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앞길 막는 사회 시즌 2 4. “딸,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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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앞길 막는 사회 시즌 2 4. “딸,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언제까지?

사월날씨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요즘 나는 부모에게 아주 다른 종류의 기대를 동시에 받는다. 하나는 오래전부터 과하게 받아왔던 기대이고, 다른 하나는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그 둘은 서로 꽤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나는 부모의 기대가 혼합되었다고 느낀다. 혹은 이중기대라고도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직업적 성공이라는 기대와, 출산 및 양육에 대한 기대다.

노동시장 진입 전부터
누적되는 차별

딸이 좋은 직업을 갖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할 거라 기대하는 부모를 둔 것은 물론 기쁜 일이다. 아직도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자라는 내내 차별받는 환경에 놓이기 쉽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남자 형제가 있거나 없거나 딸이라는 이유로 자라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차별이 있다.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차별은 자연스럽게 이후에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여성은 남성과 다른 규범과 문화 속에서 키워지면서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내면화하도록 권장받기 때문에 단순반복이나 서포트하는 노동을 익숙하다고 느끼게 된다.1 그리고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교육, 더 좋은 교육을 받게 되어 여성은 인적자본을 형성하는 데 불리해지기도 한다.1

이번 연재의 시즌 1에서는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을 다루었다. 그것만 해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인데, 노동시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벌써 차곡차곡 문제가 쌓이고 있다. 애초에 개인의 능력과 특성을 다르게 만들어버리는 구조적 요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별 임금격차 = ①인적자본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임금 차이 + ②모든 조건이 같아도 발생하는 임금 차별]이라 분석하는 것에 더욱 강렬하게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여자 앞길 막는 사회 6. 여초업계는 원래 박봉일까 참고). 개인적인 특성이나 선택의 결과라고 보이는 ①인적자본의 ‘차이’가 사실은 노동시장 이전의 ‘차별’에 의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이민

결혼하고 나니

그런데 운 좋게 노동시장 이전의 차별을 비껴갔어도 안심할 순 없으니. 남성과 비교하여 여성이 아무리 같은 수준의 교육, 같은 수준의 기대, 같은 정도의 중요도로 자랐다 하더라도 딸은 양육자에 의해 여성으로서의 역할과 의무에 갇히는 순간이 온다. 내게는 그 시점이 결혼이었다. 부모가 내게 결혼 전까지 바라온 것은 나의 건강, 나의 진로, 나의 성취⋯⋯ 오로지 내가 중심이었는데 남편이 생기는 순간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부모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으며 자랐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라 믿으며 컸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내 부모에게만큼은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대학원까지 나온’ 내가 번듯한 직장이 없다고 타박하는 엄마를 보면 어릴 적 그때와 마찬가지로 엄마는 내가 멋진 직업을 갖고 훌륭하게 성공할 거라고 믿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해왔던 아빠는 그게 아니란 걸 이제 알겠지만 그래도 기대수준이 유엔 사무총장에서 하향조정 되었다고 해서 기대가 아예 없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부모는 내가 결혼했으니 충실히 남편을 내조하고 출산과 양육 또한 응당 해야 한다고 여긴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이유를 아무리 반복해서 말해도 틈만 나면 압박을 해온다.

부모가 기대하는 수준의 커리어와 양육, 그 두 개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개인이 의지를 가지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어떻게든 될 텐데 젊은 사람이 왜그리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지 혹은 패기도 없이 해보기도 전에 미리 겁을 먹는지 안타까워한다. 여성에게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사회적 환경은 뉴스에서 나오는 먼 이야기일 뿐, ‘내 딸’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우선순위는 정해져 있다. 여성의 인생에서 사회적인 성취보다 결혼과 양육이 중요하다고 여성을 사회화하는 것2이 여전한 이곳. 아무리 멋진 커리어와 훌륭한 능력을 갖추었어도 남편과 아이가 없으면 불완전하고 비어있는 인생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의 부모가 내게 직업적 성공과 양육을 모두 기대하면서도 더 강한 어조로, 필수적인 의무인 것처럼 말하는 쪽은 역시 커리어 형성보다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다.

정말 그 말을 믿습니까?

일러스트 이민

딸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양육자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지금과 달리 훨씬 나아져 있을 거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랐지만, 그때 들었던 만큼의 희망적인 상황이 오지 않은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음 세대는 다를 거라고 딸을 북돋던 사람들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는 걸 몰랐던 걸까,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걸까? 자신은 바뀔 의지도 노력도 부족했으면서 언젠가 변화가 알아서 오기만을 막연히 기대할 뿐이었다.

‘내 딸’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으며 키우는 동안, 그들은 실제로 사회에 나온 여성들을 향해서는 어떤 기대를 했을까? 옆자리 동료와 선후배 여성이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믿고 기대를 걸고 지원하고 기회를 주었을까?

딸이 여성으로서 받는 제약이 없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마음은 범위가 너무 좁았다. 그들은 내 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오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내 옆의 여성이, 혹은 내가 모르는 어떤 여성이라도 차별받지 않도록 스스로 힘써야 한다는 걸 놓쳤다. "불행을 차단할 유일한 방법은 그 불행의 함정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힘을 합쳐 메꾸는 것”이라는 변영주 감독의 말3처럼 우리는 우리의 딸들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세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참고

1. 신경수 (2002).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직종분절화현상과 임금격차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 김경아 (2005). 성 및 출생순위가 부모의 자녀 진로기대에 미치는 영향. 경기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3. 변영주 (2019). [기고]다른 삶을 위한 연대. 경향신문,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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