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pro 7. 신선아

알다커리어인터뷰디자인

I'm a pro 7. 신선아

이그리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나 서울에 살아.” 이 말은 수많은 편리와 특권을 압축한 선언이다. 무언가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윤택한 삶을 위한 인프라가 몰려 있는 서울로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선택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큰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이너 신선아는 지방에서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꾸려 나가고 있다. 

여성의 날 기념 그래픽. 이미지 신선아

Q. 당신은?

페미니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신선아라고 한다. BOSHU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BI, CI 디자인을 주로 했고, BOSHU에서는 편집디자인을 하고 있다.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과 컨텐츠를 기획하면서 사회적인 메시지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전달되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나는 디자인은 반드시 사회적 맥락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할 때, 어떤 텍스트가 이미지가 되어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전달되어야 하는지, 오랜 시간 고민해야 한다. 디자인은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청년으로서, 여성으로서,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이야기를 담는 디자이너가 되고자 한다. 

WOMAN HANDLE THEIR OWN ROAD 핸들링 티셔츠. 사진 신선아

Q.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개인의 맥락이 담긴 디자인. 순간의 이미지로 소비되어 사라지지 않고 사회적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디자인. 사회가 만든 미적인 클리셰에 금을 낼 수 있는 디자인. 메시지를 전달할 때 어떤 부분을 시각화할지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무엇을 선택해서 시각화하는지는 매우 중요하고 정치적인 결정이다. 예를 들어 낙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을 때, 낙태 반대파가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사용하는 것처럼.

또한, 디자인이 어떤 의제에 대한 순간적이고 시각적인 구현이 아니라, 내가 살아오며 누적한 사고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평소에도 사회적인 이슈를 공부하면서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Q. 맥락을 고려한 디자인의 예를 든다면?

BOSHU 10호에서 <핸들링>이라는 기획을 했다. 대전에 있는 여성 택시 기사를 조명한 기획이다. <핸들링>은 방향 전환을 말하는 핸들(스티어링 휠)을 돌린다는 뜻도 있지만, 컨트롤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여성 택시 운전사로 느끼는 성차별적인 사례나 어려움, 힘듦을 강조해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디자인도 필요하지만, 기존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드무비 느낌으로 기획 방향을 잡았다. 택시를 타고 도로를 달리며 인터뷰를 진행했고 달리고 싶은 길, 운전에 대한 욕심, 여성 운전사들과의 우정, 선배 여성 운전자에게 느끼는 존경, 운전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칼주름이 잡힌 파란 정복, 같은 여성 운전자에게 건네는 호의와 유머, 부드러운 핸들링, 도로위의 자신감을 이미지로 담아내고자 했다. 책을 직접 핸들링 하며 읽다 보면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제가 운전대를 잡고 오니까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신이 오는 것 같다.”

재밌어서

Q.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었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회화는 아니었고. 어느 순간 내가 그리고 있는 선들을 남들에게 들키고 싶었다. 그 들키고 싶은 선을 면으로 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칠할 재료로서 그래픽 툴을 먼저 접하게 됐다.

그 후, 대학교를 다니면서 현업 디자이너와 디자인 스터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배운 디자인이 너무 재밌어서 더 알려달라고 계속 졸랐다. 1년 반 정도를 배우다 보니 나에게 일을 주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디자인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자각했다. 그 이후로 BOSHU 팀에서 활동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태도와 방향성을 갖추게 됐다.

Q. 해왔던 작업 중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는다면? 특히 커리어 면에서 인사이트를 남긴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지면 디자인을 벗어나는 경험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10월에 BOSHU에서 여성운동회를 개최했다. 빼앗긴 운동장을 되찾아 점령하자는 취지였다. 직접 운동장을 뛰어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어디까지가 힘이 들고 어떤 동작을 하면 좋을지를 고려해서 판넬, 입장 티켓, 리워드, 배너 등을 제작했다. 여성들이 그 공간에서 움직일 동선을 생각하면서 디자인을 하게 되더라.

특히 리워드로 만들었던 스포츠타월에는 ‘Who Run The Ground? Girls!’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는데, 참가자들이 타월을 받고 깃발처럼 들거나 몸에 두르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게 벅찬 경험이었다. 커다란 공간에서 활용되는 디자인, 움직이는 디자인이 어떤 건지 알게 됐다. 필름 카메라로 그날 운동회 사진을 찍은 후에 현상했는데, 필름에 남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활짝 웃고 있었다.

Q. 여성운동회는 올해도 열리나?

아직 대전에서 할 계획은 없지만, 4월 20일 서울에서 열리는 FDSC 운동회를 기획중이다.

Q. BOSHU 팀에 대해 소개해 달라.

BOSHU 는 보라는 뜻의 충청도 방언이다. 2014년에 청년, 지역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무가지로 시작된 팀이다. 나는 2015년 여름에 합류했다. 2016년에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접하면서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사회와 여성의 관계에 주목한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잡지를 매체로 삼은 이유는 책이 갖는 물성 때문이다. 여전히 느린 호흡으로, 쉽게 읽히지 않아야 하는 메세지가 있다. 종이의 무게감과 책의 흐름이 그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지면에 기록하는 작업을 활동과 계속 병행할 예정이다.

이 일을 오래 이어가고 싶어서 상근팀이 생겼다. 디자이너인 나와 편집장, 대표 세 명이다. 물론 지속가능한 팀이 된다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다. 책만으로는 수익을 내기가 힘들어 지원사업도 많이 받고, 외주도 받고, 후원도 받고 있다.

Q. BOSHU 팀의 다음 활동 계획은?

일단 5월 4일에 서울의 <생기 스튜디오>에서 우먼 온리 디제이 파티를 기획하고 있다.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불필요한 불안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파티를 지속적으로 기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의 어젠다로는 비혼을 꼽을 수 있겠다. 지역에서 비혼을 결심한 청년들과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것을 의제화 할 수 있도록 주거, 재무, 라이프스타일 등에 관한 실용 워크샵을 열고 실용서를 출판할 예정이다.

Q. BOSHU 팀의 장기 목표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사실 BOSHU 같이 잘 하는 지역의 여성 단체가 장기 목표를 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걸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상태로 지원사업에 지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혼 여성을 위한 사업을 하고 싶어도, 비혼 여성을 청년 세대로 바꾸어 표현해야 한다든가, 여성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면 왜 남성은 참여를 못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든가. 그런 식으로 기획이 넘어지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원인들에 대해 모니터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신선아

비수도권은 서울보다 훨씬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청년 창업 컨퍼런스를 가도 발제자가 모두 남성이거나, 보여주기 식으로 여성을 한 명 끼워준다. 심사위원도 전부 남자다. 아무리 좋은 기획을 해도 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니 더더욱 어떻게든 균열을 내고 마이크를 꿰찰 필요가 있다. 다른 여성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

Q. 앞으로 5년, 10년 후에도 디자인을 하고 있을까?

처음엔 1년 후의 모습, 3년 후의 모습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FDSC 사람들을 만나면서 미래를 그리는 범위가 많이 확장됐다. 일단 이렇게 많은 멋진 여성 디자이너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 큰 자극이 됐다.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돕고자 하고, 실무적인 부분 외에도 기존의 불편한 관습과 업무 환경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개선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내가 가진 막막함이 꼭 고유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번에 박연주 디자이너의 스튜디오 어택에도 참가했는데, 비슷한 연차의 또래 실무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에 더해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디자인 실무자로 롱런하고 있는 선배 디자이너의 존재를 확인하는 경험도 나에게 큰 힘이 됐다.

결국 결과물이
나를 편하게 한다

Q.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장점을 꼽는다면?

디자인 비전공자라는 것. 나는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런 배경에서 비롯된 인문학적 경험이 내 디자인의 뿌리가 되어준다. 문학을 읽고 상상하는 과정이나 페미니즘을 접했던 과정이, 지금 내가 글과 디자인의 관계를 고민할 때나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할 때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개인작업으로 열 두 명의 여성 작가를 담은 달력을 만든 적이 있다. 이 작업은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성 작가들을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여성 작가를 굵고 대범한 형용사를 써서 표현한 것에 전율을 느꼈다. 영문학과 재학 중에는 ‘문학의 아버지' 같은 식으로 남성 작가들을 주로 다루지, 여성 작가들을 제대로 다룬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새로 인식하게 된 지점을 표현하고자 달력 한 장에 한 명씩 굵직한 그림으로 여성 작가들을 표현했다.

Q. 디자이너로서 일할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가장 편하게 하는 것을 각각 한 가지씩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작업을 하면서 고립되는 느낌을 받는 순간. 디자인은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분야다 보니, 혼자서 무언가를 그려낼 때의 고유한 기쁨도 있지만, 그만큼 외따로 떨어져 있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혼자서 한 이미지에 오래 집중하게 되면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그래서 작년에 바쁜 한해를 보내면서 연말 즈음에 많이 아팠다. 하지만 일을 오래 하려면 역시 건강해야 하니까, 일부러라도 신경을 더 쓰려고 하는 편이다.

반대로 나를 편하게 하는 것은 결국 디자인의 결과물인 것 같다. 내 의도가 시각 언어로 잘 표현된 작업물을 가지게 되면, 그것 자체가 나의 목소리이자 기록이 되는 것 같다.

Q. 언젠가 꼭 해 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디자인 비평. 디자인 당사자가 하는 디자인 비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내세우는지가 지금보다 더 많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

Q. 디자인 업계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고정관념이나 습관을 한 가지 꼽는다면 무엇일까?

업계의 관습이라기보단 비수도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어려움을 꼽을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를 맡아도, 지방에서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관공서이다보니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없다. 도전적인 작업을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업체가 별로 없고, 인쇄소도 원하는 조건을 맞추려면 결국 서울로 가야 한다.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문화콘텐츠도 서울에 몰려 있고. 그래서 지역에 있는 디자이너들이 좋은 역량을 가지고 성장 가능성이 높아도 그 안에서는 몸집을 키우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디자이너가 발전하기 위해 서울로 가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도 디자이너, 특히 여성 디자이너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 FDSC 같은 커뮤니티를 대전에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확장하며 다양한 시도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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