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래픽 디자인계에서의 페미니즘 무브먼트를 처음 접한 것은 작년 출간된 단행본 <WOOWHO>(6699press)에서였다. 비록 행사 현장에 직접 간 것은 아니었지만 여성 디자이너들 간의 연대의 장이 생겼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러다 작년부터 프리랜서가 되고 디자인 비용에 대해 고민할 일이 많아지면서 지난 8월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에서 개최한 ‘디자이너의 수입과 지출’ 타운홀 행사에 참여하여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회원 가입을 하게 되었다.
FDSC 안에서는 여러 소모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중 ‘스튜디오 어택’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스튜디오를 찾아가 작업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공간도 구경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첫 번째로 전채리 디자이너가 대표로 있는 ‘CFC(Content Form Context) 스튜디오’를 찾아간다기에 재빠르게 신청을 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이 들어오고 작업을 진행시켜 나가는지 프로세스가 궁금했고, 각각의 작업을 발전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었다. 회사를 이끄는 여성 대표인 그에게서 나도 긍정적인 임파워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채 행사 장소로 향했다.
브랜딩 작업 기간은
3개월 이상
상수동 인근에 위치한 CFC 스튜디오에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 뻥 뚫린 넓은 공간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켠은 책상과 아이맥이 놓인 작업 공간이었고 다른 한켠은 회의를 위한 넓은 테이블이, 그리고 또 다른 공간은 제품 촬영을 위한 장비가 놓여 있었다. 비교적 깔끔하고 모던한 인테리어가 디자이너의 취향을 잘 반영하는 듯했다. 전채리 디자이너는 그동안 진행해온 브랜딩 작업물들을 모니터로 보여주며 각각의 작업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유기그릇 브랜드 DAMOON, 기아자동차 BEAT360, SM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Visual Identity 등 명쾌한 디자인 작업들을 연이어 보여주었는데, 평균 3개월 이상의 작업 기간을 두고 브랜드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드 보드를 만들어 클라이언트와 의견을 조율해가며 점차적으로 심도 있게 작업을 이어간다고 했다. 본 작업 전 단계에서 방향성을 뚜렷하게 잡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완성단계까지도 잘 이어나가는 것 같았다.
대표 어디 있냐고?
제가 대표입니다
여성 디자이너이자 스튜디오 대표로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중 기업에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가서 ‘대표는 어디 있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는 에피소드를 듣고 아직도 직급이 높은 상사를 ‘남성’으로 상정하는 불평등한 사회 인식이 변화하려면 시간이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해졌다. 스튜디오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법인 등록을 하면 어떤 식으로 자금을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디자이너들도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정 부분 이상은 스스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작업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플랫폼을 통해 홍보하면서 밸런스 있게 스튜디오 규모를 키워가는 그의 행보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더불어 토크에 참여한 다른 여성 디자이너들과의 만남도 반가운 자리였다. 전채리 디자이너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며 대화하듯 이어지는 분위기가 편안하게 느껴졌고 이렇게 모이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정보들을 교류할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다. FDSC를 통해 여성 디자이너들간의 네트워크가 점점 더 넓어져 서로에게 힘이 되고 함께 성장해나가는 동력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