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책: 페미북살롱이 꼽은 페미니즘 도서 다섯 권

알다연말기획

2016년의 책: 페미북살롱이 꼽은 페미니즘 도서 다섯 권

주연

1.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여성혐오가 어쨌다구?>는 페미북살롱의 첫 주차 때 함께 읽은 책이다. 온라인 여성혐오의 시작, OO녀의 기원, 학내 페미니즘 문제, 혐오의 작동방식, 성소수자 운동 등 비교적 최근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여섯 명의 필자들의 서로 다른 이슈에 대한 깊은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동시대-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다면적 이해가 가능하다.

특히 페미북살롱에서는 생물학적 ‘여성' 혐오 뿐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까지 다루는 이 책을 통해 혐오 양상에 대한 논의를 넓히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다. 최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는 ‘소수자가 다른 소수자를 혐오하는 양상’에 대해 5장, 6장에서 자세히 짚는다.

다시 질문하자. 시스플레인, 비트랜스 페미니스트들의 트랜스 혐오, 동성애자의 바이 혐오는 각각 어떤 폭력을 예감하는 것일까? 비트랜스 페미니스트와 동성애자의 눈가에는 어떤 총구가 있기에 트랜스젠더퀴어를 혐오하고 바이섹슈얼을 혐오하는 “언어 행위를 통해서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극한의 기대감"을 품는 것일까? 이 사회의 지독한 여성 혐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2. 이/공학 X 페미니즘 | <위대한 여성과학자들>, <거침없이 도전한 여성과학자 시리즈>

읽은 책: <위대한 여성과학자들>

이/공학X페미니즘 세션을 준비하며 읽었던 여러 책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살림지식총서에서 2011년 초판 발행한 <위대한 여성과학자들>이다. 아주 앏은 책이지만 7명의 여성과학자들을 다루는 필자의 태도가 다른 어떤 책들보다 정성스럽다. 게다가 젠더 편향적인 관점을 최대한 지양하려는 태도가 눈에 띈다.  

과학자들의 생애를 다루는 책들이 주로 업적 위주로 담기는 반면 이 책은 여성 과학자들의 평소 성격이나 생활, 잘 알려지지 않은 활동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또 여성을 수식하는 데 사용되는 특유의 ‘뮤즈'나 ‘꽃'과 같은 표현이 적은 편이고 여성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어려움을 잘 포착했다.

일곱명의 여성 과학자들 이갸기 중에서도 과학자 이렌 퀴리의 생애가 눈에 띈다. 책에서는 마리 퀴리의 딸인 이렌 퀴리가 부모의 뛰어난 업적에 주눅 들지 않고 어떻게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지켰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가 프랑스 최초의 여성 장관이었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이렌은 오직 즐거움 때문에 실험을 했으며 ‘부모님처럼 큰 성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결코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렌은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이었는데도 투표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프랑스 여성들은 1945년까지 참정권이 없었다. … 이렌은 “나는 죽기가 두렵지 않아. 너무나 재미있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라는 유언을 남겼다.

앞으로 읽고싶은 책: <거침없이 도전한 여성과학자 시리즈>

거침없이 도전한 여성 과학자 시리즈 - 1
이 시리즈에 나오는 이야기는 실존 여성들과 그들의 탁월한 과학적 업적을 다루고 있다. 이 여성들 중 어떤 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것을 알았고, 어떤 이들은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어떤 이들은 업적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개인적/사회적 장애를 극복해야 했고, 어떤 이들은 좀 더 단순하고 순탄한 길을 따랐다.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번역하고 출판한 여성과학자 시리즈 도서다. 이공학 세션을 준비하며 여성 과학자들을 조사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가 현재 활동하고 있거나 살아있는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찾는 것이었다. 대부분 오래 전 인물들이거나 영어 자료 위주였다.이공학 세션이 끝나갈 즈음 실존하는 여성들을 다룬 새로운 책이, 무려 시리즈로 나왔다는 기쁜 소식이다.

3. 정치X페미니즘 |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

한국에서 여성운동 집단과 정부 내에서 여성의 세력화는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 여성을 위한 법안이나 제도들이 여성단체의 활동으로부터 바텀-업 방식으로 올라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동안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제도권 정치를 ‘현장'삼아 어떤 변화들을 만들어왔는지를 소개한다. 열명이 넘는 시니어 페미니스트의 입을 빌어서. 

여전히 ‘젊은 여성’으로 살아가기 힘든 한국이지만, ‘성별영향분석평가', ‘성인지예산', ‘호주제 폐지', ‘성폭력 특별법' 등을 만들어 낸 선배 페미니스트들의 역사가 존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도움이 된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아름답지만, 기초 지역 단위가 더 보수적이고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경우가 많다. … 상부, 하부 가릴 것 없이 정당 조직은 남성 중심으로 짜여 있어 여성 후보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을뿐더러, … 상향식 공천제는 참여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정치 개혁으로 거론되곤 하지만, 여성의 입장에서는 이렇듯 또 다른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원이 되자마자 나는 서대문구의 여성정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야심으로 여성특별위원회를 발의하였으나, 남성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몇 남성 의원들은 가정복지과 업무 보고에서 성평등이나 여성정책 얘기만 나와도 여성상위시대니 역차별이니 하면서 반여성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남성 의원도 성평등 실현을 위한 발언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없었다.

4. 동아시아X페미니즘 | <여자들의 사상>

동아시아 세션을 꾸리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책이기도 한 <여자들의 사상>을 추천한다. 일본의 페미니스트 학자 우에노 치즈코가 일본 여성들을 위해 쓴 책으로, 같은 동아시아 국가 ‘여자들의 사상’을 페미니스트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 1부에는 페미니즘의 여명기였던 1960-80년대 뿐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활동했던 일본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 및 작품이 담겨있고, 2부에서는 꼭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관점에서 일본 여성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최근의 페미니즘 담론 및 학자들을 소개한다.

일본의 고전부터 현대까지 풍부한 자료를 다루는 이 책은, ‘내가 쓰는 언어로 나와 같은 곳에서 먼저 페미니스트가 되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책의 서문은 ‘나와 같은 것을 공유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함을 깊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내 피와 살이 된 말 …… 이렇게 부르고 싶다. ... 나는 젊은 시절에 1부에 써 내려간 책들을 읽었다. … 나는 그녀들도 나처럼 고통 속에서 새로이 말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모국어였던 터라 그 말들이 몸속 깊숙이 들어왔다. 조금 앞서 인생을 걷는 그녀들에게서 내가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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