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앞길 막는 사회 6. 여초업계는 원래 박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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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앞길 막는 사회 6. 여초업계는 원래 박봉일까

사월날씨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넷플릭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한국 드라마에서 견디기 힘든 장면이 많아질 즈음 넷플릭스를 알게 됐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접하기 힘들었을 다양한 나라의 드라마를 클릭 한 번으로 모두 본다. 그중 좋아하는 영드는 <더 크라운>. 영국 왕실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현재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주인공이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결혼을 하고 왕위에 오르고 군주의 역할을 해내는 과정이 중심이니 당연한 일이다. 비록 첫 화면에 여왕과 남편이 나란히 서 있기는 하나 비중이나 중요도 면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단연코 퀸이다.

그러니 여왕역을 맡은 클레어 포이보다 남편 역할의 배우가 출연료를 더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놀라면서도 실은 익숙한 일이라 놀랍지 않고 그럼에도 한껏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성차별이 아니라 인지도 차이라며 해명했지만 계속되는 논란에 “앞으로 여왕보다 많은 출연료를 받을 사람은 없다.”라며 이를 시정하겠다고 밝혔다.1

임금 문제는 민감한 부분이라 정확한 액수를 공개하는 경우가 드물고 누가 누구보다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당사자조차도 모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영화사 문건 노출로 여성 주연 배우보다 남성 조연 배우가 더 많은 출연료를 받는다는 게 밝혀진 후 임금 차별 문제가 대두되었다. 비슷한 비중으로 출연하는 상대 남성 배우가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10배에 해당하는 출연료를 받는다고 여성 배우들이 토로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또한 결코 다르지 않은 게 영화 <도둑들>에서 전지현과 김혜수의 출연료가 김윤석이 받는 것의 절반 조금 넘은 것,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경력 20년 차 수많은 흥행작을 낸 명실공히 흥행 보증수표인 송혜교가 경력 8년 차 송중기 출연료의 60%쯤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지명도나 티켓 파워, 경력 등의 차원만으로 결코 설명할 수 없다. 남자라서 많이 받고 여자라서 적게 받는 ‘관행’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업계가 하나라도 있을까.

일러스트 이민

차이와 차별

채용이나 승진, 해고에서 나타나는 고용차별보다도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한 게 바로 임금차별이다.2 성별에 따라 임금이 다른 것은 두 종류, 즉, 설명할 수 있는 ‘차이’와 설명될 수 없는 ‘차별’로 구성된다.3 차이는 학력이나 경력 등에 따라 생산성이 다르니까 임금이 이렇게 다른 거예요,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보다 대체로 인적자본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이유를 댈 수 있는 것. 이것이 성별 임금 격차의 55.8%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44.2%는 어떻게 된 걸까? 아무리 어떠한 조건을 비교하고 고려해보아도 설명되지 않는 격차. 학력과 경력이 동일해도 여성이 낮은 임금을 받는 것. 이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당한 이유를 댈 수 없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차별은 성별 임금 격차를 끈질기게 유지하는 원인으로 꼽힌다.4

대략 절반은 차이, 절반은 차별 때문이라는 뜻인데.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눈에 보이는 이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남자가 여자보다 교육을 더 많이 받고 더 많은 훈련 기회를 가짐으로써 인적자본을 쌓게 되는 것은 왜일까? 이 또한 성차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가정에서 딸보다 아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정서적, 물질적으로 더 많이 지원하며 사회적으로 여성이 처한 어려움을 좁혀줄 정책이 미흡한 현실은 노동시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만든다.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차이 또한 차별에 깊숙이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악순환

일러스트 이민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은 어떤 산업에 주로 어느 성별이 많은지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소위 여성직종, 남성직종으로 나뉘어지지는 분류에 따라 서로 다른 산업에 종사하게 되는 현상을 일컬어 직업이 성별화되었다고 표현한다. 남성이 금융, 법률, 행정, 전기전자, 건설, 운송, 영업을 주도한다면, 여성은 교육, 문화예술, 사회복지, 식품, 섬유, 의료보조, 조리를 맡는다. 남성은 고임금, 고숙련, 자본집약, 대규모 산업에서, 여성은 주로 저임금, 저숙련, 노동집약, 소규모 산업에서 일한다.

고임금의 남성직종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관행은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그러므로 여성이 여성직종에서 일하는 것을 단순히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라 보기는 어렵고, 그보다 구조적인 성차별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5 그렇게 여성이 점점 더 저임금 산업으로 몰리면 공급이 많아지니 여성의 임금은 더 낮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6

많은 여초업계와 여초직무들을 떠올려본다. 급식 조리나 전문 간병과 같이 여성은 노가다를 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무색한 고강도의 직업들은 남성의 노가다에 비해 조명받지 못한다. 비슷한 숙련도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직무들에도 어김없이 성별화가 진행되고 그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 경비는 남자가 서고, 청소는 여자가 하는 것처럼. 한 사회학자는 직업에서 요구하는 교육수준이나 역량이 동일하더라도 여성 노동자가 많은 일자리는 남성 노동자가 많은 일자리보다 더 적은 연봉을 받는다고 분석했다.7 그러니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여성이 저임금 산업에 몰리는 걸까, 여성이 많아서 저임금 산업이 되는 걸까?

전통적으로 남성직종으로 여겨지던 산업에 여성이 상당수 진출하게 되면 해당 직종의 평균 연봉이 깎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8어떤 일이든 여성이 하기 시작하면 그 일은 곧 덜 중요하거나 덜 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직종이라고 여겨지던 것에 남성이 진출하면 그 업계는 전망 좋고 돈 잘 버는 산업이 된다. 대표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그런데, 하드웨어에 비해 소프트웨어의 중요도가 떨어지던 시기에 여성이 많이 종사하던 분야였다가 이제는 완전히 남성 중심으로 바뀌었다.

여성이 하는 일은 평가절하된다.9 여성의 일이라 여겨지면 고용주들이 임금을 적게 준다.7 여초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만약 남초였다면 받았을 임금보다 더 적은 수준의 임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성별 임금 격차에서 가장 주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리하여 여성은 박봉인 업계에 주로 가게 되는 걸까, 여성이 많아서 업계가 박봉이 된 걸까? 여성직업과 남성직업은 애초에 왜 나누어지는 걸까? 성별 임금 격차는 왜 생기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왜 달성되지 않는 걸까? 우리는 이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줄기차게 물을 필요가 있다.

참고

1. Patrick Greenfield (2018). The Crown's Claire Foy paid less than male co-star, producers admit. The Guardian, Mar 13.

2. 허식 (2003). 산업과 직종에서의 성별 임금격차에 관한 원인분석. 응용경제, 5(3), 57-74.

3. 정상진 (2006). 한국 노동시장의 성별 분절화와 임금격차. 단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4. Blau, F. D., & Kahn, L. M. (2017). The gender wage gap: extent, trends, and explanations.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55(3), 789-865.

5. 신경수 (2002).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직종분절화현상과 임금격차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6. 윤혜린 (2014).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성별 임금격차와 직종분리현상에 관한 연구. 동아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7. England, P. (2010). The gender revolution: Uneven and stalled. Gender & society, 24(2), 149-166.

8. Claire Cain Miller (2016). As women take over a male-dominated field, the pay drops. The New York Times, Mar 18.

9. Levanon, A., England, P., & Allison, P. (2009). Occupational feminization and pay: Assessing causal dynamics using 1950–2000 US census data. Social Forces, 88(2), 865-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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