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SF문학을 즐기는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중편 소설로 한국에는 비교적 최근에야 번역되어 아작 출판사에서 나온 동명의 소설집에 첫번째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남자로 보이는 필명으로 활동하다 후에야 여자인 것이 밝혀져 당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작가의 이야기를 상기해보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들이 주로 기존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전복과 비판을 주요 주제로 삼는다는 사실이 한층 흥미로워진다.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그 중에서도 여성이 서사의 전면에 나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작품들 중 하나다.
소설은 한 여자아이를 묘사하며 시작된다. 생일 선물로 새 우주선을 받고 줄곧 꿈꿔오던 우주탐험에 나선 코아티, 코아틸리아 캐나다 캐스, 다들 그냥 코아티라고 부르는 여자아이다. 코아티는 모험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정거장에서 보급선 보코 호의 실종 공고를 듣는다. 우주를 항해 중 우연히 보코 호가 보낸 통신관을 습득한 코아티는 통신관에 붙어있던 이아드론 이라는 뇌내기생형 외계생명체 실료빈과 만난다. 실료빈과의 대화로 보코 호의 추적에 성공하지만 동시에 코아티는 그 사이 자신이 실료빈과 융화되었음을, 때문에 시한 폭탄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코아티가 내린 결론은,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태양이 곧 위험물질을 내뿜게 될 자신과 우주선을 불사를 수 있도록. 후에 그 태양은 코아티와 실료빈의 별로 불리게 된다.
밝고 단단한 영웅 그 자체
코아티는 밝고 강하다. 그리고 과감한 행동력, 비상한 판단력, 한순간도 사그라들지 않는 모험에 대한 열정과 용감한 희생정신을 갖추었다. 우주탐험에 대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꼼꼼한 지식과 어쩌면 아직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유연한 사고라던지, 처음 만난 듣도 보도 못한 외계생명체와 단시간에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진심어린 따뜻함까지, 놀랍게도 코아티는 이 전부를 조금의 과장도 없이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코아티는 영웅이다.
모든 영웅담의 시작이 그렇듯이 코아티의 첫걸음도 장엄하지 않았다. 연료를 가득 채우고 정거장을 떠날 때, 코아티에게는 시작부터 커다란 업적을 이루겠다는 특별한 각오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결심도 없었다. 그저 코아티는 설레는 마음으로, 안전하게 정해진 길을 가지 않는다는 약간의 짜릿함을 느끼며, 행로를 정했고, 떠났고, 세상을 구했다. 아주 작고 치명적인 친구 실료빈과 함께.
실료빈의 도움을 받았지만, 사실상 보코 호의 사고를 홀로 수습하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코아티는 시종일관 밝은 태도를 유지한다. 쉽게 실의에 빠지고 제 풀에 심각해져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리곤 하는 어떤 영웅들과는 달리 말이다. 심지어 유일한 말동무이자 조언자이면서 소중한 친구인 실료빈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석연찮음을 느껴도 다그쳐 캐묻지 않는다. 그것을 핑계삼아 토라지지도 뒤로 빠져 도망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친구를 야단스럽게 독촉하는 대신 코아티는 횡액을 만난 가여운 보코 호의 사람들을 걱정하며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인다.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마땅히 꿋꿋하게 해내는 코아티, 그 단단한 용기를 칭송하라.
의연히 위험을 끌어안고 이글대는 태양을 향해 날아가기를 결정했을 때에 이르러 코아티의 고결한 용기는 빛 그 자체가 된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코아티가 그를 해내고 말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코아티는 그것이 실료빈을 포함해 모든 이를 구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고 곧장 그 길을 따라 날았다. 코아티의 말처럼 그것은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이며, 세상의 누구도 더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고귀한 영웅 정신이다. 그것이야말로 영웅이 하는 일이다.
연방 사령관이 코아티가 날아든 태양에 코아티와 실료빈의 이름을 붙인 것도 코아티의 영웅적 행보에 합당한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며,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두 영혼에게 걸맞는 예를 갖추기 위해서다. 영웅의 이름을 가로채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연방은 영웅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회이다. 영웅이 영웅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일정 부분 영웅만의 몫이 아닌 것이다. 많은 영웅들이 그러하듯 코아티와 실료빈은 별이 되어 남는다. 그저 불탄 재가 아니라 눈부신 태양이 된다.
여자아이의 업적을 폄하하지 말라
코아티가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자의, 아이의, 여자아이의 업적이 폄하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굳이 꼬투리를 잡아 흠집을 내려는 말을 너그럽게 들어주자면, 실료빈을 만난 것은 확실히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은 영웅 따위는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은 첫 모험에서 미친 채 날뛰다 죽어버린 시신을 수습할 필요가 없다.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은 자신의 고향이 초토화되거나 자신의 좋은 친구가 홀로 남아 죄책감과 외로움에 괴로워하게 되는 것 사이에서 하나를 고를 필요가 없다.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은 고통을 참으며 곧 폭탄이 될 외계 생명체를 머리에 심고 불타는 별로 돌진할 필요가 없다. 모든 영웅은 한가지 이상의 불운을 등에 지고 있으며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그 불운을 타인과 세상에 전가하지 않고 자신을 움직이는 추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코아티와 작은 실료빈처럼.
흠잡을 데 없는 영웅인 코아티를 떠올리며 단 하나 슬픈 점은 코아티가 사실은 꽤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코아티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1985년, 코아티는 설정값보다 두 배가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만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흔히 세계를 구한 영웅이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코아티와 닮은 사람이 아니다. 픽션의 영역으로 국한해보아도 마찬가지다. 영웅 캐릭터는 대개 남자에게 주어지고 미숙하게 시작한 모험을 통해 숭고함을 얻는 것은 남자아이나 꿈꿀 수 있는 일이다. 영웅이 된 여자아이는 턱없이 드물고 그마저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단지 상상과 신화의 영역에서조차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에도 코아티와 실료빈과 수많은 그들의 친구들은 충분히 널리 남지 못했다.
이제 차분히 코아티를 떠올려보자. “노란 머리, 납작한 코에 주근깨,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초록색 눈, 있는 집 자식에다 여자애, 열다섯 살.” 바로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해낸 영웅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