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떠날 사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를 어려워하는 터라 같은 팀 남자 동기의 존재는 내게 큰 위안이었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회사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는데, 우리가 회사에 적응하는 속도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적응하는 속도가 빨랐다. 대부분의 팀 사람들이 신입사원의 존재에 익숙해졌을 무렵, 우리는 팀장과 함께 담소 자리에 있었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던 팀장은 나와 나란히 앉아 있는 동기를 가리키며 뜬금없이 경쾌하게 말했다.
나는 얘가 참 좋아. 왜냐면 얘는 절대 안 떠날 거거든!
동기에게 떠나지 말라고 주술을 거는 건지 나에게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각오를 보이라는 건지 팀장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있었다. 팀장에게 나는 언젠가 떠날 사람이었다. 입사한 지 일 년도 안 되었던 우리는 이곳을 떠날 건지 아닌지 미처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나나 동기의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단지 성별만으로 팀장은 우리의 예정 근속연수를 단정짓고 있었다. 속마음이 어떻든 결코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받는 사람과 반드시 떠날 거라는 확신을 받는 사람 중 누가 조직생활에 유리할지는 뻔하다.
네트워크에서 ‘언젠가 그만둘 존재’는 가치가 없다. 네트워크는 이용가치로 유지된다. 내게 정보를 줄 사람, 일처리가 쉽도록 도와줄 사람, 내게 충성을 바칠 사람, 잘릴 위험을 막아줄 사람. 그러니까 밀거나 끌어줄 거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성은 기대 받지 않는다. 의심 받는다.
고정된 성역할은 여성을 배제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가사와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는 사회적 압력은 ‘결혼하고 애 낳으면 그만둘 여성’이라는 편견을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을 그만두게도 한다. 근거는 증명되고 근거의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배제는 정당한 일이 된다. 여성은 더욱 설 자리를 잃는다.
이건 아주 좋은 알리바이가 되기도 하다. 성역할 때문에 여성을 차별한다기보다 여성을 배제하려고 전통적인 성역할을 고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여러모로 가정에서 남성들이 제 몫을 다 하도록 만드는 게 국가와 기업의 숙원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 연구자는 남성들이 전유하던 조직에 새롭게 등장한 여성의 존재는 남성들에게 자원과 기회를 감소시키는 위협이라고 분석한다1.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고 서로 끊임없이 주입하여 남성들만의 배타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떠날 사람이
떠맡는 업무
나의 팀장은 언젠가 떠날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 어리석은 짓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납득 가능한 행동이다. 내가 떠날 사람이라는 비합리적인 전제만 아니라면. 팀장 입장에서는 떠날 사람을 키워줄 필요도 없을 것이고, 떠날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중요한 업무를 처리할 거라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적당히 잡무를 하다가 때가 되어 떠나면 그만이다. 핵심 업무를 맡아서 일을 배우고 능력을 키울 기회를 얻는 건 절대 안 떠날 사람의 몫이다. 나와 남자 동기는 서로 다른 파트에 배정되었다. 누가 더 핵심 파트에 속했는지는 자명하다. 고과나 승진과 연결되는 중요한 직무에서 배제되는 보이지 않는 차별, 여성은 ‘유리벽(glass wall)’ 현상을 경험한다. 그리하여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제한되고, 조직에서 힘을 얻지 못하니 네트워크를 형성할 자원이 더욱 부족해진다1.
팀장의 말은 결과적으로 맞는 말이 되었다. 나는 조직을 떠났고 내 남자 동기는 여전히 남아 지금 과장이 되었으니까. 그곳을 떠난 나의 선택은 자발적이나 동시에 비자발적이다.
능력이 좋으면 덜할까?
'아니'
남성 네트워크에 속하지 못함을 깨달은 여성은 다른 전략을 취한다. 능력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전문 지식은 객관적이며 개인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용할 부분이 적기 때문이다2. 그러나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여성은 주변 사람들에게 ‘까칠한, 같이 일하기 힘든, 융통성 없는’ 평을 받으며 또 다른 편견에 갇힌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능력은 일 능력뿐만 아니라 관계 능력을 포함한다. 친분이 있으면 업무를 더 잘 처리해주고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어주는 전통적인 비합리성이 여전하다. 그리고 그 친함이란 여성이 남성과 만들기 어려운, 결코 남성들 간의 관계만큼 될 수 없는 무엇이다.
여성 네트워크
나는 팀회식보다 부문회식이 좋았다. 여자 선배가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든든했다. 팀 숫자인 열여섯 중 여자 둘이나 전체 부문 인원인 서른셋 중 여자 네다섯이나 아주 미미한 비율인 건 마찬가지라도 둘은 넷과 달랐고 넷에서 다섯이 되면 또 달랐다. 괜히 긴장이 약간 줄었고 조금 더 편안해졌다. 그들이 내게 특별히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도 그들의 존재만으로 나는 어떤 면에서 방패막이 생긴 기분이었다. 힘든 걸 이야기해본 적은 없지만 언제라도 말하면 이해해줄 거라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게 바로 연결일 것이다.
물론 여성의 네트워킹 활동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이중잣대가 여성의 네트워킹 활동을 제약하기 때문이다3. 멘토가 여성일 경우 조직 내에서 여성 멘토-여성 멘티의 결합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남자들의 담배 타임과 달리 여자들 간의 커피 타임은 그저 의미 없이 수다 떨고 노는 시시한 시간으로 여겨진다), 멘토가 남성일 경우 성적인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네트워크 형성이 어렵고, 그 연결도 약하다3.
그럼에도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그 효과는 분명하다. 멘토가 있는 여성이 아닌 경우에 비해 객관적인 경력성공과 주관적인 경력성공 모두 높게 나타났는데, 다양한 네트워크를 가질수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아 경력성공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게 확인되었다4. 특히 여성으로 구성된 네트워크에 속한 여성일수록 직장에서 더 높은 지위와 연봉을 달성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다른 여성들과 긴밀한 연결을 만드는 것이 여성으로서 겪는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5.
그리하여 아무래도 우리의 답은 여성 네트워크인 것 같다. 반갑게도 최근 여성들끼리 새롭고 단단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6. IT 업계에서 일하는 이공계 여성들이 모여 ‘테크페미’라는 단체를 만들고 여성 기획자 콘퍼런스를 연다.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연대체인 ‘여성디자이너정책연구모임(WOO)’과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네트워크인 ‘위커넥트(WECONNECT)’ 또한 멋진 사례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가 더 활발히 활동하고 더 많이 벌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서로 돕는 소셜 클럽”을 표방하는 ‘FDSC(Feminist Designer Social Club)’는 일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고충을 나누고 각자의 생존법을 공유하며 여성 디자이너가 사라지지 않을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7. 우리도 만들 수 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네트워크가 있다.
참고
1. 이은아 (1999). 기업내 남성 네트워크와 여성 배제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 원숙연 (2012). 공직 내 여성관리자의 현실. 한국여성학, 28(2), 75-107.
3. 김수한, 이재경, 윤은성 (2015). 여성관리자의 멘토 네트워크 형성과 소멸에 관한 종단적 연구. 조사연구, 16(1), 185-226.
4. 임희정 (2009). 조직문화, 멘토링 및 네트워킹이 여성관리자의 경력성공에 미치는 효과. 인사관리연구, 33(4), 95-120.
5. Shelley Zails (2019). “Power Of The Pack: Women Who Support Women Are More Successful”, Forbes, Mar 6.
6. 이정연, 최하얀 (2017). “남성들 끼리끼리 문화? 여성 네트워크 스스로 만들자고!”, 한겨레, 11월 20일.
7. 양으뜸 (2019). “이것이 여성 디자이너들이 생존하는 방법이다!”, 일다, 6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