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만든 여자 3. 혼자가 무서운 거짓말쟁이, 주산호

알다여성 주인공

여자가 만든 여자 3. 혼자가 무서운 거짓말쟁이, 주산호

꽈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2000년대 초반 순정만화를 읽던 독자라면 누구나 만화가 윤지운을 알고 있을 것이다. 윤지운은 <HUSH>로 시작해 내놓는 작품마다 탁월한 심리 묘사와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며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과 유려한 그림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시대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작품 세계는 어느 하나 엉성한 곳을 찾을 수 없다. 현재는 이슈에서 <무명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오늘 소개할 <달이 움직이는 소리>는 윙크에서 연재되어 2016년 서울문화사에서 총 7권으로 완결, 출간되었다.

줄거리

중고등학교 시절 따돌림당한 트라우마가 있는 산호는 과거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대학을 온 뒤에도 이렇다 할 친구가 없다. 고등학교 때 친해진 해리는 유일하게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이지만 소심한 산호는 해리에게조차도 솔직하게 자신을 털어놓지 못한다. 어느날 산호는 일년이 넘도록 짝사랑한 태온에게서 고백과 함께 태온이 이중인격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태온과 사귀기 시작한 산호는 태온의 다른 인격인 레오와도 만나게 된다. 산호는 태온의 편의를 봐주는 과정에서 아무에게도 하지 말하지 못했던 속이야기들을 레오에게 꺼내놓으며 레오 앞에서는 착한 사람인 척 필사적으로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학기 말이 되어 산호는 그동안 엉성하게나마 공들여 쌓아온 관계를 전부 잃게 되고, 레오마저 뜻하지 않게 사라져버리자 비로소 혼자서도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거짓말, 예의,
기대, 두려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정도나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예의의 탈을 쓰고 있을 수도 있고 허세나 농담의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악의를 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궁지에 몰렸을 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산호도 그랬다. 산호의 거짓말은 때로 예의였고 때로 기대였고 대체로 두려움이었다.

시작은 평범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해보았을, 갖지 못했던 것을 이미 갖고 있는 것처럼 기도하듯 뱉은 말이었다. 문제는 그 말이 너무 산호와 가까운 관계에 대한 것이었고, 한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더 치명적이었던 점은 산호가 그것이 문제였다는 점을 몰랐다는 것이다. 있었던 적이 없는 아버지에 대해 종합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단편적인 사실을 친구들마다에게 달리 이야기하면서 산호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리면서 불과 어제까지만해도 살갑게 친하던 친구들이 일순간 악몽처럼 돌변하고 난 뒤에도 산호는 몰랐다. 산호 입장에서 그들의 터무니없는 따돌림은 짚이는 구석도 없는 날벼락이었다. 따라서 영문도 모른 채 잔인하게 혼자가 된 산호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다시 거짓말에 기댄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도 속이지 못하는
거짓말쟁이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혼자 있는 법을 익혀야 하는 때가 온다. 그러나 산호가 처음 겪은 혼자는 너무 끔찍하고 처참한 것이어서, 산호는 두번 다시 혼자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혼자가 되는 것이 너무 겁이 난 나머지 혼자가 되는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감수하기로 정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산호가 감수하기로 한 무엇은 산호 자신, 산호의 생각, 기호, 시간, 마음, 곧 산호의 모든 것이다. 스스로를 잃은 자리에 들어차는 것이 진실일 리 없다.

과거에서 도망치겠다는 일념 하나로 재수까지 해서 서울로 온 대학에서 산호의 인간관계는 그저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한 거짓말의 연쇄일 뿐이다. 산호는 원래 착한 사람인 척, 배려와 양보가 진심으로 몸에 밴 사람인 척, 모두에게 좋은 사람인 양 연기한다. 뒤에서는 한숨을 쉬고 남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비굴할 만큼 납작 숙이며 피곤해하고 마음껏 혼자일 수 있는 자취방이 생긴 것에 깊이 안도하면서도 산호는 가식을 멈출 수가 없다. 그것을 걷어냈을 때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만큼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호는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산호는 이번에도 몰랐다. 산호가 아무도 속이지 못했다는 것을. 산호의 엉성한 거짓말이 혼자가 되는 것을 막아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사실 어떤 것도 사람이 혼자서 보내야 할 시간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처음부터 혼자인 것이 당연했던 레오는 산호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잘 보이려 애쓰지 않은 최초의 사람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중인격으로 자기 자신으로서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레오가 산호를 만난 것이 커다란 의미였던 것 만큼이나 레오를 만난 것은 산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레오는 아무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산호는 그 단독에 마음껏 안심했다. 자신을 드러내기를 겁내지 않았다. 혼자인 레오는 산호를 혼자로 만들 수 없었으므로 산호는 레오를 속이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어떤 의미로 레오는 산호가 처음으로 맺은 인간관계였다. 눈치를 보지 않고, 어떻게 해야 미움받지 않을까 계산하지 않고, 자신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고 대한 첫번째 사람. 어쩌면 레오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고 독백하는 산호가 어떤 사람인지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레오이기에 혼자가 되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한 산호가 기꺼이 혼자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레오에게나마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산호였기에 마침내 혼자서도 괜찮은 법을 배워갈 수 있었던 것이라는 말도 된다.

함께 하는 사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운이 좋을 때 거짓말은 누구도 해치지 않고 끝난다. 운이 나쁠 때 거짓말은 거짓말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해치고 살아남는다. 산호는 운이 나빴다. 최초에 산호를 절망적인 혼자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거짓말은 몇 년이 흐른 후에도 잔상처럼 떠돌다 이제는 소중한 친구가 된 해리와의 사이도 위기에 빠뜨린다. 구태여 어두운 과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한번 두번 덮던 거짓말은 레오를 끌어내어 태온과 레오 모두에게 존재의 위협을 느끼게 한다. 그 중에 산호가 의도했거나, 하다 못해 예상이라도 한 것은 무엇도 없다. 산호는 실제로 꾸며낸 거짓보다 대가를 가혹하게 치렀다. 그러나 산호는 이제는 알았다. “혼자인 것이 무섭지는 않”다는 것을.

먼 길을 돌아 혼자를 겁내지 않게 된 산호는 바라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과 많은 것을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거짓말에 파묻혀 있던 여자 아이는 잃어버렸던 스스로와 만나게 될 것이다. 때로 이기적이고, 때로 다정하고, 때로 거짓말하고, 때로 솔직한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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