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붐이 일면서 개발자 직군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한동안 비인기전공이었던 컴퓨터공학과에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몰리고, 타전공 학생들까지 컴퓨터공학과 전공과목을 들으려고 하자 강의실이 이들을 수용하지 못해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도 보인다. 기업들도 인재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교육과정을 설립해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이런 시류에 잘 올라타 비전공자이면서 개발자로 성공적인 전향을 마친 이들이 많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비전공자인데 개발자를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여성 비전공자’가 본인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는 적은 것 같다. 가끔 비전공자 여성이 ‘개발자 전직 상담’ 글을 올리지만, 글을 쓴 여성분의 나이에 따라 반응이 엇갈린다. 대부분이 나이가 20대 후반일수록 개발자 전직을 말린다. 여성에게는 결혼, 육아라는 과업이 있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공부를 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는 이유가 첫번째고, 남성과 야근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여성이 버티기 힘들다는 게 두번째 이유다.
나는 29세에 개발자로 첫 취업을 했고 현재 3년차 서버 개발자다. 나는 현재 회사에서도 타 직군의 여성들에게 커리어와 관련해 많은 질문을 받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많은 여성들이 개발자라는 직업에 도전하고 싶어 한다. 이 글이 고민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원래는 개발자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고등학생 때 나는 웹사이트나 프로그램, 게임 UI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UI, UX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막연하게 시각디자인과를 가게 되면 그러한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디자이너는 다른 직업과 다르게 프리랜서도 가능한 직업이다. 이런 점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더욱 디자이너가 하고 싶었다. 왜냐면 나는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경력이 쌓이면 직장에 귀속되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개발하면 내가 꿈꾸는 프리랜서, 리모트 워커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디자이너란 직업은 나에게 썩 맞는 직무가 아니었다. 그리고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시도했지만 내가 원하는 걸 쉽게 찾지 못했고 결국 사무직으로 취업을 했다.
내가 취업했던 직장은 외국계 한국 지사로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그곳을 계속 다니길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원했던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일반 사무직이 하는 일 대부분이 회사에 귀속되기 때문에 원격 근무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국인들과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점점 더 외국의 근로 환경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결국 저축금을 싸들고 캐나다 퀘벡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갔다. 2주간 이력서를 300통 돌리고 나니 게임 현지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게임회사는 게임을 각 국가에 출시하기 전에 게임내 텍스트, 보이스, 그리고 다양한 것들을 각 국가의 문화권에 맞게 바꾸는 '현지화(localization)' 작업을 거친다. 이 일은 보통 게임회사 내부에서 하기도 하지만, 게임을 여러 국가에 지속적으로 배포하는 경우에는 현지화 회사에 외주를 주는 형태로 진행한다. 나는 여기서 한국어 LQA(Language Quality Assurance)로 일을 하게 됐다. 텍스트, 보이스를 번역하거나, 번역본을 검수한다. 배포 전에는 해당 텍스트, 보이스가 게임 내 컨텍스트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플레이 한다. 그러다보면 가끔 테스트가 아닌 게임자체의 버그를 리포팅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개발자가 해당 버그를 재현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작성해 줘야 했다. 그러면서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나는 1년뒤 비자가 만료되어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바로 국비학원을 등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