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긴장으로 시작했던 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 시즌 1이 4가지 세션, 15주차의 만남을 거쳐 지난 연말 마무리됐다.
말하고 공부하고 나누었다
한여름에 2016년에 한국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로 첫 주차를 시작했고, 그때 한국에서 이어져 온 유구한 여성혐오의 역사를 정리하자 연표가 되었다. 이어서 혁신과 진보를 자처하는 IT 업계의 노골적인 성차별 이슈를 통해 연구실, 직장 등 이공학계 현장에 있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2016년 한국의 여성 이공학도들이 경험하는 현장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왜 여자한테 쿼리를 짜는 중요한 일을 시켰어?”, “너네는 순번 정해서 임신해라.”)과 이/공학계의 위대한 여성들의 숨겨진 역사를 함께 들으며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오래된 성차별의 역사 속에 여전히 서 있는 지 돌아볼 수 있었다. 동시에 이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공부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여성들의 계보 또한 이어져 온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서,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에 힘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특출나고 뛰어난 여성 개별의 사례만으로 여성의 삶이 바뀌기는 어렵다.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이 정치적으로 힘을 가지고 여성의 삶과 관련한 정책들을 밀어 올리고, 중요한 결정들을 할 수 있어야 구조적인 차별의 문제가 완화되고 평범한 대다수의 여성들의 삶도 나아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오래도록 2등 시민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여성의 위치를 되돌아보고, 남성 시민, 남성 정치인을 기준으로 세워왔던 정치 분야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돌아보며 2030 영페미니스트로들이 지금 활발한 운동의 에너지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 지 토론했다. 특히 당시 낙태법 관련한 이슈, ‘OO계 성폭력' 해쉬태그가 논란이 되면서, 중앙정치 영역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문제를 개인이 아닌 정책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데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진행할 수 있었다.
이공학 세션의 시작에는 실리콘 밸리의 성차별 이슈를 다룬 ‘CODE: debugging the gender gap’을 보았고, 정치 세션의 마지막에는 스웨덴의 여성주의 정당 ‘F!’의 다큐멘터리 <페미니스트 창당 도전기>를 보며 마무리 했다. 이렇게 백인 페미니즘 위주의 자료들은 정말 많지만 그게 한국에 사는 여성인 내 이야기와 같을 수는 없었다. 페미니즘 물결이 아무리 거세도 아시안 페미니즘은 여전히 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여성'으로서 보태야 할 이야기들은 많았다.
이처럼 서구 페미니즘의 담론, 역사, 성취만큼이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아시아의 페미니즘을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된 동아시아 세션에서는 한국의 위안부 운동에서 시작해 대만,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를 돌아 일본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다. 아시아에서도 얼마나 활발한 여성주의 운동이 있었는지, 특히 한국의 근우회와 독립운동가 여성들의 존재, 최초의 페미니스트를 기리는 국경일이 있는 해외의 사례까지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지식들이 넘쳐났다.
북살롱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페미니즘과 관련한 수많은 사건들이 터졌고, 사람들은 매주 모여 그런 것들을 주제와 연관지어 나누었다.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함께 할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있고, 그래서 일상적으로 많이 이야기 하고 힘을 얻기가 비교적 쉬운 편인 사람들도 있는 반면 그런 공간을 쉽게 얻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때로 북살롱이 그런 공간이 되어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느슨한 동료
매 세션마다 느낌도 조금씩 달라지고 구성원들도 조금씩 바뀌었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가 지금 여기서부터 뭘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던 점이 놀라웠다. 공부가 공부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던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낯선 사람들이 매주 마주치면서 공유된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한 혼란스럽고 긴장된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신뢰하고 사람들과 느슨한 동료가 된다는 페미니스트로서의 또 다른 도전이 있었다. 모여서 이야기 하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다른 노력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을 랜덤하게 모으고,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기준들에 함께 동의하고, 안일하지 않게 시간을 꾸리는 데에는 필요한 것들이 꽤 많았다.
어떤 사람은 북살롱을 참여하는 과정에서 어떤 지점에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최소한의 공동 질문을 가지고 모여서, 서로 다른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맥락을 추가하며, 초기의 질문을 확장하고, 세계를 다시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서로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하는 방식 외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오지만 돌아갈 때는 함께 만들어 본 불완전한 세계관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
"깨우침, 좋은 기회, 호기, 일종의 ‘르포르타주’,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사건, 노타시오 충동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노타시오는 외적 활동입니다. 내 책상이 아니라 길거리나 카페, 친구들이 함께 있을 때 하는 행동이죠. ‘수첩’은 나의 아주 오랜 실천 ... 입니다.”
“강도가 높은 것은 현재의 삶입니다. … 따라서 소설의 ‘준비’는 현재의 삶과 평행인 텍스트, ‘동시대적’인 삶, 공존하는 삶에 대한 텍스트의 포착과 관련이 있습니다. … 현재를 메모하면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이 현재가 당신 위에, 당신 아래에 떨어짐에 따라서 말입니다. … 한편으로는 메모하기(notation),'메모‘의 실천, 노타시오의 문제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메모에서 어떻게 소설로 넘어가느냐의 문제입니다.” - 롤랑바르트, <마지막 강의>
나는 이 이야기에서 ‘소설'이 곧 ‘미래'로 바뀌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현재의 삶을 포착하는 메모들을 통해서 곧 어떤 미래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러 앉아서 함께 무언갈 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것들을 적고, 읽어내리고, 대화를 만들어나간 시간이 있었던 것,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글로 정리해 공유한 일련의 과정이 페미니스트로서의 나를 지탱해 주었다. 살아가며 어떨 때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 지에 대한 내 삶의 메뉴얼 몇 조각을 끼워넣고 나니 불안정한 삶이 조금은 덜 흔들리는 기분이다. 지금-여기를 사는 내가, 지금-여기-나의 언어로, 다음에 올 지금을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어떤 작은 메모를 만들어 내는 것. 페미북살롱 연재가 그러한 의미를 가졌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