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성 개인의 의지를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 의지가 발현될 만한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지는 쉽게 간과하곤 한다.
"네, 제가 해보겠습니다!"
한 성공한 여성 임원의 강연을 들으러 갔을 때였다. 그의 경력은 멋졌고 여러 역경을 견디고 극복해온 모습에는 모두가 찬사를 보낼 만했다.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위 거친 조직에서 그는 살아남았고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일하는 방식을 긍정하는 듯 보였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연결이었다. 그가 조직 안에서 성취를 이루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분명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본인과 조직 양쪽에 잘 맞는 업무 방식을 찾는 과정도 짧지 않았을 테다. 지금까지 일해온 자신의 방식으로 그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기에 다른 여성들이 자신의 방식을 따르기를 바랐다.
관리자 위치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여성 직원과 남성 직원의 태도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도전적인 과제를 마주했을 때 그의 경험에 따르면 yes를 외치는 건 남성이 더 많았다. 그가 판단하기에 충분히 자격이 되고 능력이 있더라도 여성은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신중할 뿐만 아니라 두려워했다. 여성 직원은 자신이 일을 망칠까 봐 두려워하고 일을 제대로 못 해낼까 봐 두려워했다. 자신의 현재 실력으로 맡을 수 있는 일인지 의심했다. 그 여성보다 실력이 낮은 남성은 조금 무모하더라도 자신 있게 “네, 제가 해보겠습니다!”라고 외치는데,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왜 머뭇거리는지, 왜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는지, 왜 결국에는 아직 본인은 역부족이라며 좋은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리는지, 그 임원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는 당장은 좀 부족하더라도 일을 시켰을 때 무조건 yes라고 답하는 사람이 믿음직스럽기 마련이라며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도전정신이 부족함을 지적했다.
왜 '답답하게' 구는지
아시나요?
여성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의 진심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주변을 돌아봤어야 한다. 스스로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답답한’ 여성 직원의 눈으로 사무실을 둘러봤어야 한다. 그 직원은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그게 같은 성과를 내는 남성과 얼마나 다른지를 살펴봤어야 한다. 여성의 사소한 실수에 대해 상사와 동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사소하지 않은 실패에 대해서는 남성과 비교하여 어떤 평가를 받는지 주의 깊게 관찰했어야 한다. 그 평가가 혹시 개인의 부분적 특성만이 아니라 사람 전체를 한꺼번에 폄하하지는 않는지, 나아가 여성 일반에 대한 과도한 비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지 알아내야 했다. 여성의 실수를 과하게 비난하고 오래 기억하는 외부 환경에 압박당하는 동시에 ‘자신감 없고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내면화된 자괴감에까지 억눌리고 있는 건 아닌지 고려했어야 한다.
우리는 성공한 여성들의 사례를 흔치 않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대중매체에서는 여성상위시대를 열었다든가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여성의 실패를 비난하거나 여성의 실패가 아닌 것조차 여성의 실패로 몰아가기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례적인 여성의 성공을 추켜세우는 현상에 앞장서는 개개인이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뒤따르는 여성들을 임파워링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점은 안다. 여성상위시대가 왔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여성상위시대를 가장 바라지 않는 부류다. 그들이 진정으로 여성상위시대를 원한다면 그들은 위가 아니라 아래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여성상위시대라는 말로 자기 앞에 있는 여성들의 입을 막는 것뿐이다. ‘이렇게 성공한 여성이 있다는 건 여성이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이고 네가 성공하지 못하는 건 환경이 아닌 너의 자질 문제다. 노력 부족, 의지력 부족, 역량 부족을 탓해야지 차별을 핑계 삼으면 안 된다. 너의 개인적 실패 때문에 세상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마라.’ 그들은 현상 유지를 원한다. 현재 상황은 절대적으로 그들에게 유리한 판이니까.
오직 평범하지 않게
성공한 여성뿐
성공한 여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다. 평범한 인내심, 평범한 소통능력, 평범한 의사결정 능력으로 여성은 성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평범한 남성은 먼저 성공한다. 모든 것이 평범한 여성은 모든 것이 평범한 남성이 모두 성공하고 난 후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까 거의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내 10대 그룹을 대상으로 2012년에 조사한 결과1 임원 5천2백20명 중 여성은 66명에 불과했다. 1.26%인 것이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5백대 기업 중 영국・프랑스・스페인의 여성 임원 비율이 28%(2011년 기준)임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는 경악할 만한 수치다. 여성 직원 100명 중 32명이 여성인데도 임원까지 승진한 여성은 두 명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여성 직원 비율이 거의 절반(49.95%)에 달하는 롯데 그룹도 여성 임원은 단 세 명으로 전체 임원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노동과 페미니즘』의 저자 조정아에 따르면, “남성은 ‘특별히 무능력하지만 않으면’ 정규적인 승진 코스를 밟을 수 있지만2 정반대로 여성은 ‘특출나지 않은 한’ 단순히 열심인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3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에게 비범해지길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여성이 ‘무조건 yes’를 외치며 그 자리에 올라섰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개인을 비난하는 건 구조적 성차별을 가리는 논리다. 그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한 여성에게도, 여성 전체에게도 해가 되는 말이다. 여성이 평범하더라도 평범한 남성만큼 비난받지 않고 최종적으로 낙오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용기 없지 않다니까
조직 내에서 여성은 용기가 없다는 평을 듣지만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여성의 용기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치한을 쫓아가고 목소리를 떨면서도 끝까지 항의하고 위험에 처한 다른 여성을 위해 도움을 준다. 나는 이제 그 사람을 만날 일이 없지만 그 사람에게 지금도 당하고 있을지 모를 다른 여성을 위해 자신의 피해를 말한다. 여성이 무언가-특히 성차별, 성범죄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주장하고 비판했을 때 그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후폭풍을 안다면 그 용기를 지금보다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여성들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다. 용감함을 타고나서 용기를 내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당신의 일이 내 일과 같아서, 나를 보고 있을 다음 세대를 위해, 용기를 짜내서 용감하게 행동한다.
그러니 여성 개인의 용기 없음을 비난하는 일에 더 이상 시간을 쓰지 말자. 그보다 여성들이 원하는 만큼 용감할 수 있도록,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만드는 일에 힘쓰자. 특히 관리자의 위치에서 상황을 개선할 권한이 있다면 더더욱. 기업의 인사/HR 담당자나 임원을 비롯해 조직에 속해 있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지금 여성들에겐 ‘특혜’가 필요하다. 실패를 관대하게 수용 받을 ‘특혜’, 이번에 실패해도 다음번에 다시 기회가 주어질 ‘특혜’, 서툴러도 도전정신만큼은 인정받는 ‘특혜’ 말이다. 이미 남성은 당연하게 갖고 있지만 여성에게는 특혜라는 괴상한 이름이 붙는 바로 그것. 지금은 여성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기에 그걸 주자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특혜로 느껴질 것이다. 여성이 쉽게 다음을 잃는 것에 찬성하는 누군가에게는 말이다.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현재 능력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일을 받아드는 자세를 여성이 보였다면 어쩌면 그건 도전정신이 아니라 어리숙한 치기나 과도한 야망으로 치부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성에게는 더 관대하고 여성에게는 더 가혹한 세상의 잣대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영향력이나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이, 이중잣대와 기울어진 환경을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
위 임원의 강연에서 얻을 만한 교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성들은 스스로 평가하는 것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믿지 못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의 남자 동기 혹은 남자 후배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일을 받아들고 상사의 호감과 신뢰를 얻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유능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우리의 남자 동료를 평가하는 것만큼의 관대함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킨다면 말이다. 설사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사실을 아는 건 중요하다.
참고
1. 시사저널 (2012). “국내 10대 그룹 임원 여성은 100명 중 1.3명꼴”, 7월 10일.
2. 김효선 (1987). 회사원 생활을 통해 본 한국 남성의 적응과 소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3. 조순경 엮음 (2000). 노동과 페미니즘 (pp. 257).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