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 본즈>는 최근 영화 <레이디 버드>로 대중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은 시얼샤 로넌의 주연으로 일찍이 영화화된 바 있는 성공적인 소설이다. 작가 앨리스 세볼드의 자전적인 경험이 녹아있는 환상적이고 애틋한 이야기로 제목인 러블리 본즈(The Lovely Bones)는 ’죽음을 계기로 점점 넓어져가는, 좋은 의미에서의 사람들간의 유대감’이라는 뜻으로 작가가 만들어낸 말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2003년 북앳북스에서 출간된 이래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줄거리
이웃집 남자 조지 하비에게 살해당한 열네 살 수지 새먼은 천국에서 남은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아버지 잭은 어느 순간 범인이 누구인지 눈치채지만 하비는 경찰을 감쪽같이 속여넘긴다. 아버지를 믿은 린지는 하비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가 언니가 살해된 토굴의 설계도를 가지고 나온다. 린지를 본 하비는 마을을 떠나고 수사는 여전히 난항을 겪는다. 수지의 남자친구 레이는 세상을 떠나던 수지의 영혼과 스친 뒤로 묘하게 수지에게 애착을 갖게 된 동급생 루스와 친해진다. 1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떠났던 어머니 애비게일은 가족에게 돌아오고 린지와 아버지는 서로를 단단하게 받치게 되었으며 막내 버클리와 할머니 린도 새로운 유대감 속에 자리잡는다. 레이와 루스는 여전히 수지의 죽음으로 연결되어 신비한 체험을 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사랑스러워하던 수지도 자신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성장한다.
산 사람들은 겁나서
생각도 못할 일
사후세계를 믿는가? 죽은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교류할 수 있다고 믿는가? 사후세계를 살아있는 사람이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모든 질문에 긍정한다면 루스와 생각이 같은 것이다. 루스는 “산 사람들은 겁나서 생각도 못할 일”을 내내 생각한 끝에 해내고 만다. 자신의 방식으로 천천히. 그렇게 죽은 여자아이와 친구가 된 루스, 죽은 여자들을 찾아다니는 루스, 죽은 여자들을 기록하는 루스. 죽은 여자들의 친구, 살해당한 여자들의 살아있는 여자, 루스.
루스는 뛰어났다. 머리가 좋았고 미술적 재능도 월등했다. 루스는 고분고분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항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루스는 아주 조용히 반항했다. 교사들을 긴장하게 만들만큼 명석했음에도 루스는 무기력했던 것이다. 수지의 죽음 이후 루스가 수업에 나오지 않자 그들은 오히려 마음을 놓았다. 루스는 루스가 있는 곳을 끔찍해하고, 수지를 애도하면서도 정말로 수지가 천국에 있다면 “수지가 이 빌어먹을 곳에서 빠져 나갔다는 뜻”이라고 단언한다. 정작 수지가 살아있을 때에는 친구라고 선뜻 부르기엔 기껏해야 아는 사이 정도나 되었을 루스는 수지가 죽은 뒤에야 천천히 수지와 가까워진다. 수지의 영혼이 수지의 몸을 떠나던 그 때,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일념만으로 달음박질치던 수지의 영혼이 루스를 만지고 지나간 바로 그 때, 둘은 친구가 되기 시작한다.
천국에는 그의 팬이 많았다
다시 앞선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죽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다고 믿는가? 루스는 믿는다. 강령술이나 빙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로, 또 결과적으로 루스는 강령도 빙의도 해내고 말았지만 루스의 믿음은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그런 소환에 있지 않다. 루스는 죽은 여자들의 세계를 “살고 있는 세계만큼이나 생생하게” 느낀다. 루스는 분명 살아있지만 루스의 관심사는 이곳에 있지 않다. 루스는 죽은 사람들을 헤아린다. 루스는 뉴욕 곳곳을 걸어다니며 여자가 살해된 장소를 찾아다녔다. 신문이나 사건집을 조사하며 다닌 것이 아닌데도 루스는 알았다. 루스가 한 장소에 서서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곳의 여자들이 루스의 기억 속을 파고들었다. 비명과 발버둥, 공포와 분노는 루스에게서 전부 기록되었다. 루스는 일기에, 시에 그것들을 기록했다. 수지는 천국에서 살해된 여자들을 찾아다니는 루스를 따라다니며 지켜보았다. 천국의 여자들은 루스가 자신이 살해된 곳을 알아냈는지 궁금해하며 몰려들었다. “천국에는 루스의 팬이 많았다.”
그러니까, 루스는 산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무 가치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번듯한 직업을 갖지 않고, 미래를 위해 차근히 준비하지도 않고, 스스로를 보기 좋게 가꾸지도 않고, 마냥 걸어다니며 먼곳을 바라보고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루스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표정을 짓고 빠르게 걸었다. 그러니까, 루스는 죽은 여자들 입장에서는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었다. 뉴욕에서 루스는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익명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천국에서 루스는 모두가 기대하며 지켜보는, 그곳에 없으나 있는 것보다 가치있는 삶 속에 있었다. 죽은 여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죽은 여자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많은 경우 죽은 여자는 죽지 않았을 때에도 딱히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 된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인 죽은 여자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매한가지인 루스가 헤아렸다. 보고, 느끼고, 기록했다. 말을 걸었다.
여자에게서 여자에게로
루스가 어떻게 해낼 수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레이와 함께 가본 곧 메워질 땅굴, 루스는 몰랐지만 하비가 죽인 수지를 버린 그 땅굴에서 루스는 어느 때보다도 똑똑히 수지를 본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바라는 게 없니, 수지?” 수지가 바라는 것. 루스가 원하는 것. 수지의 영혼은 루스의 몸으로 떨어지고 루스의 영혼은 수지가 있던 천국으로 올라간다. 수지가 레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루스는 천국에서 강연을 한다. 말하고 싶은 욕구가 들 때면 나직이 ‘적어 둬’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던 루스가 구름같이 몰려든 영혼들 앞에서 이야기한다. 줄곧 찾아다녔던 여자들에게 기록한 말들을 전하고 난 뒤에야 루스는 “말하고 싶다면 한 번에 한 사람에게라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아직 어리던 루스가 우연히 만난 수지의 죽음의 이야기이고, 그것은 여전히 딴 생각에 빠져 있는 성장한 루스가 스스로 선택해서 만든 수지의 삶의 이야기이고, 그것은 살해당한 여자들의 뚜렷한 자취의 이야기이다. 살해된 여자아이들이 결코 갖지 못한 시간을 걸어 어른이 된 살아있는 루스의 이야기이다.
어느 순간부터 루스는 죽은 자들 만큼이나 산 자들의 수도 헤아렸다. 루스가 보고자한 것은 죽음이나 살해된 삶이 아니라 죽거나 살아있거나와 무관한 여자들 자체였던 셈이다. 살해된 여자들의 존재는 죽음 이전에도 이후에도 묻히기 일쑤이고, 살아있는 여자들은 아직 살해되지 않았을 뿐 여자들을 직시하는 이는 많지 않다. 묻힌 여자들 속에 루스가 있고, 직시하는 여자들 속에 루스가 있다. 루스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록했고 이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살해당한 익명의 여자에게서 살아있는 익명의 여자에게로 전해진다. 뼈대가 자라듯이, 견고하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