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아버지 쪽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인다. 집안 둘째 아들인 아빠가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맡아왔기 - 그보다 엄마가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다 -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는 시골 할머니댁에서 모이자는 고모부의 제안이 있었다. 친척들의 SNS 대화방에서 그것을 보고 나는 무척 반가웠는데, 장소를 제공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명절 부담이 꽤 줄어드는 까닭이다.
다만 사위인 고모부가 아니라 엄마나 작은 엄마, 그러니까 며느리가 이런 의견을 평화롭게 제시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며느리에게는 애초에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 데다, 더구나 며느리의 노동을 줄이는 방향의 대안이라면 반발과 투쟁을 각오해야 할 테다. 며느리에겐 노동할 의무가, 사위에겐 제안할 권리가 먼저 부여된다. 사위가 대접받는 가족이라면, 며느리는 대접하는 가족인 셈이다.
다 같이 시골 가는 계획을 짜고 있을 무렵, 문득 고모가 강력한 무효 사유를 던진다. 내 오빠가 시골에 오기 힘들 거라는 우려다. 이때 참석 고려 대상에 같은 부모를 둔 나의 이름은 오르지 않는다. 늘 오빠와 묶여서 불려왔던 나는 오빠와 동등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여겼으나, 대단한 착각이었다. 오빠와의 차별 대우가 대놓고 드러날 기회가 없었을 뿐. 결혼한 아들과 달리, 결혼한 딸은 첫 번째 가족이 될 수 없었다.
며칠 후, 대화방 알람이 울린다. 오빠가 해외 출장이 잡혔다고 하니 원래 계획대로 시골에 가자는 아빠의 말이다. 여전히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고 다들 한목소리로 말한다. ‘출가외인’은 낡고 시대착오적인 용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결혼 후 나는 우리 집안에서 암묵적 출가외인이 되어 있었다.
딸보다 앞서는 며느리 정체성
나와 남편의 합의에 따라 ‘이번 명절은 내 본가를 먼저 방문할 순서’라고 말했을 때, 엄마 대답은 “아이고 됐다.”였다. 그냥 ‘평범’하게 시가부터 가라는 뜻이다. 명절 당일에 딸 얼굴 보는 것조차 마음 편치 않은 ‘딸 가진 죄인’의 연장선이다. 명절에 시가 먼저 가는 게 당연한 기울어진 세상에서는 평등으로 향하는 길이 낯설고, 낯설어서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이 된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혹은 모두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길 바라는 것은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 전제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기존 사회구조 안에서 억압당하는 사람이 구조적 문제를 바꾸고자 노력할 때, ‘평범함’과 정반대로 행동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명절 양가 방문 순서를 번갈아 가며 바꾸자는 규칙은 가부장제에 대한 우리 부부의 저항이자 평등한 부부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명절 당일 아침에 어느 가족과 함께 있을지를 정하는 실재적 효과 외에도 성평등적 가치에 관한 상징성을 갖는 액션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규범에 불응하는 게 불편한 내 부모에게는 유난스러운 딸의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다. 지난번엔 시가를, 이번엔 본가를 먼저 방문하는 것은 내 부모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한다.
이렇듯 기존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온 부모이기에 딸을 가부장적인 틀로 억압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된다. 가끔 부모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사례를 듣곤 한다. 며느리에게 부조리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딸이 시가에서 겪는 부조리에 분노하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나는 차라리 그게 부럽다. 일관적으로 가부장적인 내 부모는 딸조차 며느리 역할에 가두어 버린다. 나를 볼 때, 딸보다 며느리 혹은 아내로서의 정체성을 우선하는 것이다.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딸은 부모에게조차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존중받기 어렵다.
남편과 시가의 소유물
결혼 초, 부모 집을 벗어나 내 집을 직접 관리⠂운영하는 게 벅찼던 나는 종종 살던 집을 찾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에 집에 가겠다고 말하면, 늘 엄마의 첫마디는 “김 서방 저녁은?”이었다. 내가 본가를 찾아가든 공적이거나 사적인 일이 있든 엄마는 나의 안부보다도 남편의 끼니를 먼저 묻곤 했다. 남편은 외식할 거리가 널린 현대사회의 서른이 넘은 성인이며, 게다가 요리를 좋아해서 스스로 끼니를 즐겁게 잘 챙겨 먹음을 수차례 증명하고 나서야 부모의 끼니 걱정은 멈췄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혼자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김 서방은 뭐하고?”라 묻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 물음은 꼭 ‘너의 주인인 남편이 허락했느냐’, ‘남편을 챙겨야 하는 너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니냐’라고 묻는 것만 같아 영 꺼림칙하다.
비출산을 고려 중이라는 말에 아빠는 “사위 부모님께 죄송해서 어떡하나”라며 한숨을 쉰다. 나를 ‘시가에 아이 낳아주는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내 아빠다. 만약 내 오빠가 아이를 안 낳는다고 했어도 아빠는 며느리 부모님께 큰 불효라고, 뵐 면목이 없어 고개를 들 수 없다고, 그렇게 말했을까. 내 아이를 시가 소속으로 보는 아빠가 내 자식과 오빠의 자식을 과연 똑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딸과 아들, 딸과 사위, 딸 손주와 아들 손주(외손주, 친손주란 말은 쓰고 싶지 않다)에 대한 차별은 이미 우리 집 안에서 시작되었다.
여성을 남편과 시가의 소유물로 보는 인식은 실로 매우 보편적이다. 부모조차 자신의 딸을 생면부지 남성과 그 집안에 속하는 존재로 여기는데, 남들은 오죽하고, 시가는 오죽할까. (시가에서 며느리를 자기 소유로 여기는 점에 관해서는 결혼고발 4. 며느리에 대한 권리의식 편에 기술하였다.) 여성을 종속적 존재로 치부하는 인식의 부작용은 좁게는 아내가 남편의 커리어를 따라 장소나 시간을 맞추는 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시작하여, 넓게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사회적으로 경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성의 주인이 남성이라는 무의식적 인식은 한결같아 보인다. 결혼식장의 신부가 아버지 손에서 남편 손으로 넘겨지는 장면이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다.
딸은 우선순위에서 탈락한다
명절 현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여성 억압과 차별을 보기 싫어도 독박명절노동하는 엄마를 두고 혼자 빠져나올 수 없어서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고 노동에 참여하는 건 나, 딸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집안의 진짜 주인은 부엌이 분주할 때 어떠한 부채감도 없이 방에 드러누워 있거나 밖으로 나돌다가 완성된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하고 술을 따르던 아들, 내 오빠인 것이다. 그걸 이제서야 깊이 체감한다.
결혼 후에도 오빠는 여전히 내 부모의 자식이지만, 나는 시부모의 며느리가 되었다. 오빠는 늘 부모의 자식이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그에 변함이 없다. 그러나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원가족 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버렸다.
나의 우선순위는 어디까지 밀릴까. 부모의 장례식 때, 남자 형제가 없으면 상주는 나의 남편이 된다. 내가 아니면 아무 상관없는 남일 뿐인 사위가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나를 제치고 내 부모의 상주라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밀린다는 것은 명절에 참석할 수 없는 일정이 잡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들에게 밀리는 딸, 사위에게 밀리는 딸, 모든 남성에게 밀리는 여성의 위치인 나는 가족으로서 대체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의무와 이중 노동
그러나 우스운 건 권리에서는 밀리는 딸이 의무에서는 우선시 되는 장면이다. 딸의 존재는 명절 일정에서도, 결혼 지원금에서도, 유산 분배에서도 앞서지 않지만, 부모 봉양, 돌봄노동, 감정노동에서는 가장 먼저 불린다. 엄마는 아들에겐 하지 않는 하소연을 딸에게만 분출하며, ‘내가 너 아니면 어디다 이런 소리를 하겠냐’고 말한다. 부모가 입원한 병원에 자주 찾아오지 않는 아들보다 딸에게 훨씬 더 박한 평가가 내려지고, 아내, 딸, 며느리, 여동생이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환자 간호를 위해 병실을 채우는 건 익숙한 풍경이다.
딸에게 강조되는 도리나 주어지는 과제 같은 것들을 떠올리고 있자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예를 들어, 나는 분명 시가에서 며느리라는 이유로 가족 행사를 챙기도록 독려받는데, 본가에서도 딸이니까 가족 행사를 살펴야 한다. 날짜를 체크하고, 일정을 잡고, 선물을 준비하는 건 아들과 사위의 일이 아니라, 딸과 며느리의 일로 간주된다. 그래서 이쪽 집의 딸이자 저쪽 집의 며느리인 여성에게는 이중 노동이 부과되고 만다. 남성이 쏙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권리는 적고, 의무는 가득한 여성의 위치는 며느리일 때나 딸일 때나 아내일 때나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어디서도 주인공이 아니다
결혼 후, 내 부모에게 나는 두 번째 자식이 되었다. 이것은 가부장제의 문제다. 그러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나를 자식이기보다 딸로, 딸보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로 여기는 내 부모의 문제다. 개별적 존재로서 딸의 행복을 고려하기보다 성 고정관념에 갇혀 생각되는 대로 생각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이 차별적 인식을 재생산하고 공고화하는 현상이다.
내 부모에게 두 번째 자식인 내가, 당연히 명절에 먼저 찾아가야 하는 시가에 가면, 나는 그곳에선 어떤 존재인가. 어디서도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