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만든 여자 6. 허공조차 일으킨 여자 : 빙허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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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만든 여자 6. 허공조차 일으킨 여자 : 빙허각

꽈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빙허각은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조선 여성 중 후대에 그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드문 경우이다. 저자 곽미경은 역사책 <조선셰프 서유구>에 이어 그의 스승이자 형수인 빙허각의 일생을 이번에는 소설로 펴냈다. <규합총서>, <청규박물지>, <빙허각시선집>의 저자이자 자동약탕기의 발명가이기도 한 빙허각은 한중일 3국 실학자 99인 중 유일한 여성 실학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은 2019년 자연경실에서 출간되었다.

줄거리

어린 나이에도 명석함과 뚜렷한 주관으로 소문이 자자한 이선정은 수어사 이창수의 막내딸로 여자이기 때문에 관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불만스럽지만 대신 연경에 가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는다. 아직 세손인 이산은 연경행을 청하러 이창수와 함께 온 이선정의 소신있고 당당한 모습에 반하고, 흔쾌히 사행단 일행으로 연경에 가는 것을 허가한다. 연경에서 이선정은 청의 건륭제를 만나 스스로 자신에게 지어준 빙허각이라는 이름을 밝히며 문예를 뽐낸다. 연경에서 돌아온 빙허각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이산의 청혼을 거절하고 서호수의 아들 유본과 결혼한다. 비교적 여성에 가하는 제약이 적은 서씨 집안에서 빙허각은 시동생과 시조카들에게 수학과 천문 등을 가르치고 연암의 제자로 사사받고, 작은 실수에서 영감을 얻어 자동약탕기를 발명한다. 연이은 자식의 죽음과 집안의 몰락을 겪으면서도 빙허각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차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마침내 <규합총서>를 비롯한 세 권의 저서를 집필해낸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허공에 기대어 선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담은 ‘허공에 기대어 선다’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빙허각은 결코 녹록지 않은 조선 여성의 삶을 살면서도 자기 자신의 주인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은 인물이다. 삶의 주인으로서의 빙허각은 무엇보다 학문에 매진하는 사람으로 조선에서 여자가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에 흐트러지지 않고 학문을 갈고 닦기를 멈추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영민했던 빙허각은 그 비상함과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격 탓에 고약한 소문에 시달릴 만큼 당대 조선에서는 남다른 사람이었다. 얼른 새 이가 났으면 하는 마음에 여섯 살 때 장도리로 자기 이를 두드려서 뽑아버렸다는 둥, 그래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는 둥, 남에게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심지어는 오라비가 과거에 급제한 날에도 기뻐하기는 커녕 자신은 왜 과거를 볼 수 없냐며 악을 쓰며 울었다는 둥 빙허각의 성정을 둘러싼 소문은 무성하기 그지 없었다. 이 소문들이 가리키는 바는 실제로 빙허각이 자기 이를 뽑아버렸는지 오라비의 경사에 악을 써댔는지가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보다는 그런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 만큼 빙허각이 일찍부터 만만치 않은 성격에다 그 성격을 뒷받침하고도 남을 만큼 머리가 좋고 그만한 욕심이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좌절과 단념을 넘어서

그런 빙허각이 과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단념이 있었을까. 끝내 여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조선의 벽 앞에서 어린 빙허각은 그를 대신할 목표를 연경으로 잡는다. 단호히 내보인 빙허각의 소원에 아버지 이창수는 당황하지만 빙허각은 “제가 여자라 과거는 포기했지만, 연경에 여자가 가면 안 된다는 법은 조선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못을 박는다. 불가능의 영역에서 가장 실현시킬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를 집어든 것이다. 

막내딸을 지극히 아낄 뿐더러 빙허각이 남자로만 태어났더라면 벼슬은 따 놓은 당상이고 그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전부 이룰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이창수는 안타까운 마음에 물심양면으로 차선의 소원이라도 들어주려 애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어쨌든 여자임을 이유로 포기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부당한 일이지만 18세기 조선에서 이는 나름대로 파격적인 처사였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만나는 사람의 마음마다 뚜렷한 존재감을 남기며 마침내 빙허각은 연경에 다녀오고, 빙허각의 명민함과 당당함이 사로잡은 사람 중에는 장차 정조가 되는 세손 이산과 청의 황제 건륭제도 있었다.

조선 여성의 실학을
만들어내다

연경에 다녀온 이후 빙허각의 삶은 정조의 서거 전까지 상대적으로 평탄해보인다. 이렇다 할 고난이나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재난을 만나지 않고 이름난 학자인 연암에게서 남편과 동등하게 가르침을 받으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나름의 연구에 매진해 자동약탕기를 발명하는데다 바깥으로는 정조의 우정 어린 총애까지 받는다.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는 서씨 집안의 가풍 아래 빙허각은 소위 봉을 잡은 것처럼 보이며 팔자가 좋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모든 여자의 삶이 그렇듯 가까이 들여다보면 빙허각의 평화롭게만 얻은 것 같은 성취는 하나하나 투쟁에 가까운 끈질김 덕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빈번하게는 여공이라고 일컬어 여성에게만 부과되었던 이런저런 노역부터 드물게는 뜻하지 않은 주변의 몰이해나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이 으레 겪게 되는 사소한 질투에 이르기까지 빙허각이 현명하고 재빨리 대처해야 할 역경들은 많고도 많았다.

그러나 빙허각은 크고 작은 어려움에 개의치 않았다. 남편이 과거를 보지 않는 것이 빙허각의 탓이라고 여긴 시어머니가 놓던 결혼 생활 초반의 훼방에도 빙허각은 의연히 공부를 향한 의지를 접지 않았다. 정조 사후 온사방으로 찢겨 집안이 몰락해갈 때에도 좌절하여 주저앉기는커녕 차 사업이라는 획기적인 사업을 구상하여 실천에 옮겼다. 양반으로 태어나 살아왔음에도 직접 농사를 짓고 상업에 뛰어드는 등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구시대적인 사고 방식을 답습하지 않았다. 또한 앞으로의 시대에는 신분이 아니라 경제적 자산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것임을 간파해내는 놀라운 혜안을 보이기도 했다. 더불어 빙허각은 아홉이나 되는 자식들이 연달아 비명을 달리하는 시련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약해져 절망을 헤매면서도 결국엔 자신을 추슬렀다.

빙허각을 고통 속에서 다시 생으로 이끈 것은 책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이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소명감이었다. 평생을 준비해 펴낸 세 권의 저서는 알고 있는 것은 행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을 일생 그대로 지킨 결과이며 동시에 어린 날의 각오를 끈질기게 끌어온 비범한 사람의 성과이다. 기댄 것은 허공 뿐인 꿋꿋한 빙허각은 그렇게 영세해진 가문과 떠나간 자식들로 텅 빈 허공과 다름없어진 자신조차 일으켜내 허공이나 다를 바 없는 조선 여성의 실학을 남겼다. 자신에게 준 이름 그대로 삶을 살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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