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 해리스의 <초콜릿>, <블랙베리 와인>, <오렌지 다섯 조각>은 흔히 음식 3부작으로 묶이곤 하는 작품이다. 세 작품 모두에서 페이지마다 켜켜이 녹여낸 프랑스의 토속 요리 묘사와 이야기 자체의 유기적인 결합이 두드러진다. <오렌지 다섯 조각>은 음식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2004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줄거리
프랑스의 시골 마을 레 라뷔즈 외곽에 사는 미라벨 다르티장의 세 아이는 주둔하던 독일군 토마스와 친해진다. 여름 내 늙은 창꼬치 올드 마더를 잡는 데에만 몰두하던 막내 부아즈는 토마스를 만나러 남매들과 외출해야 할 때면 몰래 집안에 오렌지 냄새를 풍겨 어머니 미라벨을 앓게 만든다. 미라벨이 나치의 창녀라는 소문이 돌던 무렵 토마스는 부아즈와 올드 마더를 잡다 익사하고 토마스가 살해된 것으로 본 독일군은 열댓명을 총살한다. 미라벨의 밀고 탓이라며 집에 몰려든 남자들이 저지른 방화와 폭력사태에서 아이들과 가까스로 도망친 미라벨은 이후 토마스의 살인자이자 보복으로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하는데도 침묵하다 달아난 수수께끼의 범죄자로 알려진다. 수십년이 지나 정체를 숨기고 돌아와 작은 카페를 하는 부아즈에게 미라벨의 요리책을 노린 조카 부부가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온다. 부아즈는 그에 분투하다 마침내 스스로 진실을 밝힌다.
고집 센 여자가 버틴다
오래 묵은 거짓을 깨부수는 것은 부단히 스스로를 지켜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거대한 용기이다. 끈기있고 주변과 타협하지 않는 여자는 까다롭고 음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실상 가장 중요한 순간에 물러서지 않고 버티는 것은 이처럼 오랫동안 폄하되어 온 고집 센 여자들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프랑부아즈 다르티장이 바로 이런 여자다. 부아즈는 괴팍할 만큼 자기 고집이 센 사람으로, 자신이 유년 시절 내내 싸워왔던 어머니 미라벨과 똑 닮은 사람이었다. 둘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울 고집쟁이였고,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였으며 주변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뿐이랴, 부아즈는 보고도 잡지 못한 자에게는 재앙을 내리고 잡은 자에게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동안 잡은 이가 아무도 없다는 전설의 올드 마더를 끝내 잡을 만큼 끈질겼고, 그토록 예리하고 직관이 뛰어난 미라벨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치밀했다. 무언가 한가지 목표를 잡으면 반드시 해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무슨 수를 쓰든 억지로 하게 할 수 없었다.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강하고 비상한 부아즈는 어머니와 가열차게 싸우는 데에 어린 시절을 바쳤다. 미라벨은 앓고 있는 지병과 전쟁으로 인한 생활고, 좀체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성격 탓에 자식들을 애정결핍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붙이며 폭군처럼 군림했고, 부아즈는 미라벨의 가장 닮은 적으로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상처 입힐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한 방 먹였다 싶을 때엔 희열을 느꼈다. 부아즈는 어머니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도 그만큼 다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멈추지 않았다. 끔찍한 두통과 발작으로 일으킬 오렌지 냄새를 온 집안에 퍼뜨리면서도 가책은 커녕 어머니의 상태를 통제할 수 있다는 만족감과 어머니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쾌감에 사로잡혔다. 쓰러지는 어머니를 보곤 죽었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마음이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고집이란 이름으로
물어뜯기
이토록 공격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고집만 센 여자아이를 과연 사랑할 수 있는가. 애초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도 도움을 청해 수습하기는 커녕 그 눈덩이에 올라타 탈선한 기차처럼 내달리는 광폭하고 굳센 여자아이를. 그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른 사람이 누명을 쓰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뉘우치며 나서지 않는 약삭빠르고 간교한 여자아이를. 부아즈는 어느 모로 따져도 사랑받을 만한 여자아이가 아니다. 순순히 말을 듣는 법이 없고, 어른을 존중하지 않고, 집안일은 팽개치고 강이며 숲으로 놀러나가기 일쑤이고, 어머니의 애정 비슷한 서투른 표현을 기쁜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부아즈는 예쁘지도, 얌전하지도, 상냥하지도, 순진하게 미소짓지도 않는다. 자신을 묶으려는 어떤 시도도 고집이라는 이름으로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아즈는 사랑받을 만하지 못하고, 따라서 결코 눈에 띄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헌신적이라는 이유로 공기 바깥으로 밀려나는 미라벨과 많은 여자들처럼.
보이지 않는 부아즈가 고집을 부리는 유일한 영역은 자기 자신이다. 부아즈는 자신에게 충실히 행동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야말로 사람이 고집을 부릴 수 있는 가장 원대한 영역이 아닌가. 부아즈는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닥치는대로 이용하고 승리를 거머쥔다. 원하지 않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싸우고 버티며 막아낸다. 어머니는 자신을 몰아붙이니 대항하는 것이고, 올드 마더는 자신이 잡기로 마음 먹었으니 끝내 잡는 것이고, 조카 부부 또한 아무리 치명적인 협박을 들이대와도 자신이 머물고 싶은 곳에서 내쫓을 수도 지키고 싶은 것을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다. “미라벨 다르티장의 딸에게 뭔가를 강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유는 단 하나, 부아즈 자신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건
바로 그 고집
이런 고집은 자칫 아집이 되어 개인을 잡아먹기 쉽지만 부아즈는 미라벨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 조카 부부의 공격으로 극명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부아즈는 다시금 끝없이 싸우는 것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던 미라벨처럼 버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토마스를 죽였다며 고래고래 으름장을 놓았던 미라벨을 살인자로 버려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한번 더 거짓말을 한들 아무 상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아즈는 그 순간 어머니를 넘어선다. 진실을 말한다. 미라벨 다르티장이 삶과 거짓 중 거짓을 선택했던 것처럼 어머니로부터 성격을, 외모를, 그이의 치밀함과 거짓말과 고집을 물려받은 부아즈는 삶과 진실 중 진실을 선택한다. 싸움에서 지는 것으로 내내 끌어온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다.
결국 부아즈가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한평생 자신의 고집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책을 남기는 것으로 화해를 청한 어머니의 시도를 인정하고, 친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충실해왔기 때문에 옳지 않음을 호소하는 자신을 거슬러 비겁해지지 않는 것이다. 이리저리 악의와 기만으로 기워진 시간을 깨끗하게 튿어낼 수 있는 것은 부아즈와 같이 그 동안 존재한다는 것조차 흐려진 보이지 않던 여자들이다. 진실을 밝히며 옳은 일에 나서는 것은 사랑받을 만하지 못함을 뉘우치지 않는 이런 고집 센 여자들이다.
<오렌지 다섯 조각>은 수십년을 건너 뛴 여자아이의 성장담이다. 고집쟁이 여자아이는 고집쟁이 할머니가 되어 수십년 묵은 전쟁을 끝낸다. 삶과 진실과 자기 자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