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만든 여자 시즌 2 4. 침묵의 실수 : 줄리엣 커티스

생각하다여성 주인공소설

여자가 만든 여자 시즌 2 4. 침묵의 실수 : 줄리엣 커티스

꽈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영국 햄프셔 출신 앤젤라 채드윅의 데뷔작 <XX - 남자 없는 출생>은 난자만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된 세상이 그 첫번째 임상 시도자들을 두고 격동하는 한 시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자 출신인 작가 앤젤라 채드윅은 주인공인 줄리엣을 그처럼 기자로 설정함으로써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날 아기를 대하는 언론과 미디어의 반응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XX> 창작 노트에서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고등학교 생물학 수업을 받을 때 생겼다고 밝히면서, 당시와 현재의 미디어를 되돌아보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혹은 변화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줄거리

아이를 갖기로 한 레즈비언 커플 줄리엣과 로지는 두 여성 사이의 첫번째 인공수정 임상시도에 지원한다. 면접과 여러 검사를 거쳐 대상자로 선정된 줄스와 로지는 세간의 이목과 반대 여론을 의식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려 한다. 그러나 비밀이 누설되고 줄스와 임신한 로지는 연일 반대론자와 기자들의 포화 세례를 받으며 힘겨운 임신 기간을 보낸다. 

기자인 줄스는 언론과 미디어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티기라는 전략을 고수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그칠 줄 모른다. 로지의 임신을 확인하고 느꼈던 흥분이 가라앉자 줄스는 자신이 사실은 아이를 원하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임신을 무르고 싶다는 감정을 깨닫고 혼란스러워 한다. 설상가상으로 줄스와 로지 외에 유일하게 임신에 성공한 커플이 유산하고, 줄스의 동의 없이 진행한 아버지의 인터뷰가 기사로 나가면서 줄스와 로지의 사이마저 벌어지기 시작한다.

 

정말 아이를 원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던 크레타 섬에서의 나날을 보내고 줄스는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로지의 바람인 아이를 갖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줄스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로지의 소망을 못 들어줄 것이 뭐 있겠냐는 생각에 가깝다. 그러나 줄스는 그만 자신도 간절히 아이를 원한다고 간단히 믿어버렸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자 첫번째 실수였다.

난자 대 난자 임신의 첫번째 대상자라는 정보가 새어나가는 바람에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줄스와 로지는 매일같이 곤욕을 치른다. 집과 직장 앞에서는 파파라치가 떠날 줄 모르고 언론 덕분에 줄스와 로지의 얼굴을 알게 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비난을 받는다. 거기다 줄스의 상사는 기자 윤리 같은 것은 나 몰라라 하며 일부러 줄스를 집단 린치를 당할 수도 있는 난자 대 난자 임신 반대 현장으로 내몬다. 화제성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조용히 있으면 지나갈 거야

일러스트 이민

심지어 난자 대 난자 임신 연구를 하는 연구원의 집에 누군가 불까지 지르자 줄스와 로지는 난자 대 난자 임신을 공개한 네 명 중 누가 자신들을 배신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신변의 위협까지 받게 된다. 기자인 줄스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침묵을 택한다. 시간이 지나면 관심도 사그라들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로지는 적당한 매체를 골라 입장을 표명하길 원하지만 언론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줄스의 의견을 존중한다. 줄스와 로지는 침묵한다. 그것이 줄스의 두번째 실수였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줄스는 서서히 자신이 아이를 원하지 않음을, 아이를 무를 수 있다면 무르고 싶어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부정한다. 그럴 리 없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뱃속 아이의 사소한 태동에 감동하고 기뻐하는 로지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맞추려 한다. 아기의 존재를 축복처럼 여기고 로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로지처럼 호들갑을 떨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로지는 줄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흘리지 않는다. 줄스는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로지는 알아채고 있다. 때마침 일어난 다른 난자 대 난자 임신의 대상 커플의 유산에도 줄스는 진심으로 애도하며 위로를 건넬 수가 없다. 줄스는 혼란스럽다. 

오해는 풀지 못한 채

이런 마음을 털어놓은 유일한 사람인 줄스의 아버지가 줄스의 동의도 없이 아이를 가진 것을 후회한다는 인터뷰를 하고 기사가 신문에 실리자 줄스는 크게 당황한다. 무엇보다 로지가 그것을 볼 것이 걱정된다. 아이는 원하지 않아도 로지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줄스의 걱정은 로지가 상처받을까 염려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알고 로지가 자신을 경멸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크다. 자신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냐며 재차 묻는 로지에게 줄스는 그런 것은 없다고, 전부 아버지가 오해한 거라고 침묵한다. 그것이 줄스의 마지막 실수였다. 로지는 줄스를 떠나버린다. 자신을 성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과 삶을 꾸릴 자신이 없다면서.

줄스는 세상의 많은 여자들처럼 문제 앞에서 침묵하는 것을 택했다. 줄스는 세 번 침묵했다. 자신에게, 세상에게, 로지에게. 많은 침묵이 그러하듯 침묵은 상황을 넘기게 해줄 뿐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줄스는 침묵함으로써 침묵의 전제가 되는 사실들이 침묵하는 동안 변화를 일으켜주기를 바랐지만 침묵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줄스의 침묵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감정을 바꾸지 못했고 줄스와 로지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막지 못했고 줄스와 대등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로지와의 진솔한 대화를 틀어막아버렸다. 줄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침묵을 택한 것이 아니라 문제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침묵을 택했다. 문제를 대면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 침묵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든 골랐을 것이다. 줄스의 침묵은 비겁하고 수동적이었다.

말해야 했어

일러스트 이민

로지가 부모님 댁으로 떠나버리고 난 후에야 줄스의 침묵은 변하기 시작한다. 침묵할 게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를 겁내지 말아야 했다고 후회한다. 삶에서 로지와 함께 아기가 떠나버리고 나서야 아기에 대해 궁금해진다. 줄스는 줄곧 침묵을 선택해 도망치면서 자신이 로지와의 새로운 관계를, 아기라는 특별한 존재를 받아들일 기회에서도 도망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줄스는 먼 길을 침묵하며 도망친 끝에야 침묵이 문제에 맞서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나서서 발언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체감한다. 그리고 출산이 머지않은 로지와 머물던 안전가옥에서 비로소 고백한다. 사실은 아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태어난 딸아이를 마주하고서 비로소 빙빙 도망치던 길에서 뒤돌아 맞서자고 한다. 딸아이를 세상에 공개하자고.

산적한 문제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견디는 것은 여자들이 가장 손쉽게 택하는 싸움의 방식이다. 줄스는 침묵의 힘을 믿었고 침묵 또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가 있지만 부당한 폭로 속에서는 아니었다. 줄스는 길을 돌았지만 마침내 적절한 싸움의 방식을 찾아냈다. 줄스와 로지는 세상에 맞서 발언한다. 우리가 여기에 있고 새로운 역사를 열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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