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구들>의 작가 도나 타트는 전작이자 데뷔작인 <비밀의 계절>로 이미 한바탕 돌풍을 일으킨 작가다. <비밀의 계절>과 같이 살인 미스터리의 탈을 쓰고 있는 <작은 친구들>이지만 한겹만 벗겨 속을 들여다보면 이 작품의 본질이 슬픔과 슬픔을 감당하는 일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17년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줄거리
클리브가의 귀염둥이 로빈은 아홉살에 의문의 살해를 당한다. 당시 네살이었던 앨리슨과 갓난아기였던 해리엇은 로빈의 죽음으로 황폐해진 집안에서 살아있던 시절 로빈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란다. 열두살이 된 해리엇은 가족의 행복이 어그러진 것이 전부 로빈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해리엇은 무엇보다 로빈이 살아돌아오기를 원하지만 불가능한 소원은 접고 로빈의 살인자를 찾아 복수하기로 한다. 단편적인 정보와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서 해리엇은 어느새 지역의 골칫거리인 래틀리프 형제들 중 대니가 범인이라고 믿게 된다. 단짝친구 힐리와 대니를 주시하며 기회를 노리던 중 해리엇은 갑작스레 사랑하는 가정부 아이다 류와 이별하고 곧이어 엄마보다 더 엄마처럼 여기던 이모할머니 리비의 죽음을 겪는다. 대니와의 목숨을 다툰 격전 이후 해리엇은 자신의 믿음에 의문을 품고, 대니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쓸쓸히 기뻐한다.
그는 슬픔을 어떻게 메울까
옛말에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물며 든자리가 유달리 밝고 사랑스러웠다면 그 난자리가 크디 크게 느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어리고 명랑하던 난자리 앞에서 사람은 허망하여 얼마나 어떻게 슬퍼할까. 자리에 있었던 이를 알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는 세상을 자각하기 이전부터 뻥 뚫려 있던 커다란 슬픔의 구멍 앞에서 공상으로 빈 곳을 메운다. 시기 적절하지 않은 모험담을 늘 되풀이하며 이야기 속의 우상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해리엇은 오래된 슬픔이 장막처럼 쌓인 집에서 커다란 슬픔어 절어 각자도생하기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다. 어떤 식으로든 죽은 오빠 로빈을 거쳐 굴절되어 오는 애정 때문에 해리엇은 굶주렸지만 손 닿는 곳마다 애정을 갈구하지는 않았다. 해리엇은 모험 소설에 몰두하고, 강인한 의지를 지녔지만 끝내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탐험가 스콧 대령이나, 가열찬 훈련과 끝없는 단련으로 탈출의 대가가 된 해리 후디니에게 몰입하여 그들처럼 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단련을 시작한다. 숨을 오래 참고, 수영을 하며 해리엇은 후디니 같은 탈출의 대가를, 잔다르크 같은 불굴의 투사를 꿈꾼다. 해리엇이 도망친 공상의 세계는 같은 처지였던 언니 앨리슨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흩뜨려 도망친 몽환 상태처럼 여자아이에게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었다. 모험과 쟁취를 상상하는 날카로운 여자아이는 현실에서 자기 몫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공상 속에서만 머물며 만족하기에는 해리엇은 지나치게 똑똑하고 예리했다.
해리엇은 오만했고 절대 웃는 법이 없었다. 해리엇은 용감했고 맹렬했고 싸움을 요령 좋게 피하느니 수단의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새끼호랑이였다. 어린 맹수 같은 해리엇은 여린 구석을 먹어치우듯이 단단해진 아이였다. 해리엇은 로빈처럼 엉뚱하고 해사한 행동으로 마음을 끄는 대신 남에게 무관심하고 거침없는 자신의 특성을 밀고 나갔다. 고양이 위니와 타르에 빠진 검은지빠귀의 죽음을 보고 모든 슬픔이 로빈의 죽음, 돌이킬 수 없는 육체의 공포, 한없이 분노를 일으키는 바로 그 죽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실감하자 해리엇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대신 죽음에서 파생된 슬픔 자체를 걷어 없애려고 한다. 그것이 로빈을 죽인 살인자를 찾는 일이었고, 그 살인자일 것이 분명한 대니 래틀리프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것이었다. 해리엇 내부의 논리로는 합당하고 필수적인 일이었다. 새끼호랑이에 걸맞는 문제 해결방식이 아닐 수 없다.
투사
곰곰이 따져보면 해리엇의 논리는 구멍이 많다. 인과관계가 딱 떨어지지 않는 해리엇의 논리는 줄곧 삶의 빈 구멍을 상상으로 메우던 버릇에서 기인한다. 빈약한 단서들을 애써 잇느라 어디부터가 진짜 조각이고 어디부터가 이어붙인 추측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간중간 의미 없는 공상을 덧붙이고 훌쩍훌쩍 실질적인 사실을 건너뛴 부분을 지적한다 해도, 해리엇만이 행동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엄마, 회피하기 일쑤인 네 할머니들, 아예 저만치 도망친 아빠, 방관자적 입장의 아이다, 멍하니 잠으로만 도망치는 언니, 가족들을 모두 통틀어 그게 무엇이 되었든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은 해리엇 밖에 없었다. 가족들 모두가 빠져있는 로빈의 죽음이라는 구렁텅이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부딪히는 것도 해리엇 뿐이었다. 해리엇은 오래 고인 슬픔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마술사였고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는 탐험가였으며 모두를 대표하여 묵은 상실감과 싸우는 혁명적인 투사였다.
그리고 해리엇이 상대한 것은 로빈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과거지사 뿐만 아니라 대니 래틀리프라는 실존하는 성인 남성이기도 했다. 해리엇은 대니에게 무엇으로 맞섰을까? 어린 여자아이가 건장하고 도덕성이 없는 성인 남성과 대적할 때 쓸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하면 약자의 위치를 활용하여 주변의 도움을 끌어오거나 역시 약자임을 강조하여 방심한 틈을 타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해리엇은 누구나 죽일 수 있는 뱀을, 누구나 상대를 터뜨릴 수 있는 총을 이용했다. 그 앞에서 완력이나 성별은 무의미했다. 해리엇은 어설프게 궁지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죽이는 것을 원했고, 비록 실패하고 말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선택해 공상을 현실로 끌어오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스스로를 구하는 여자아이
해리엇이 노리는 대니 역시 뱀도 총도 가지고 있었지만 덩치만 믿는 멍청한 사냥감은 갈고 닦아온 기민한 포식자를 당할 수 없다. 익사시키려는 대니를 속여 위기를 넘기게 한 것은 해리엇이 후디니처럼 되기 위해 여름 내 연습해왔던 숨 참기였다. 도피처였던 공상을 현실로 끌어 온 노력이 목숨을 구하고 적에게서 승리까지 가로채왔다. 허황된 상상은 해리엇이 숨을 참고 참은 끝에 대니를 속여넘기는 순간 명백한 실체가 되어 위력을 자랑한다. 헛된 것은 없다. 헛짓이라며 비웃은 펨은 사건의 전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도중에 해리엇의 포부를 부정한 힐리도 실상을 조금 밖에 알지 못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아는 것은 해리엇 뿐이다. 실제는 상상하는 여자아이만이 닿을 수 있다.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상은 현실을 상상 가까이 가져간다. 해리엇의 공상은 해리엇을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도착한 미래는 장밋빛은 커녕 쓸쓸함 뿐이지만 해리엇은 다시 상상할 것이고, 다시 스스로를 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