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 때 유행에 업혀 지하철 가판대에서 나노 블록 한 팩을 사와 조립 하다 만 적이 있다. 완성될 캐릭터는 미니언즈였는데, 아마 미니언즈가 뭔지도 모를 것 같은 남자 조카가 내 방 모퉁이에서 그 블록 팩을 발견했다. 그리곤 이거 블록 맞냐며, 자신이 조립을 마저 다 하겠다고 달라했다.
이상했다. 그곳에 함께 있었던 다른 조카들은 한 살 더 어린 여자아이들이었는데, 블록을 보고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내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빌려 썼고 예쁜 여자를 그렸다. 그리고 다른 색깔이 더 없냐고 물었다. 충분히 그 나노 블록을 가져가고 싶어할 법도 한데.
조카들을 보면서, 문득 나는 저 시절에 무엇을 가지고 놀았는지 궁금해졌다. 부모님은 내게 남자 형제가 없음에도 레고나 블록, 과학 상자 등을 자주 사주셨다. 그런데 다른 어른들은 나를 만날 때 요리 장난감 키트, 요술봉, 마법 목걸이를 선물로 주시곤 했다. (매직키드 마예예 목걸이라고 아는가...)
실제로 내 기억 속 마트 완구 코너에는 장난감 자동차나 블록을 사달라고 떼쓰는 남자 아이 무리와 인형을 사달라고 떼 쓰는 여자 아이 무리가 나뉘어 있었다. 그럴 법도 한 게 블록 장난감 패키지 사진 속에는 ‘아빠가 아들에게’ 블록을 조립하는 것을 알려주는 모습이 보이고, 블록 장난감 속 주인공 캐릭터 역시 남자인데다 블록의 색상마저 남자아이들 장난감에 많이 쓰이는 원색에만 한정되어 있다.1) 그러니 여자 아이가 자신을 주인공 삼아 블록을 재밌는 장난감으로 여길 수 있을까.
공주놀이 말고 블록 놀이를 할 때도 여자아이들이 스스로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놀게 하고 싶어요.
블록 장난감이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에 도전하는 최선명 대표를 만났다. 그녀는 모든 성별의 아이들이 모든 것을 쉽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게 하는 블록 장난감, 해미햄스터를 개발한다. 최선명 대표는 2016년 5월, 텀블벅에 해미햄스터를 세상에 내놓았고 목표액 5,000,000원을 달성했다. 또 프라이머로부터 지원을 받아 창업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Q. 대표님 안녕하세요, 어떤 계기로 ‘해미햄스터’를 만들게 되신 건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예고를 나왔고 그동안 디자인을 했었어요. 이유는 수학을 못 했기 때문이었죠 (웃음). 시간이 흐른 후, 대학원 과정 중에 엔지니어링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공부할수록 기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계산하는 게 너무 재밌었죠. 뭔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조금씩 찾는 거지, 수학적 능력이 부족해서 만들기 활동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살면서 엔지니어링을 외면해왔던 다른 이유로는 엔지니어링 장난감이 남자아이용으로만 나와서인 것 같아요. 저는 세일러문을 가지고 놀았을 동안, 남자아이들은 로봇을 조립하고 놀았다는 거죠. 그래서 여자아이들도 블록으로 엔지니어링 놀이를 즐기도록 하고 싶었어요.
Q. 대표님께서 석사 때 아두이노를 활용한 개발을 직접 해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개발을 시작하셨나요?
전공이 영상디자인 (Media Interaction Design)이었어요. 미디어를 사용하는 어떤 것이든 만들면 되었죠. 당시 관심이 있던 것은 물리적인 것과 모바일 소프트웨어를 결합시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아두이노2)를 시작했습니다. 물리적 모형은 직접 디자인하여 3D 프린터로 만들었고, 아두이노를 활용해 디자인한 물체와 소프트웨어를 연동시키는 작업을 하였어요.
Q. 처음에는 코딩이 익숙하지 않고, 또 자주 나타나는 에러를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그러고 있거든요! 어떻게 그 벽을 넘었나요?
요즘에는 인터넷이 너무 좋아요. 예를 들어, 물리적인 모형에 블루투스를 연결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예제가 이미 있어요. 오픈소스도 있고요. 세상이 점점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만들어진 것을 잘 조합하면 되죠. 기본 개념만 있으면 뭐든지 만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온라인으로 혼자 해결했던 것 같아요. 대신 시간이 좀 많이 걸리더라고요. 1년 정도가 지나니 프로토타입으로 하고 싶은 것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Q. 앞의 대화들로 대표님이 해미햄스터에 대한 철학과 가치를 뚜렷하고 가지고 계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이 있었나요?
다 힘들어요. (웃음) 처음 배우는 거라서요. 장점이라 여기면서도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으로는 나이가 될 것 같아요. 직원 채용 면접을 봐야 할 때 저보다 나이가 많으면 고민이 되죠.
또한, 저는 즐겁게 일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즐겁게 했으면 좋겠는데, 남한테는 쟤는 재미로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켜야 하는 과정이 생략되기도 하고, 하면 할수록 사업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죠. 만일 이런 걸 다 해야 했다면 안 했을지도 몰라요. 몰라서 시작할 수 있었다 생각해요.
Q. 여성 창업가로써 힘들었던 적은?
같이 겪어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저씨들이 많은데, 그분들께 제가 진지하게 안 느껴질까 봐 걱정이 되어요. 그러나 여성과 남성 사이에 있는 벽은 안 느낍니다.
창업가 커뮤니티에 여자 창업가가 더 많았으면 재밌을 것 같긴 한데 벽은 없어요.
누구나 가지고 놀 수 있는 블록 장난감, 해미햄스터
Q. ’해미햄스터’는 어떤 장난감인가요?
해미햄스터는 앱을 사용해 다양한 조립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블록 장난감이에요. 6가지 기본 모형과 3가지의 스틱으로 구성돼 있어 적은 부품으로 원하는 모든 조립품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블록이 실리콘 재질이라 아이들이 끼고 빼는 작업을 하기 즐겁지요.
또한, 장난감이 앱으로 연동이 되어 있어서 해미햄스터만의 이야기로 블록과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코딩을 배울 수도 있어요.
대다수의 블록 장난감은 남자아이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나와요. <The Gender Marketing of Toys: An Analysis of Color and Type of Toy on the Disney Store Website>라는 논문에 따르면, 디즈니 스토어의 ‘소녀 전용’ 인형, 미용, 화장품, 보석 장난감에는 분홍색이나 보라색 같은 파스텔 색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남녀 공용’ 장난감은 대부분 성 중립적인 놀이 도구였으나, 색상 팔레트의 관점에서 보면 ‘소년 전용’ 장난감의 색상이 여전히 사용되었죠.
초기 해미햄스터 장난감은 그 ‘소녀 전용’ 장난감의 색상을 반영했어요. 여자아이들 장난감에 자주 사용되는 파스텔톤으로요. 그러나 지금은 ‘남녀 공용’ 장난감에 많이 쓰이는 색상으로 바꿀 예정입니다.
Q. 해미햄스터의 부품 가짓수가 적기 때문에 아이들이 쉽게 갖고 놀 것 같아요. 하지만 응용할 수 있는 결과물도 적어 제한적인 놀이 학습이 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사실 타사 블록의 기본 부품도 해미햄스터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타사 제품에는 액세사리가 많을 뿐이지요. 아이들은 해미햄스터의 부품으로 입체물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의 제한은 없다 생각합니다. 상상력을 유발할 수 있는 액세서리가 없을 뿐, 제한점은 없어요.
Q. 남자아이들이 ‘해미햄스터는 여자아이 전용 장난감’이라는 인식을 가지나요?
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색상이 관건이 될 것 같아요. 장난감에 분홍색이 있으면 거부감이 들 수 있어요. 그래서 새로운 장난감은 중성적 색으로 구현하여 출시하려 해요. 최대한 듀플로 같이 원색 중심이나 채도가 낮은 계열의 색깔을 사용함으로써 성별이 색상에 구애받지 않게 노력하고 있어요.
Q. 엔지니어의 성비 불균형이 심각하죠. 그래서 혹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모르는 것을 물을 때 ‘여자 엔지니어’에 대한 인식의 불평등이나 편견을 경험한 적은 있으신가요?
사실 전 엔지니어링을 하는 동안에 딱히 불평등을 겪은 적은 없었어요. 다만 개발도 하고 디자인을 하는 회사 대표로서 인터뷰할 경우, 최선명이 남자라고 생각하시고 나오시던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Q. 엔지니어들의 성비 불균형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걸스카웃 아이들을 조명해 만든 영상을 보셨나요? 영상 속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만 팀을 이루고 싶어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여자아이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게 있는데, 남자아이들이 주도하는게 불편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남자아이들은 성인 지도자가 앞에 있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하거든요. 실제로 제가 대학원 과정 중에 블럭을 누가 더 능동적으로 가지고 노는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데려다놓고 실험한 적이 있었어요. 여자아이들은 설명을 끝까지 듣고 또 제 피드백을 들으려하는데, 남자아이들은 설명을 듣지 않고 일단 블록을 껴놓고 봐요. 만들다가 막히면 그제서야 저를 잠깐 불렀죠. 이런 흐름에서 여자아이들은 자신이 공감을 못 받는다고 생각할테고, 자연스레 남자아이들만 남게 된다 생각해요.
Q. 여자아이가 드릴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Why don’t you hand that to your brother?”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실제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하는 과정이 여자아이에겐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죠.
‘해미햄스터'는 귀여운 장난감으로 여자아이도 안전하게 무언가를 즐겁게 만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미햄스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여자아이가 엔지니어링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통념을 어떻게 재검토해야 할까요?
자연스럽게 바뀔 것 같아요. 요즘처럼 남자들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순간, 억눌려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기보다 그동안의 통념이 깨져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요. 페미니즘의 움직임들이 활발히 시작되었으니 곧 당연하게 받아들여질거에요.
마찬가지로 엔지니어들의 성비도 자연스럽게 맞춰질 것 같아요. 제가 시작한 계기도 (여자도 엔지니어링을 할 수 있다는) 흐름 중에 하나였는데, 앞으로 다른 여성분들도 그 흐름 중의 하나를 타고 당연하게 성비가 맞춰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못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몰라도, 한국도 남아 선호사상에서 벗어나 여자아이들도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요.
구글에 ‘engineer’를 검색해보면 노란 모자 쓴 건설 현장에 있는 남자들이 나오는 것 아시나요? 해미햄스터는 그런 건설현장의 딱딱한 이미지 말고, 엔지니어링이란 누구에게나 재밌는 일이구나라는 걸 생각하게 합니다.
1) <여아의 흥미를 돕는 엔지니어링 장난감 개발 연구 : 모바일 디지털 스토리텔링 텐저블 인터페이스 결합을 중심으로>, 최선명
2) 물리적인 세계를 감지하고 제어할 수 있는 디지털 장치를 만들기 위한 도구. 주로 오픈소스로 개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