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을 위한 조언의 실체
대학에서 재무관리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여학생들은 회계사 준비 많이 하세요.” 교수가 인자하게 우리를 독려했다. 업무시간이 여유롭고, 일정 기간 쉬었다가 다시 일하기도 용이해서 여자가 하기에 좋은 직업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 학기에 나는 여성학개론을 수강하며 성평등에 관해 배우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위 발언의 문제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너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를 전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한계에 가둘 거라곤 그 자리의 나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그다음 주 여성학개론 수업에서 일상 속 성차별을 주제로 토론하던 중, 한 학생이 나와 같은 재무관리 과목을 듣는지 위 발언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교수와 학생들이 명백한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규탄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성차별 발언에 대해 ‘아 그런가⋯⋯.’ 정도로 수긍했던 것에 1차 충격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들으면서도 그게 왜 성차별인지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데 2차 충격을 받았다. 속으로는 저 발언이 현실적인 내용이고, 재무관리 교수가 여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한 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조금 했던 것 같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교수의 발언은 여성의 직업선택에 한계를 두고, 자유로운 능력발휘를 가로막는 발언이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임무를 잘 해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여성을 위한 조언이 아니다. 여성의 이중 노동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남성-을 위한 조종이나 다름없다. 여성에게는 교사나 공무원 등의 안정적인 직업(객관적인 시험을 쳐서 들어가고,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고, 정년이 보장되는 등)이 좋다는 말은 현실적으로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현실이 왜 그렇게 됐는지, 기울어진 현실에 대한 아무런 인식 없이 ‘여자에게 좋은 직업’을 권하는 것은 뿌리 깊은 성차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제 차별
결혼했는데 왜 들어오셨어요?
결혼 후 새로 들어간 직장 사람들이 묻는다. 여성은 가정을 ‘책임’지는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임금노동이 갖는 의미는 타인과 조직, 사회에 의해 평가절하된다. 여성의 최우선 본분은 가정을 돌보는 일이기에 여성의 임금노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인식, 그것은 일터에서 여성에 대한 실제 차별로 이어진다.
결혼 및 임신은 직장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극단적으로 다른 ‘사건’이다. 남성이 결혼하고 배우자가 임신하면, 갑작스럽게 조직은 그가 책임감이 생기고, 업무능력이 커진 것처럼 대우한다. 어깨가 무거워졌다며 높은 고과를 몰아주고 좋은 포지션에 앉히는 식이다. 반면에 같은 상황이 여성에게 발생하면, 그는 조직에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는 동시에 업무능력이 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육아휴직이라도 다녀오면 승진과 고과는 포기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여성은 ‘가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성들에게 성과를 양보하거나 희생하도록 종용받지만 ‘가장’이나 ‘책임’은 핑계에 불과하다. 여성이 실질적 가장이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으니까. 여성이 사는 세상과 남성이 사는 세상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다르다.
얼마 전, 올해 대리로 승진한 성실하고 유능한 친구를 만나 진로에 관한 고민을 나눌 때였다. 지금 직장에도 만족하지만, 좀 더 넓고 다양하게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업계 선도 기업으로의 이직을 고려하다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내년 초쯤에 임신 계획이 있는데, 지금 이직하면 몇 개월 다니다가 임신을 하는 거고, 그건 너무 치명적이잖아.
어떤 부연 설명 없이도 자동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는 게 무척이나 씁쓸했다. 여성의 임신이 커리어에 치명적인 게 현실이다. 면접에서 여성에게는 애인, 결혼, 임신 계획의 유무가 주요 질문으로 등장한다. 대학원에서 박사를 시작할 때, 얼마 동안은 임신하지 않겠다고 교수에게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여성에게는 기회와 임금도 적은데, 결혼 및 임신은 공적 영역에서의 입지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여성 직원이 결혼하면 계약직으로 밀어내고, 임신하면 퇴사를 종용한 남양유업의 사례는 극단적일지언정 상징적이다. 또한, 이로 인해 경력이 끊기면 이후 커리어는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어려운 구조를 강화하고, 남성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킨다. 그리고는 경제적 의존을 이유로 여성의 모든 무급노동을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여성 개인에게 지워지는 부담
이렇듯 사회에서 여성이 설 자리를 마련해놓지 않은 채, 여자는 남자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기업 입장에서 여성 채용은 손해라는 등의 기울어진 시장논리로 또다시 비난의 화살을 여성에게 돌린다. 여성은 커리어를 지켜내는 데 너무 많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자신의 진로 계획에서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를 장벽으로 고려해보지 않은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불합리한 현실의 결과는 모조리 여성 개인에게 부담 지워진다. 임금노동과 가사/육아노동을 병행하기 위해 여성은 시간, 체력, 돈을 바닥까지 끌어다 써야 한다. 게다가 일 욕심 많고 이기적이라는 주변의 부정적인 인식까지 감내해야 한다.
여자로 산다는 건 어떤 행동을 해도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는 것만 같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커리어를 지속해도 이기적이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고 커리어에 집중해도 이기적이며, 전업주부를 하면 남편 돈으로 놀고먹어서 이기적, 결혼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비난받는, 모든 선택지가 벌칙인 삶이다.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까지
그러나 결혼이나 출산을 민폐로 만드는 건 개인이 아니라 사회다. 조직이 해야 할 일을 구성원에게 떠넘김으로써 당사자를 민폐로 만든다. 정당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나 차별을 방지할 시스템은 커녕 오히려 아직 하지도 않은 결혼과 출산을 핑계로 취업에서부터 불이익을 줘버린다. 국민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사례가 그렇고, 무려 공공기관인 가스안전공사의 사례가 그렇다. 온 사회가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조적이고 치밀하게 배제해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니 정작 이기적인 건 여성이 아니라 여성의 자리를 빼앗고 각자 책임을 다하지 않는 국가, 기업, 그리고 남성이다. 기업은 채용, 평가, 승진 등의 영역에서 여성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국가는 이러한 기업을 지원 및 규제하며, 경력단절 여성과 양질의 보육을 위한 법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자신의 몫에 해당하는 가사와 육아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사회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보장하고, 조직 내 성폭력에 강력하게 대처하고, 남성중심적인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 일까지. 여성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보장되어야 할 항목들이 이렇게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