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는 <술 취한 식물학자>를 비롯하여 <위험한 벌레들>, <위험한 식물들>, <꽃의 비밀> 등 여러 권의 논픽션을 출간하여 베스트 셀러에 오른 바 있는 원예 칼럼니스트이자 출판 평론가인 작가 에이미 스튜어트가 내놓은 첫번째 장편 소설이다. 20세기 초 미국 뉴저지 주 최초의 여성 보안관보 콘스턴스 콥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콥 자매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2017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줄거리
여자 셋이서 살고 있는 콥 가의 자매 콘스턴스, 노마, 플러렛은 마차를 타고 가다 비단염색 공장주 헨리 코프먼의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콘스턴스는 마차 수리비용을 받아내기 위해 코프먼에게 재차 청구서를 보내지만 코프먼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참다 못한 콘스턴스가 직접 공장을 찾아가 수리비를 지불할 것을 촉구하자 코프먼은 콥 가의 유리창에 돌을 던지거나 납치 협박을 하는 등 그를 위협한다. 콘스턴스는 지역 보안관에게 신고하지만 코프먼 일당들의 위협은 그치지 않는다.
콘스턴스는 코프먼의 위협에 맞서는 한편 코프먼의 공장을 찾아갔다가 알게 된 루시의 실종된 아들을 찾으려 노력한다. 과거 자신이 원치 않은 임신으로 종적을 감추었을 때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었겠냐는 일종의 부채감 때문이다. 보안관들의 노력과 콘스턴스의 침착하고 합리적인 대응으로 사태는 전환되어 코프먼은 결국 재판을 받게 되고 콘스턴스는 보안관으로부터 보안관보로 일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여자끼리 사는 집에
닥치는 위협
여자들끼리만 사는 집에 가해지는 위협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공통적이다. 한 가구에 여자들만 있다는 사실은 충분한 위협거리가 된다. 하물며 20세기 초라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여성들끼리만 사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고, 대책없으며 철없는 일이라고들 한다. 콥 자매들이 처한 상황을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악한 코프먼 일당만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 인식이었다.
콥 자매들 중 맏이인 콘스턴스는 사회의 인식에 기반한 압박을 전면으로 받는 존재다. 자매들의 오빠인 프랜시스가 작품 전체에 걸쳐 애정으로 권하는 여자들끼리 살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물리치는 것도 콘스턴스의 몫이고 기껏해봐야 여자들끼리 뭘 할 수 있냐는 악의적인 코프먼 일당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것도 콘스턴스의 몫이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하러 당국에 갔다가 무시당하는 일을 겪는 것도 콘스턴스의 몫이다. 콘스턴스의 몫은 그뿐이 아니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 코프먼에게 마차 수리비를 청구하는 것도 콘스턴스이고 그들의 위협을 보안관에게 신고하는 것도 콘스턴스이며, 새로운 협박 편지에 미끼가 되어 나서는 것도,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 총을 쏴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리라 다짐하고 실제로 대응사격하는 것도 콘스턴스이다.
원칙적으로 오빠 프랜시스의 존재 때문에 콥 가의 자매들은 콥 남매들이며 콘스턴스는 맏이가 아니지만 콘스턴스는 기꺼이 맏이의 노릇을 한다. 자신이 맏이로서 콥 자매들이 되지 않는다면 프랜시스의 보호 아래 있는 자립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콥 자매들이 맞닥뜨린 사고는 코프먼의 얼굴을 하고 있을 뿐 전혀 예기치 못한 횡액은 아니다. 여성들끼리만 살고 있는 한 언제고 한번은 마주칠 자립의 위협인 것이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코프먼 일당이라는 악한의 모습으로 찾아왔지만 한꺼풀 벗겨내고 보면 기소하고 싶다는 콘스턴스를 비웃은 검사의 얼굴로, 재차 너희들은 내 책임이라는 애정어린 프랜시스의 말로도 만날 수 있다. 여성들끼리만 살고 있는 집이라는 존재 자체가 세상의 위협을 받는 것이다.
남자는 필요없어,
우리끼리 할 수 있어
이렇게 위협받는 상황에 대처하는 콘스턴스의 행동은 놀라울 정도로 합리적이다. 기소가 불가능하다면 보안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몫을 해낸다. 궁지에 몰려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두르고 보는 절박함이 아니라, 겁 먹었을지언정 공포에 질리지 않은 채로 상황을 판단한다. 그런 합리적인 행동 과정에는 이성의 화신과도 같은 노마의 냉철한 상황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 또한 플러렛의 자칫 자신이 납치당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걸맞지 않는 천진난만함도 보탬이 된다. 콘스턴스가 맏이의 몫을 해내는 데에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매들이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콘스턴스의 몫은 사실상 자매들의 몫으로, 여자들끼리 사는 집에서 여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서로의 지지대가 됨을 콘스턴스는 안다. 굳이 남자인 프랜시스가 필요하지 않음을 콘스턴스는, 노마는, 플러렛은 안다. 콥 자매들을 경호하고 코프먼 일당을 체포하려고 노력하는 보안관과 보안관보들도 점차 알게 된다. 여자들끼리만 살고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위협받는 것은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가족 구성 때문이 아니라 코프먼 일당이 악랄하고 꾸준하게 그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매들의 승리
그 결과 마침내 코프먼을 물리치고 콥 가의 평화를 쟁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매들의 승리다. 가장 앞장서서 그들에게 맞선 콘스턴스만이 아니라 노마가, 플러렛이 함께 싸워 획득한 평화다. 거기에 몇달동안 추위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옆에서 함께한 보안관과 보안관보들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들의 승리는 합리의 승리이고, 여성으로 이루어진 집의, 여성들의 승리이다. 사회가 모자라고, 비합리적이고, 엉성하고, 안전하지 못하다고 비난한 공동체의 승리이다.
그렇게 지켜낸 공동체에서 콘스턴스는 코프먼에게 위협당한 또다른 여자인 루시를 아들과 만나게 해줌으로써 한번 더 승리를 거둔다. 콥 자매들이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여성 공동체라면 루시는 독신 여성으로서의 핍박을 받는 비혼모다. 따라서 콘스턴스가 루시의 아들을 찾아주고 루시가 가정을 회복하는 과정은 여성 공동체의 여성이 독신 여성을 승리로 이끄는 또 하나의 여성 승리의 서사다.
면면이 승리를 일군 콥 자매들은 마지막으로 하나의 승리를 더 획득한다. 내내 생계가 걱정이었던 콘스턴스가 보안관보의 자리를 제안받은 것이다. 자신들을 도왔고 이번에는 자신이 남을 돕는 보안관보로써 콘스턴스는 승리의 경험을 계속해서 축적해나갈 것이다. 여성 공동체 콥 자매들은 그렇게 거듭 거듭 승리하는 여자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