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앞길 막는 사회 시즌 2 2. ‘린인Lean In’이 말하지 않는 것

알다커리어결혼과 비혼여성의 노동

여자 앞길 막는 사회 시즌 2 2. ‘린인Lean In’이 말하지 않는 것

사월날씨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몸을 기울여 기회에 달려들라는 <린인Lean In>1은 여성이 커리어를 추구할 때 마주하는 장벽과 그 원인,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전 세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는 여성이 내면의 편견, 죄책감, 수동성 때문에 기회 앞에서 주춤거린다며 그들에게 당당히 테이블에 앉고, 위험을 감수하고, 목표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성공하려는 의지를 갖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감과 적극적인 열정으로 힘을 기르면 결혼 후에도 부조리한 문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성들을 북돋는다. 그런데 정말 ‘린인’ 하기만 하면 다 괜찮을 수 있을까?

내 역할 갈등은
누가 해결하나

직장에서는 엄마/아내가 아닌 것처럼 일하고, 가정에서는 직업인이 아닌 것처럼 일하길 요구받는 여성의 삶. 그래서 많은 여성들에게 역할갈등이 생긴다. 자녀가 많을수록, 가사 및 돌봄노동 시간이 많을수록, 남편이 아내의 직장생활에 비우호적인 태도를 지닐수록, 급여가 높을수록 여성의 일-가정 갈등수준이 높게 나타난다2. 배우자, 양육자, 직업인 등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역할갈등을 겪지만 이를 영역별로 나누어 보면 성차가 또렷이 나타난다. 남편은 직장역할갈등이 상대적으로 높고, 아내는 가정역할갈등과 부모역할갈등이 높은 식이다3. 가정에서의 역할 때문에 직장 일이 방해받는 정도 또한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높고, 남성은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역할갈등을 겪어도 삶의 만족이나 직무 만족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반면, 여성은 삶의 만족과 직무에 대한 애착이 크게 떨어지기도 한다4.

이러한 역할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일-가정 양립 정책이 등장했다. 그러나 시차 출퇴근제나 유연근무제, 시간제 노동, 육아휴직 등은 가정노동의 주체를 여성으로만 상정한다는 문제가 있다. 여성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이중부담을 강화하는 것이다5. 기업에서 사용하는 모성보호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편향적이다. 주변 사람들은 일과 가정을 둘 다 책임지는 여성의 고충은 보지 않고 과하게 배려받고 있다고 편리하게 오해하면 그만이다.

여성에게 의지를 갖고 일과 가정을 양립하라고 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여자는 안 되는 거라고 한다. 자기 할 일만 쏙 하고 칼퇴해버리면 여성의 설 자리를 좁히는 거라며, 다른 여성을 위해서라도 그러지 말라고 당부를 듣는다. 가혹하게도 여성에게는 구조에 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성이 성공하려면 개인이 현명해야 한다고 셰릴 샌드버그를 포함한 사람들은 말한다. 여기서의 ‘현명’이란 직장에서도 충분히 일하고 가정에서도 충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평은 그만하고 가사 분담 잘하는 남자를 만나거나 잘하도록 남편을 교육시키고 아이는 주변의 또 다른 여성에게 맡기고 회사에 충성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 된다. 여성이 현명하고 의지가 있고 능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공정한 일일까?

일러스트 이민

모성 불이익

공정하지 못한 또 하나의 장벽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여성의 임금이 깎인다는 사실이다. 비혼 여성은 비혼 남성에 비해 약 95%의 임금을 받지만 기혼 여성은 기혼 남성의 60%만을 받는다6. 여성은 아이가 있으면 임금이 낮아지는 ‘모성 불이익(마더후드 페널티motherhood penalty)’이 존재하는 것이다. 남성은 아이가 있으면 임금이 올라가는 ‘부성 이익(파더후드 프리미엄fatherhood premium)’과 정확히 반대되는 현상이다. 여성의 일-가정 양립은 반쯤 커리어의 포기 선언으로 여겨진다. 가정과 육아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을 것이기에 대강 슬슬 하면서 자리만 적당히 채울 거라는 시선을 받는다.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자리에 배치되고 승진에 도움이 되는 업무는 주로 기혼 남성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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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남성/여성, 기혼 남성/여성 간 임금격차

미셸 오바마는 『린인Lean In』에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구조에 대한 고찰은 담기지 않았으며 일에 몰두하면 다 된다는 말은 현실에 없다고 비판한다7.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며, 그 해결책으로 여성 개인의 의지를 내세울 수 없다고 말이다8. 일-가정 양립,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한 미션이고 현재 인식으로는 정책의 방향성도 맞을 수가 없다. 균형을 맞추라고 하지만 그건 ‘슈퍼 인간’이 되라는 요구일 뿐이다. 어떻게든 둘 다 잘하라는 불가능한 주문. 여성학 박사 국미애에 따르면9, 네덜란드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을 공유하는 대신 소득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는 결합모델을 사용한다(Wetzels, 2007). 즉, 인간은 삶의 여러 영역을 살아내는 존재라는 전제하에 임금 노동만이 아니라 돌봄 등 재생산을 위한 시간을 포함하여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일-가정 양립 정책은 남성에게로 향해야 한다. 남성이 재생산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한 동등한 분담도, 가능한 양립도 없다.

참고

1. 네이버 책 (2013). 린인 책정보,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09320. (2019-11-10 방문).

2. 박인숙 (2016). 맞벌이 여성의 일-가족 갈등 및 일-가족 촉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3. 황혜원, 신정이 (2009). 자녀를 둔 맞벌이부부의 역할갈등과 삶의 질에 관한 연구. 한국가족복지학, 14(1), 45-71.

4. 장재윤, 김혜숙 (2003). 직장-가정간 갈등이 삶의 만족 및 직무 태도에 미치는 효과에 있어서의 성차.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9(1), 23-42.

5. 이원형 (2007). 기업 ‘가족친화’제도의 성별성과 여성주의적 대안 모색.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6. Cooke, T. J., Boyle, P., Couch, K., & Feijten, P. (2009). A longitudinal analysis of family migration and the gender gap in earnings in the United States and Great Britain. Demography, 46(1), 147-167.

7. 박민지 (2018). “여성 의지만으로 일가정 모두 챙겨라? X 같은 말" 미셸 오바마의 지적. 국민일보, 12월 7일.

8. Erin Durkin (2018). Michelle Obama on ‘leaning in’: ‘Sometimes that shit doesn’t work’. The Guardian, Dec 3.

9. 국미애 (2013). 노동 시간과 성 (불)평등 정치로서의 유연 근무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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