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고발 5. 내 직업은 임시직? (상)

생각하다여성의 노동결혼과 비혼커리어

결혼고발 5. 내 직업은 임시직? (상)

사월날씨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시부모는 나의 커리어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계실지도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행하는 역할이 그분들의 주 관심사라는 걸 알지만, 커리어는 나의 개인적 영역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못 받는 축에 속한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남편의 일과 직장에 관한 주제가 주를 이룬다. 무슨 업무를 하고, 동료들은 어떤지, 수입은 얼마나 되고, 회사의 발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장단기적인 진로 계획까지 시부모는 남편의 일에 관한 많은 것들을 궁금해한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면, 돌아오는 질문은 단 하나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만남이 반복되어도 변함없이 같은 물음만이 등장한다. 

요새 날씨가 더워서(추워서, 눈/비가 많이 와서) 출퇴근하기 힘들지 않니?

바뀌는 건 날씨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깨가 쭈욱 빠지면서 그다지 내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관심 없다는 게 분명히 느껴질 때 사람은 입을 다물게 된다.

물론,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충실히 한다. 나의 출퇴근길을 걱정해주시는 시모에게도 감사하다. 그러나 산뜻하게 감사하는 마음만 갖기에는 찜찜함이 남는다. 불평등한 제도 하에서 비판적 성찰 없는 순수한 호의라는 건 대개 차별을 전제할 따름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안이한 태도는 차별을 인지하지 못할 때만 취할 수 있다.

더 가볍고 덜 중요한 여성의 커리어

직업에 관해 말하고 싶은 건 고작 출퇴근과 같은 주변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일을 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받고 싶고, 나도 한 명의 직업인으로 인식되고 싶다. 나의 커리어가 결혼하기 전에, 혹은 출산하기 전에, 혹은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임시적으로 하는 일처럼 취급받는 것에 분노와 무기력을 동시에 느낀다.

무엇보다 이는 내게 매우 슬픈 일이다. 진로는 내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었고, 잘하고 못하고 싫어하고 좋아하는 일을 알기 위해 나의 이십 대를 보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진로에 집중했고, 노력했다. 그 시간과 마음을 모두 알아줘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내 옆에 앉은 남편, 나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커리어와 같은 정도의 존중을 받고 싶을 뿐이다. 적어도 성별로 인해 내 커리어가 가볍게 여겨지는 일이 없길 바라는 게 전부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혹시 당신들의 자식인 남편보다 내가 아무래도 가깝지 않아 이것저것 묻기 어렵다는 이유를 만들어보기엔 내 부모조차 딸보다 사위의 일을 더 중심으로 여기는 점이 이를 기각한다. 나는 시부모를 만나도, 나의 부모를 만나도 나보다 남편의 일이 훨씬 더 관심받는 것을 바라봐야만 한다. 공적 영역의 커리어가 어떤 형태로든 끊기지 않을 거라고 인식되는 사람과 언젠가는 끊길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일은 결코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한다.

나의 우선순위는 나와 관계없이 정해진다

시부모는 남편의 월급이 당신들의 기대보다 많지 않은 것에 늘 우려를 표하지만, 남편보다 적게 버는 나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버는 돈은 우리 가정의 플러스 알파 정도로 여기시는 게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돈. 우리 가정의 주요 경제주체는 오로지 남편뿐이다.

아이나 양가 부모 등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할 상황이 오면(병 간호나 초등학교 입학 등), 과연 그 돌봄노동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후보자들이 모두 직장이 있는 상황에서 누가 가장 직장을 그만두기 쉽다고 간주될 것인가? 스스로 가장 크게 의무감을 느낄 사람도, 주변의 압력이 가해지는 곳도 모두 엄마, 딸, 여동생, 며느리로 불리는 여성들일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개인적 특성을 뒤로한 채 그의 우선순위는 1위가 돌봄노동, 2위가 임금노동일 것을 강요받는다.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초중고, 대학의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여자와 남자가 동등하게 경쟁한다는 환상 속에 자라왔다. 아니, ‘여자와 남자가 동등하게 경쟁’이라는 자체를 의식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니까. 우리는 같은 책을 들고 같은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고 같은 시험을 치러왔다. 우리는 그저 동료이고, 선후배이고, 친구인,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내가 여자고 네가 남자라는 게 삶을 이렇게 좌우하는지 알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성장과정 또한 어떤 여성들에겐 당연하지 않았고, 내가 운이 좋았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여자에게 좋은 직업

어쩌면 내가 더 민감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은연중에 사회는 메시지를 던져 왔다.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는 표현. 이제 와 돌아보니 이것은 강력한 암시였다. 이는 여자에게 ‘돌봄노동과 임금노동을 이중으로 시키기에’ 좋은 직업을 뜻한다. 정시퇴근이나 육아휴직이 가능해서 가사와 양육에 시간을 들일 수 있고, 정년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서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은 돈을 벌어 남편을 기죽이지도 않는 직업이 바로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편집자주: 이 글은 <결혼고발 6. 내 직업은 임시직? (하)>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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