉덩이를 두드리며 청소기를 쥐여줘야 하나. 남편이 그까짓 기분이 상해서 마지못해 시늉만 하던 자기 몫의 가사노동까지 포기해버릴까 봐, 우리는 언제까지 전전긍긍해야 하나.

가르치는 것도, 친절한 것도 나의 에너지 소모지만, 결국 칭찬받는 건 언제나 남편이다. 집 안과 밖에서 그렇다.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을 가르쳐놓아도 나의 노고를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내 친구들조차 나의 고통에는 공감하지만, ‘대단하다’는 말 앞에는 남편을 주어로 놓는다. 집안일을 잘해서, 못해도 해보려고 해서, 지난번보다 나아져서, 스스로 하려고 해서, 가르쳐줬을 때 짜증을 안 내서. 온갖 이유로 전 지구가 남편을 칭찬한다.

“그래도 네 남편은 시키면 하기라도 하지.”, “네가 힘들다고 말하면 따라주잖아.” 같은 말들은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남편의 관리자가 아니다. 시킨 일을 해서 칭찬받는 존재는 나와 동등한 성인이라 할 수 없다. 게다가 아내가 남편에게 하도록 유도되는 우쭈쭈는 서로 수고했음을 알아주는 격려나 감사 표현과 거리가 멀다. 남편의 가사노동에 대한 과도한 칭찬과 인정은 결과적으로 “내 일을 대신해줘서 고마워.”를 의미할 뿐이다. 남자는 임금노동, 여자는 가사노동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고다. 우리는 제 몫의 가사노동을 하는 남자들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무엇보다 배우자 의견에 귀 기울이고, 대화를 통해 합의에 다다르고, 그에 따라 행동을 바꾸려 노력하는 건 함께 가정을 꾸리기로 결정한 성인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다. 나는 나의 요구에 불성실하게 대응하는 사람과 미래를 도모할 수 없을뿐더러, 나의 고통에 무감하며 이기적인 사람을 사랑할 자신도 없다. 남성 배우자에 대한 사회적 하한선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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