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는 한국에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나이지리아의 여성 작가로, 편집자로 일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주로 시와 소설을 쓰는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는 2014년에는 시로 ‘에코 포에트리 슬램’ 경연에서 수상하고, 2016년에는 영연방 단편소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18년 발표된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는 작가의 데뷔작으로 영국과 미국의 거대 출판사와 계약되었고 영화화까지 예정되어 있다. 한국에는 2019년 천문장에서 출간되었다.
줄거리
간호사로 일하는 코레드는 저녁 식사 직전 동생 아율라의 전화를 받는다.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인 페미를 죽였다는 전화다. 코레드는 당황하거나 겁에 질리기보다는 짜증 섞인 심정으로 뒷처리를 하러 간다. 이번이 벌써 세번째다. 아율라는 페미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변명하지만 코레드는 믿지 않는다. 코레드는 살인의 흔적을 박박 문질러 닦고 페미의 시체를 석호에 빠뜨려 처리한다. 그 동안 아율라가 한 일이라고는 구석에 앉아있었던 것밖에 없다.
코레드는 자신과는 달리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율라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율라가, 페미가 죽은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아율라가 지겹고 한심스럽다. 아율라는 사랑하는 동생이지만 자꾸만 열등감도 든다. 어느 날 코레드가 일하는 병원에 찾아온 아율라에게 그동안 짝사랑해온 타데가 한눈에 반하자 그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만다. 코레드는 타데에게 아율라에 관해 경고하지만 타데는 듣지 않고 아율라와 점점 가까워진다.
팜므파탈에겐
다를 것이 없는 남자
아율라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이다. 눈부신 외모로 사람을 사로잡고는 상대를 파멸시킨다. 첫번째는 솜토라는 남자였다. 두번째는 피터라는 남자였다. 코레드가 생각하기에, 둘은 어딘지 죽어도 싸다는 생각이 있었다. 세번째는 달랐다. 코레드는 한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페미는 앞서의 두 남자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는 솜토처럼 끈적이지도 않았고 피터처럼 수상하지도 않았다. 코레드가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아율라에게는? 아율라에게 세 사람은 똑같았다. 그냥 아름다운 외모만을 원하는 똑같은 남자들. 코레드가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해온 짝사랑의 대상, 타데도 마찬가지였다. 코레드에게 타데는 상냥하고 사려깊고 똑똑한, 특별한 남자였지만 아율라에게 타데는 자신의 미모만을 보는, 다른 남자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남자였다.
코레드의 입장에서 아율라에게 타데가 고작 그저 그런 남자로 취급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외모에만 휘둘리는 시야가 좁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타데가 아율라에게 살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동생과 사랑하는 남자 사이에서 코레드는 괴로워한다.
남자를 셋이나 죽여놓고도 조심성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아율라에게 불만이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선뜻 동생의 치부를 덮어줄 마음이 들지 않아 더욱 괴롭다. 사실 치부 정도가 아니지 않은가. 코레드가 작중에서 독백하듯, 셋부터는 연쇄살인인 것이다. 심지어 살인의 흔적을 치우고 시체를 처리한 것이 바로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레드는 아율라가 타데와 가까워지는 것이 마뜩치 않다. 물론, 아율라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코레드가 보기에 아율라는 아무 생각이 없다.
아율라의 무신경함은 또다른 남자인 보예가와의 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율라는 페미를 살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뿐더러 타데와의 사이가 진전 중인 와중에 유부남이기까지 한 보예가와 여행을 떠난다. 알고보니 그에게서 사업자금까지 받았다고 한다. 코레드는 경악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필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보예가는 죽는다. 아율라는 그가 식중독이었다고 말하지만 언론에 발표된 그의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었다. 식중독과 약물 과다 복용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면서 코레드는 아율라의 못된 버릇이 다시 도진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리고 나서 코레드가 걱정하는 것은 타데다. 아율라가 아닌, 아율라의 관심 바깥에 있는, 그러나 아율라의 영향권 안에 있는 타데. 아율라가 어떻게 경찰에게 시달리지 않고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었는지는 코레드의 큰 관심이 아닌 것이다. 그런 코레드를 앞에 두고 아율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니가 정작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생각? 동생인 자신이 아니라 생판 남인 남자를 언니가 더 신경쓴다는 생각?
팜므파탈에겐 모든 것,
그 여자
아율라의 입장에서 코레드는 아율라의 모든 것이다. 코레드는 폭군 같은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감싸준 유일한 사람이다. 또한 늙은 남자에게 자신을 팔아버리려는 아버지를 막아내어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다. 그 이후부터 코레드는 아율라가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살인을 저지르고 가장 먼저, 유일하게 연락한 사람도 코레드이다. 아율라는 코레드를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비록 코레드가 깊이 납득할 방법으로는 아니었지만.
만약 타데를 좋아하냐고 묻는 아율라에게 코레드가 솔직히 대답했더라면 아율라는 타데와 만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율라에게 타데는 그저 그런 똑같은 남자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코레드는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코레드는 알지 못하지만 아율라에게 코레드는 특별하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자, 자신의 어리석고 모자란 부분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 뿐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율라가 코레드에게 갖는 특별한 감정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코레드가 밤사이 장미꽃을 죄 뜯어낸 일을 자신이 했다고 뒤집어 쓰는 정도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아율라에게 코레드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타데가 코레드를 수상하다고 몰아가자 아율라는 마땅히 자신이 해야하는 일인 것처럼 타데를 살해하려고 한다. 코레드를 지키기 위해서. 코레드를 위해서. 아율라에게는 남자 따위 보다 코레드가 더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타데를 찌르려고 한 것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율라에게는 코레드가 가장 우선이니까.
아율라는 자유롭고 이기적이다. 자신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유롭다. 그러나 아율라의 자신의 범주에는 당연히 코레드가 포함되어 있다. 타데를 살해하려다 타데에게 아율라가 찔리고 말았을 때, 코레드도 아율라에게 코레드 자신이 얼마나 큰 우선순위인지 깨닫는다. 아율라에게 코레드가 어떤 의미인지, 따라서 자신이 감싸야할 대상이 누구인지. 코레드와 아율라 자매가 남자 따위의 앞에서 갈라서는 일은 없다는 것도. 그것이 아버지이든 사랑했던 타데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