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남녀를 떠나서’라는 단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별이 다르다는 게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일 때조차 ‘남녀를 떠나서 인간의 문제로 보자’는 이들을 가만 보면, 정말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 같지는 않다. 여성이 약자라는 사실을 (여성 자신조차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자체가 불편하고, 나는 지금 충분히 살 만하니 아무 불평 말고 살던 대로 살자는 것과 다름 없는 말이다.
정작 ‘남녀를 떠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성별을 의식하고 싶지 않은 건 바로 성차별을 지적하는 사람들이다. 제발 성별을 떠나서 누구나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성별이 개인의 삶을 결정짓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여성과 남성이 서로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게 지금 처한 현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잡을 때까지는 결코 ‘남녀를 떠날’ 수 없는 것 뿐이다.
장벽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커리어 패스에서도 ‘남녀를 떠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여성이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은 남성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다르고, 또 어렵다. 능력, 학력, 경력 등이 모두 동일할 때조차 여성이기에 부딪치는 환경적인 장벽은 훨씬 높고 단단하다. <여자 앞길 막는 사회>는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진로장벽에 초점을 맞추었다. 채용 차별, 성별임금격차, 유리 천장, 유리 벽, 성폭력 문화, 편견 등 조직 내에서 마주하는 문제에 중점을 둔 게 시즌1이었고, 양육 차별, 교육 차별, 아내/엄마라는 역할의 장벽, 모성 불이익 등 가정과 연관된 문제를 다룬 게 시즌2였다.
각각의 문제 영역에서 구조적인 요인을 짚고 여성이 처한 상황을 알리면서, 더불어 지금껏 여성들이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그리고 대처에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함께 다루었다. 이제 그것들을 종합하여 여성이 장벽을 헤쳐나갈 때 도움이 될 만한 전반적인 태도와 전략을 제안하며 연재를 마무리하려 한다. 이것은 그간 진로장벽을 다루며 개인으로서 어떤 지향점을 가지면 좋을지 생각해본 내용이다. 모든 항목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고, 경우에 따라 자신과 맞는 방법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다. 이것은 필수지침이 아니며, 각자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음을 거듭 말씀드린다.
여자 앞길 막는 사회에서 우리는,
1. 쇼맨십을 갖고 나대볼 수 있다
바쁜 것, 일이 힘든 것, 지금 어려운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 일을 해낸 것 등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건 운이 좋은 경우. 여성의 인생 사전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인정해주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은 자랑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나대지 않아야 한다는 규범 속에서 자라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남성이 자랑할 때는 태도가 아니라 내용을 봐 주지만, 여성은 태도가 문제의 전부가 되니까. 그렇지만 사회 규범이 원하는 대로 있는다면, 능력 없는 여성이 되기 쉽다. 능력을 인정받고 싶을 때, 눈 딱 감고 나대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2. 주장할 수 있다
권리를 주장하고 의견을 펼치는 일 또한 나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그러나 꼭 싸우거나 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해야할 말은 해보자고 생각해보자. 한 번 용기내기가 어렵지, 두 번은 훨씬 낫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으로 포지셔닝 되면 주장하기는 거듭 쉬워진다.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더라도, 혹은 목소리가 떨리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보자. 고집이 있다거나 무섭다거나 공격적이라는 피드백은 한 귀로 흘려보낼 준비를 하고.
3. 일하는 여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회사 안팎으로 모두 해당된다. 혼자는 힘들다. 같은 업계, 같은 상황, 혹은 전혀 같지 않더라도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감정을 갖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조언을 나누기가 훨씬 쉽고 또 유익하다. 나 자신과 내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성들을 만나자. 그리고 이야기 나누자. 무엇이든.
4. 내 커리어로 컨텐츠를 만들어볼 수 있다
글, 영상, 그림, 어떤 형태든 좋다. 상황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고, 좀더 소화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글이라면, 글을 다 쓰고 읽어볼 때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덤으로 개인 브랜딩이 될 수 있다. 꼭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내가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로 조직에서 나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5. 겸손보다는 당당할 수 있다
실패를 했을 때, 내 옆의 남자 동료를 보자.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을 때, 남자 선배를 관찰해보자. 100% 알지 못해도 안다고 말해도 된다. 남성은 20% 알면 안다고 말하고, 여성은 80% 알면 안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의 실패에 더 가혹한 환경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자신을 포함한 여성의 실패에 더 관대해져보자. 여자도 실패할 수 있다.
6. 나의 가치, 나의 목표를 세우고 정리하고 되새겨보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생각해보고, 목표를 만드는 것은 좀더 나다운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모이면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7. 위로 올라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자신을 의심하지 말고 내가 나를 믿어 주자.
8. 그럼에도 가질 수 밖에 없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해보자
지금 내게 이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자. 불안하다면 불안을 있는 그대로 써보고 말해보자.
9. 죄책감을 갖지 말자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것에 대해 내가 부족하다고 여기지 말자.
10. 내 탓보다는 남 탓을 하자!!
여성이 자책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 탓도 개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 의식하지 않아도 내 탓은 충분히 하고 있을 것이고, 자신감은 꺾어져 있을 수 있다. 바깥의 문제에 눈을 돌려 차라리 남 탓하고 정신건강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