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학교는 산 위에>는 <던전밥>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만화가 쿠이 료코의 단편이다. <던전밥>에서 만화로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던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더없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내는 쿠이 료코는 단편집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 <서랍 속 테라리움>으로 이미 특유의 기발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인 바 있다. <용의 학교는 산 위에>는 한국에는 2016년 소미미디어에서 출간된 동명의 작품집에 수록되어 있다.
줄거리
일본에서 유일하게 용을 연구하는 용학부에 입학한 새내기 아즈마 요시타카는 입학식 날 용 연구회 서클 홍보 활동을 보고 용 연구회에 들어간다. 현대 일본에 있어서 용의 활용 방식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용 연구회는 현재 활용 방안이 전혀 없는 용의 현대 사회에서의 존속을 위해 부장 카노하시의 열정적인 용 활용 탐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용의 활용 방안을 함께 모색하면서 아즈마는 단순히 용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용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아즈마는 카노하시가 이용 가치가 없다면 절멸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자 용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실망감을 느낀다. 그러나 용 연구회 선배인 미야지마는 아즈마에게 카노하시가 쓴 용에 대한 논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즈마는 현대 일본에 필요치 않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용을 어떻게 활용하여 함께 공존할 것인가를 홀로 연구해온 카노하시에게 존경심을 품게 되고, 보다 진지하게 용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괴짜 학자
한 사람의 학자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입발린 소리로 스리슬쩍 무시하고 넘어가는 불편한 부분을 굳이 지적하여 학계에서 뭇매를 맞고 배척당하는 학자다. 동시에 그런 암담한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을 밀고나가며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해결 방법 모색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얼핏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괴짜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전형적인 괴짜 학자로 치부될지도 모르는, 그러나 흔치 않은 여성 캐릭터, 용과의 공존을 위해 백방으로 힘쓰고 있는 카노하시다.
새내기 아즈마의 첫눈에 비친 카노하시는 그야말로 괴짜,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로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 괴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른 서클들은 평범하게 전단을 나눠주며 홍보하고 있는 자리에 아무리 용 연구회라지만 직접 용을 타고 나타나고, 입학식날부터 확성기로 허가되지도 않은 연설을, 그것도 '현재 일본에 용의 수요는 전혀 없고, 따라서 여러분이 취업할 곳은 없'다는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연설을 제재하는 관리자를 피해 도망치다 부실로 쫓겨들어와 숨기까지 한다. 당황 반, 흥미 반으로 용 연구회 부실을 찾은 아즈마는 일련의 소동을 일으키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카노하시의 인사를 받는다. 학자는 이렇게 등장했다.
꾸준히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하기
이어지는 카노하시의 방대한 용 활용 방안 모색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타당하고, 그래서 더욱 진척이 없다. 파고들어갈수록 용은 현대 사회에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입학식 연설에서 카노하시가 밝힌 것과 같이 전혀 쓸모가 없어보인다. 용 연구회에서 갖은 방법으로 용의 쓸모를 찾아보지만 소용이 전혀 없다. 용의 알을 요리해보고, 용의 고기로 전골을 만들어보고, 애완동물로서의 용, 교통 및 운송수단으로서의 용, 술을 담그는 재료로 용을 써보기도 하지만 저마다 상용화를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용 요리는 알이든 고기든 막론하고 별로 맛이 없고, 키우는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은 터무니없이 적다. 애완동물로서의 용은 역시 사육비에 비해 인기가 없으며 교통 및 운송수단으로서는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 등을 따라올 수가 없다. 술의 재료로서의 용은 맛은 탁월하지만 해당 용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더이상 이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방법을 강구할수록 현대 사회에서 공존하기 위한 동물로서 용이 자격미달이라는 사실만 재확인할 뿐이다. 카노하시의 고민이자 연구 자체이며 생의 과업이라고 할만한 난제다.
현재 용 연구회에서 가장 주력하고 있는 당면 프로젝트는 용을 타고 일본을 일주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비룡의 일종으로 인간을 태우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초록금눈 비룡을 타고 전인미답의 일본 일주를 해내어 언론의 취재를 통해 용을 홍보하고자 하는 목표다. 카노하시와 연구회 부원들은 의욕적이지만 일주를 하는 동안의 비룡의 식사와 매일 착륙하는 곳까지의 운송비용, 동물 보호 단체의 항의, 실질적으로 일본 일주를 하자면 1년 이상이 걸리는 기간 등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더불어 연구회 내에서도 용의 쓸모에만 집중하는 카노하시의 입장에 수의학부의 스가노는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교토의 문화유산 보호 때문에 비룡의 상공 진행 허가를 얻을 수 없게 되면서 일본 일주라는 목표까지 사실상 물거품이 된다. 의욕적인 활동과는 달리 용 연구회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그 중심에서 가장 의욕적으로 변함없이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에는 카노하시가 있다.
이루어내리라
끝없이 쓸모와 가치를 찾으려는 카노하시를 보며 쓸모를 찾는 것이 용을 좋아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 아즈마에게 미야지마는 몇년 전 자신이 본 카노하시의 논문 이야기를 꺼낸다. 해당 논문에서 카노하시는 현대 일본에 용은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결론을 냈고 바로 그 때문에 학계에서 있는대로 두들겨 맞았다면서, “저 사람이 하고 싶었던 것은 용의 제거가 아니라 거기서부터 새로 시작한 용학의 발전”이었다고 말한다. 그 후로 혼자 학계와 싸우는 꼴이 된 카노하시가 “그것을 뒤집어버리는 순간”을 보고 싶다는 미야지마의 말에 아즈마는 카노하시의 고민에 한층 더 공감하게 되고, 동시에 용의 쓸모를 찾으려는 간절함도 한층 커진다. 그러나 여전히, 용은 쓸모가 없다.
의욕이 꺾인 신입생 앞에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며 세상에는 “도움이 되는 것과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것 두가지 밖에 없다”고 단언하는 카노하시에게는 한 분야를 깊이 사색하고 연구하며 파고들어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의연한 안정감과 견고한 강인함이 있다. 그러한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여성이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내리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심지어 무언가를 이뤄내지 않아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어째서 나왔는지 이해하게 만드는 기이함까지 있다. 카노하시가 어디까지 어떻게 갈지 작중에서는 보여주지 않아도 지금의 카노하시를, 카노하시의 방법론을 엿본 우리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더없이 멋진 학자를 보며, 그 여성의 행보가 기대되어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