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앞길 막는 사회 1. 동등한 기회라는 신화

알다커리어

여자 앞길 막는 사회 1. 동등한 기회라는 신화

사월날씨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편집자주: <결혼고발>로 핀치와 함께했던 크리에이터 사월날씨님이 여성과 커리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돌아왔습니다. 여성이 커리어를 가진 여성이 되고자 할 때 맞부딪히는 장벽과 편견을 낱낱이 뜯어봅니다. 

 

면접장에는 나 혼자 여자였다. 그날따라 나는 마지막 조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앞서 면접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 부서의 지원자들이 다같이 모여 있던 강당에서는 여자들도 여럿 있어 눈치채지 못했지만 내가 지원한 부서의 이름과 함께 불려나가는 사람들을 세어 보며 알았다. 내 경쟁상대는 모두 남자였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3인 1조로 들어가는 면접실 앞 의자에 나와 같이 들어갈 두 명의 남자와 나란히 앉아 생각했다. 뭔가 이상한데. 나 혼자 여자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면접을 보고 난 며칠 뒤에 나는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일러스트 이민

마지막 여자

사람들은 내가 이 부서의 마지막 여자라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 신입사원을 몇 번 뽑아봤는데 여기서 오래 버틴 사람이 없었단다. 두 번 연이어 여자 사원이 퇴사하자 부서 사람들은 다시는 여자를 뽑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나왔고 인사과에서 그걸 어르고 달래 마지막으로 여자 사원의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마지막 실험 대상이고 나마저 버티지 못하면 이 부서는 다시는 여자 직원을 들이지 않을 거라 했다. 여자 직원이 연이어 나가는 이유를 그들은 어느 정도 알았지만 함께 일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아무래도 남자가 많아 부서 분위기가 좀 ‘그럴’ 수는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걸 버티지 못 하고 나간 개인이 유약하다고 문제 삼았다. 그리고 그걸 여성 전체의 일로 만들고 모든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었다.

나는 하나 만들어놓은 여자의 자리에 들어간 셈이었다. 최소한으로 할당해놓은 한 자리를 두고 다른 여성과 경쟁한 것이었다. 내 경쟁상대는 남자가 아니었다. 면접장에 모인 그들과 동등하게 실력을 겨룬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들과 경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면접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성비는 조정되어 있었다. 여자라서 난 자리에는 운좋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실은 여자라서 남자들의 자리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성별 쿼터제의 실상

성비를 조절하는 쿼터제는 서류전형이나 면접전형에서 여성과 남성의 비율을 미리 정하거나 영업직과 같이 사실상 여성 지원자를 배제하는 직군을 뽑는 식으로 이루어진다.1 전통적으로 여성 지원자가 많은 식품, 섬유, 생활용품, 보험, 카드사 등에서 남성쿼터제를 주로 시행하고 있고 건설과 중공업, 남성 구직자가 선호하는 증권사는 남성 지원자들이 몰려 남성쿼터제를 시행하지 않는다.1남초회사에서는 여성을 최소한으로 뽑기 위해 시행하고 여초회사에서는 남성을 최대한으로 뽑기 위해 시행한다. 

사실상 남성 할당제를 시행하는 교대 입시나 공무원(1990년대 공무원 시험에서 시행되었던 여성 공무원 채용목표제는 2003년 양성평등 채용목표제로 바뀌었다. 최근 여성 합격률이 높아지면서 남성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보고 있다.2)도, 사실상 여성 할당제를 시행하는 경찰이나 소방관도, 어디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의 성적이 높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성을 향해서는 아주 작은 구멍만 뚫어놓은 채 뭐, 여길 통과하면 받아줘볼게, 하고 빡빡하게 굴면서 심지어 여성을 위해 뚫어놓은 구멍에서마저 남성을 우대한다.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ㆍ채용할 때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학력, 출신학교, 혼인ㆍ임신 또는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되며 균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

사업주는 여성 근로자를 모집ㆍ채용할 때 그 직무의 수행에 필요하지 아니한 용모ㆍ키ㆍ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미혼 조건, 그 밖에 고용 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
일러스트 이민

관련 법이 제정되고 겉으로 보기에 채용 과정에서 직접적인 차별은 사라진 것처럼 보이나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적 채용관습은 여전하다. 무한경쟁사회, 능력중심사회라고 하지만 공공연하게 남자라는 게 스펙이 되는 사회. 여자는 덜 뽑고 안 뽑는다.

문제는 이 성차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고용비율이 30%가 안되는 실정인데도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20%정도만 넘어도 여성차별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3 남성 중심적인 풍토가 굳어져서 차별로 인식하지도 못 하는 지경인 것이다. 게다가 차별을 객관적 증거로 제시하기도 쉽지 않다. 공식적인 문서상으로는 차별의 증거가 없고 성차별적 관행이란 게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명백한 차별이라기보다 간접적인 차별의 모습을 띄는 경우가 많아 검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실패가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가고 네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업이 ‘합리적’인 결정으로 너를 뽑지 않는 거라 말한다. 그래서 많은 여성 구직자들은 자소서를 좀 더 잘 써야 한다거나 토익 점수를 만점에 가깝게 맞아야 한다거나 학점이 충분히 높지 못해서, 매력적인 교과 외 활동이 없어서, 면접에서 말을 잘 못해서, 호감형 인상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의 말로 시작하여 결국에는 자기가 제일 잘 아는 자기자신을 스스로 후벼파는 과정을 겪는다. 구조적인 성차별을 가리는 말들은 아주 많고 아주 잔인하다.

제도적인 조치가
필요한 이유

그렇기에 기업 내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앞서 나가는 해외 사례들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특정 부문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적으면 적성, 능력, 전문성을 고려하여 여성의 수를 증가시키는 법률이 제정되어 있고 프랑스에는 여성의 채용과 승진에 있어서 모범적인 조치를 취하는 기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법이 마련되어 있다.4 여성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노동 조건이 마련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철저히 직무에 기초한 채용절차를 만들고 채용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업에서의 성차별 판정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4

현재 취업전선에 뛰어든 세대는 성장과정에서 비교적 평등하게 자랐으나 여전히 학교 밖 세상은 공고한 성차별 사회라 괴리감을 크게 느끼는 세대다. 당연히 노동할 것을 전제로 교육받아 왔으나 우리나라 여성의 교육 수준은 노동시장이 아니라 결혼시장에서의 자격증으로 기능하는 경향이 있다.5 노동시장에 나가려는 순간 여성들은 거대한 벽에 맞부딪힌다. 여자 대학생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진로장벽을 크게 느끼고 진로에 대한 통제감이 낮다는 결과6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여성의 진로발달은 남성과 다르다. 우리는 여성의 진로발달에 관해 더 많이 들여다보고 더 크게 말하고 더 깊이 논의해야 한다.

1. 안수영 (2008). 지방대 여학생의 취업장벽과 취업준비. 충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 서울신문 (2019). “양성평등 채용으로 남자가 두 배 혜택, 알고 있었나요”, 2월 21일.

3. 박귀천 외 (2011). 기업 채용과정의 차별관행에 대한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4. 김소영, 이주희 (2000). 고용차별의 유형과 효과적 대처방안. 노동부.

5. 조혜선 (2000). 한국 노동시장 내 여성의 선택과 적응.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6. 이주연 (2015). 대학생의 지각된 진로장벽과 진로관여행동의 관계에서 진로통제감과 의미부여의 매개된 조절효과 검증.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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