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수년간 친밀함을 공유해온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쉽지 않다. 안다, 당신에게 악의는 없단 사실을. ‘사랑’과 ‘책임’이면 관계가 온전하게 안정되리라고 믿었으리란 것도. 사랑과 책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너무 쉽게 속단했음을, 우리 둘 다 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사랑하고 책임을 지려면 우리는 동등해야 했다. 사랑하고 책임을 지려면 우리는 비슷한 만큼의 노동과 감정을 관계에 쏟아부어야 했다. 사랑해서, 정이 들어서, 믿어서 함께하기로 했던 것이므로, 이제 와서 터져 나온 이런 이야기가 당신을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안다. 나의 입장에 서보려고, 나의 말을 이해해 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내 경험을 상상하는 데 실패한 것이 당신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과 <겟 아웃>(2017, 조던 필레 감독)이 어쩌면 당신에게 내 시선에서 세상을 볼 ‘렌즈’를 빌려줄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읽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주간지 특집 기사를 읽듯 금방 읽어 내려갈 수 있을 테니까. <겟 아웃>도 미스터리, 공포 장르이니 어렵지 않다. 내가 보는 세상을 당신에게도 익숙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적절한 교재로 두 작품만한 것을 찾기도 어렵다.
책과 영화에 나오는 커플은 일견 완벽하다. 서로를 사랑하고, 사회적으로 적절하다. 상대의 부모님이 드러내는 선입견이나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임신을 결정하는 일 등으로 두 사람이 대화하며 어긋나는 부분은 너무나 미세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본래적인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일시적인 해프닝일 뿐으로 보인다. 유독 예민한 날 어쩌다 한 번 벌어지는 일, 그래서 금세 지나갈 일일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불편함은 한 사람에게만 반복된다. 불편함이 싸움이 되어 더 큰 문제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민감함을 검열하고 상대의 결정에 찝찝하지만 순응하는 일이 어느 한 쪽에게만 자꾸 일어난다. 불편하고 어색한 긴장의 순간은 달콤한 말과 행동으로 덮어지지만, 그 장면이 지나고 나면 변한 운명과 불안은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어깨와 마음에만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이런 일은 눈에 보이는 강제를 통해 벌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문제다. <겟 아웃>의 주인공 크리스가 성공한 사진작가로서 흑인의 슬랭 대신 세련된 말투를 구사하며 아미티지 가족과 대화할 수 있듯, 소수자는 성공하기 위해, 혹은 성공하는 과정에서 얼마만큼은 강자의 규범을 습득하고 구사한다. 그러나 때로, 아니 사실은 제법 자주 ‘바람직한 규범’에 자신을 동일시해야 한다는 요구는 폭력적인 수준으로 고양된다. 영화에서 아미티지 가(家) 사람들은 수술을 통해 흑인의 육체에 백인의 정신을 심는다. 이런 설정을 통해 영화는 ‘진정한 나의 욕망’과 ‘사회적 욕망’을 극단적으로 분리시킨다. 흑인의 정신은 저 깊이 남아 ‘승자의 규칙’대로 움직이는 자신을 관람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없어도, 사회적 성공과 평가는 구조적 약자에게 ‘완벽히 웃으면서’ “모두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고백하도록 강제한다. 눈부신 미소와 고통스러운 눈물은 그래서 자주 같이 다닌다. 개인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열한다.
<82년생 김지영>은 이런 식의 분열이 훨씬 더 본질적임을 잘 보여준다. 사실 ‘좋은 딸, 좋은 학생, 좋은 여자 친구,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충동은 ‘자유롭고 똑똑하고 일 잘하고 성공한 딱 부러지는 사회인’이 되고 싶은 욕망과 충돌하며 공존한다. 둘의 차이는 욕망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있다기보다는 사회가, 친밀한 주변 사람들이 전자에 도덕적이거나 인간적인 가치를 은연 중에 더 많이 부여하고, 후자에는 쉽게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붙인다는 점에 있다. 지영 씨가 말을 삼키게 되는 이유, 자기‘만’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여자의 욕망은 종종 집단의 욕망과 일치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래서 지영 씨의 분열은 좀 다르다. 지영 씨의 분열은 억압에서 탈주하는 분열, 연대하는 분열, 욕망을 분출하는 분열이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삼켜온 말을 뱉는다. 이 말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지영 씨의 삶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당신이 내 말을 듣고 당황한 것은 실은 별난 일이 아니다. 당신만 겪는 실패도, 우리만 겪는 실패도 아니다. 다만 당신이 스스로 겪어본 적 없다고 생각해온 일들을, 원하는 바가 내 것임을 부정하거나 내가 무엇인가를 원할 수 있음을 부정해야 한다는 촘촘한 덫에 걸린 느낌을, 그래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여자를 상상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베푸는 사랑, 혼자 짊어진 책임 같은 것 말고, 함께 빚는 관계를 시작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