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고발 8. 유난히 돌봄노동에 서툰 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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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고발 8. 유난히 돌봄노동에 서툰 남성들

사월날씨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쉬이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당시에도 별일 아니게 넘겼고, 새삼 떠올려봐도 딱히 감정이 요동치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얼룩처럼 남아있는 장면. 그제야 아, 그게 나한테 중요한 무언가였구나, 거꾸로 깨닫게 되는 것 말이다.

나는 자주 열감기를 앓았고, 그날도 그랬다. 전과 다른 점이라면, 엄마집이 아니라 새로운 집에 누워있다는 것. 침대 하나 놓으니 겨우 문이 닫히는 작고 캄캄한 방에서 나는 조용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푹 자요.” 남편이 다정하게 말한 뒤 문을 닫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거실에서 티비 보는 남편의 웃음소리를 멀리 들으며 누워있던 순간. 그때 나는 쓸쓸했나, 서글펐나, 이제야 떠올려볼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속옷 순서를 몰라?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꾸준히 불평등을 줄여가고 있지만, 나는 결코 평등한 관계를 이루었다 자신할 수 없다. 나와 남편 모두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인 특성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성역할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돌봄노동의 불균형을 깨달은 건 결혼 후 1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1년 반은 상대의 생활양식을 관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어느 날, 샤워를 마치고 새 속옷을 미처 챙겨놓지 않았던 나는 욕실 문 너머로 남편을 불렀다. 잠시 후 남편이 건넨 것은 내가 가장 불편해하는 속옷이었다. 다른 걸 요청하자, 남편은 귀신같이 내가 그다음으로 잘 안 입는 속옷을 가져오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순서에서 정확히 반대로 골라오는 우연에 실소가 나왔다. 그러나 몇 번의 퇴짜가 오간 후, 결국 원하는 속옷의 디테일을 소리치면서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나는 남편이 선호하는 속옷의 순위와 이유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우연히 알게 된 게 아니다. 남편이 날 붙잡고 이 속옷은 고무 밴드가 편하고, 저 속옷은 디자인이 예뻐서 좋다고 알려준 것도 물론 아니다. 그것은 끈기 있는 관찰로 인한 보살핌의 시작이었다. 결혼 후 내가 남편의 생활양식에 관해 알아나간 건 속옷 순위만이 아니었다.

나는 알고 남편은 모르는 것

남편이 외출 준비를 할 때, 나는 그가 지금 몇 번째 단계에 있는지 안다. 외출 준비 과정이 총 몇 단계로 구성되는지, 단계마다 몇 분이 소요되는지도 안다. 그래서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게 드라이기인지 로션인지, 다음에 그가 찾을 것이 칫솔인지 양말인지 알 수 있다. 얼핏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머리를 감았으면 드라이기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사해 보여도 반복되는 일상 업무에는 자신만의 순서가 있기 마련이고, 드라이기를 쓰는 시점이란 사람마다 미묘하게 다른 것이다. 남편은 나의 단계와 필요를 모른다. 시간에 쫓겨 남편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나는 아주 상세하게 오더를 줘야 한다. 가령, ‘침실 옷장의 첫 번째 서랍에서 오른쪽 앞쪽에 있는 검은색 기모 레깅스를 가져다 달라’는 식으로 말이다. 반대 상황이라면, 나는 지금 남편에게 필요한 게 기모 레깅스라는 것도 알 테고, 그게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겠지만, 남편은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남편의 건강 상태를 본인보다 더 잘 파악한다. 그래서 종종 이런 대화가 오간다. “당신 좀 피곤한 것 같아요, 컨디션 안 좋아요?”라는 나의 물음에 남편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라는 식이다. 또한, 날씨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나갈 때, “오늘 일교차가 심하다는데, 당신 저녁까지 일정이 있잖아요. 맨발에 샌들은 추울 거예요. 운동화가 낫지 않겠어요?”라며 양말을 챙겨주는 것도 나만의 일이다.

돌봄노동 불균형

이들을 종합하면, 상대를 케어하는 일이다.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를 깊이 살피고 신경 쓰는 일. 나는 왜 남편의 신변잡기적 문제를 남편이 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가? 더 나아가 남편이 스스로 인지하기도 전에 알게 되는 건 대체 왜일까?

내가 남편보다 유난히 케어기버(care-giver)적인 성향인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관심 영역이 신변잡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남편 또한 결코 세심함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 대체로 무심하지만, 본인이 관심 갖는 분야에선 누구보다 섬세하다. 화분에 물 주는 시기를 꼼꼼히 체크하고, 토마토를 볶고 난 프라이팬은 산성 때문에 곧바로 물에 헹군다. 그저 ‘자기 일’의 범위가 매우 좁을 뿐이다.

누구는 그럴 것이다. 개개인의 기질 차이 아니겠냐고, 선천적으로 돌봄을 잘 수행하고, 좋아하는 성향을 타고나는 것 아니냐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건 기질이 발현되는 환경이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나는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아빠 속옷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고, 아빠가 샤워하고 나를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 속옷을 건넸다. 그렇다면 나는 세심한 돌봄을 잘 수행하는 기질을 타고난 걸까, 그런 기질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걸까. 내가 남자아이였어도 나는 나의 돌봄 기질을 이만큼 발휘하며 컸을까.

그렇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길러진 거다

아빠가 나한테 속옷을 갖다 달라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내 오빠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아마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자기 볼일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빠에 대한 돌봄노동이 본인과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학습하면서.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와 살아도 나와 오빠의 성장 환경은 같지 않았다. 엄마는 외출할 때마다 냉장고에 미리 준비해둔 끼니를 오빠가 아닌 내게만 설명해주곤 했다. 어떤 친구는 한창 놀다가도 남동생 밥을 챙겨주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귀가하기 일쑤였다. 남자 형제가 나이가 많든 적든 밥을 차려주는 일은 대부분 여자의 역할로 여겨진다. 밥을 잘 차리거나 밥 차리길 좋아하는 기질을 여자만 타고났다고 우길 수는 없다.

내가 오빠의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할 정도로 덜렁거리는 딸이었다면, 훨씬 더 엄격한 교육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오빠에게는 애초에 여동생 밥을 챙겨줄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사회화 과정에서 여아와 남아에게 요구되는 기질은 무척 다르다. 타인을 보살피는 건 성취감이나 만족감도 분명 있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다. 번거로운 업무를 하거나 안 하거나 평판에 그다지 상관없는 사람과, 수행하면 훨씬 더 많은 칭찬과 인정을 받고, 안 하면 은연 중에 차갑다거나 이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의 차이. 돌봄은 ‘여성스럽고’ 정 많고 따뜻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타인을 보살피는 일에 더 능숙한 상태로 성인이 된다. 돌봄노동에 있어서 실제로 여성이 더 능숙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정관념에 기반을 둔 사회화의 산물이다. 여자들의 모임에서 같이 먹고 싶은 걸 준비해오고,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것. 여자들의 멋진 문화다. 그런데 떠올려보자. 남자들의 모임은 어떤가.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르게 사는 건가. 이 차이를 정말 개개인의 기질 차이로만 설명할 수 있나. 여성에게 돌봄노동이 기대되고 요구되는 것을, 정말 무시할 수 있을까.

무심할 수 있는 특권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돌봄노동을 전가한다. 여성의 돌봄노동을 결혼생활의 조건에 포함시켜 놓았다. 아이가 생기면 남편은 아내의 2순위로 밀려나기 때문에 서럽다는 남자들의 뻔뻔한 어리광에는 이미 남자가 여자의 돌봄을 받는다는 전제가 포함돼 있다. 배우자와 사별한 노년 남성보다 노년 여성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산다는 경험적 가설은 아내가 남편에게 무얼 제공하는지 시사한다. 여성조차도 우스갯소리로 “나도 아내가 필요하다.”라고 할 때, 남편은 하지 않는 아내만의 돌봄노동이 확연히 드러난다. 동시에 이 사회는 남자에게서 돌봄노동 책임을 지우고, 그들의 서툰 모습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면 생기는 일’이라며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남성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전시하는 게 잘못된 이유다.

이분법적으로 한쪽 성별은 단순하고 무심하게, 한쪽은 섬세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도록 타고난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무심함을 용인받는 성별은 정해져있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특권이다. 남성은 무심해도 되는 권력을 가진 것일 뿐이다. 결국, 남편이 나의 생활방식이나 필요에 무심한 것, 내가 남편의 사소한 호오까지 관찰하고 인지하는 것은 철저한 사회화와 교육, ‘본능’을 학습시킨 결과다.

돌봄노동을 가르쳐야 하는 노동

내가 그날 남편에게 원했던 건 주기적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따뜻한 물을 가져오고, 체온을 재주고, 땀을 닦아주고, 방에 가습을 하고, 필요한 게 있는지, 불편한 데는 없는지 물어봐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나를 내버려 두었다. 방에서 혼자 끝없이 자다 보면 낫는다고 했다. 그게 남편이 내게 한 간호였다.

이후 나는 남편에게 내가 원하는 간호를 하나하나 말하고 가르쳤다. 내가 하는 간호를 보고 배우라고 했다. 나는 이런 것까지 남편을 가르쳐야 했다. 물론 남편에게 가르쳐야 하는 건 돌봄노동만이 아니었다. 다음은 가사노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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