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북클럽&살롱 : 9-1. 페미니스트 정당 창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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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북클럽&살롱 : 9-1. 페미니스트 정당 창당기

주연

영화 ‘페미니스트 정당 창당기'는 스웨덴의 페미니스트 정당 F!(Feminist Innitiative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가 만들어지며 겪는 우여곡절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큐멘터리 'The Feminist Initiative'의 프로모션 이미지

F!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여러가지다. 이 조직이 정당이어야 하는지, 로비 단체여야 하는 지와 같은는 전략적 측면부터,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관철하기 위해서 조직에서 어떻게 절차화할 것인지 등과 같은 문제, 혹은 공동체 조직원 내에 있는 세대차이나 퀴어와 헤테로섹슈얼 여성 사이의 입장 차로 인한 갈등처럼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도 드러난다.

1. 티나 
페미니즘 운동에서 퀴어 여성의 자리

영화의 초반에 가장 많이 부각되는 인물은 ‘티나 로젠버그(Tiina Rosenberg)’다. 

티나 로젠버그

그는 핀란드 출신으로, 스웨덴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스톡홀름 대학과 룬드 대학에서 젠더학 교수로 재임중이며 문화 정책, 평등, 민주주의, 인권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퀴어 페미니스트'로 지칭하며, 2005년도에 시작 된 스웨덴의 페미니스트 정당 F!의 창당에 참여했다.

“‘이성애자 핵가족’에 기반한 페미니스트 운동, ‘일하는 헤테로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 지겹다. 여기서마저 내가 가족권 이야기를 해야하냐”

창당 준비과정 초기에 티나는 쓴 소리로 일갈한다.

그러나 티나는 결국 자신이 가족권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소수자들의 권리 증진이나 동물권 대신 동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정책) 우선권을 양보하고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게 된다. 이에 대해 ‘왜 티나는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후순위로 둬야만 하는 건가’라는 질문과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내가 티나였다면 탈퇴했을 것 같다. 이 사람들과 연대라는 형태는 가져갔겠지만, 내가 나가서 내 관심사가 최우선일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했을 것 같다. 설령 대의를 위해 스웨덴 최초의 여성 정당을 만든다고 할지라도.”

“영화 속 논의가 한국에서도 적용이 되잖나. 이성애를 하는 헤테로 여성 중심적으로 판이 짜이는 게 있고. 페미니즘 모임에 가도 너무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아 이성애자겠거니’ 단정 짓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다.”

후에 티나는 창당 모임에서 빠져나간 옛 동료의 모함으로 고통 받는다. 언론 인터뷰에서 티나는 ‘그래서 페미니스트 정당에 가입한 것을 후회하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심한 괴롭힘을 당해왔던 티나는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지금으로서는 답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자신에게 중요한 이슈들이 당장 존중받지 못했더라도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티나의 모습에서 참가자들은 감명을 받았다.

“구성원 모두가 합의에 도달할 영역까지 서로 케어를 해주었기 때문에 티나도 조직에 남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자신의 의제가 무시당하는데 남아있기란 어려울 것 아닌가.”

이어서 티나가 계속 F!의 활동을 놓지 않은 것에 대한 다른 의견도 나왔다.

“더럽고 치사해도 어떻게든 권력의 중심부에 남아있는 데에서 오는 힘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티나가 가장 큰 예다. 포기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거다. 사람들 사이에 계속 존재하면서, 소수자 이야기를 계속 발화 하는. 그게 정말 강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참가자는 연대하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희석되고, 벗어나면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소수자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했다. 티나의 존재는 나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조직적 정치적 운동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할 지점을 남겨 주었다.

2. 데브림 마비
이민자 여성은 정치 주체가 될 수 있나

첫 공동 당대표로 선출 된 세 명의 여성 중 터키 이민자 출신 여성인 '데브림 마비(Devrim Mavi)'가 경험했던 어려움도 위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어린 시절 터키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을 피해 스웨덴으로 이민해 왔다. 이후 기자로 활동하던 중, F!의 창당 과정에 참여하며 공동 당대표로 선출된다.

(우) 데브림 마비

그는 거리 캠페인 과정에서 위협을 받는 등 폭력적인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또 협박 메일도 다른 활동가들에 비해 더 많이 받는다. 거기에는 젠더 차별에 더해 인종 차별적 폭력까지 뒤섞여 있다. 이렇게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되는 소수자이자 공동 당대표 임에도 그는 공권력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 계속 처해 있다. 

자연스레 새누리당의 이자스민 의원 이야기가 나오며 한국의 상황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페미니즘 이슈로 논의가 이어졌다.

“한국으로 옮기면 새누리당의 이자스민 의원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 수없이 많이 이주해 온 이주 아시아 여성들에 대해 한국의 페미니즘 진영에선 얼마만큼 그들을 동료로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자스민 의원은 국내 모든 정당에 입당을 요청했지만 새누리당에서만 이를 수락했다. 국내 진보 진영이 얼마나 민족주의적 보수성을 가지고 있는 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젠더 뿐 아니라 인종적 차별 문제까지 경험하는 이주 여성들과 연대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M이 이야기 했다.

“결국 여성 정치인 총량이 많아져야 한다. 노선은 다를 수 있으나 방향성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결과적으로 한 정당 안에도 분과가 여러 개 생기고 각각이 해소할 수 있는 문제들이 더 많아지고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여성 총량 자체가 국회에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자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점(젠더), 외국인이라는 점(인종 및 국가 권력), 이주 노동자라는 점(계급 권력)에서 살펴봤을 때 가장 약자의 위치에 처해있다. 

한국에서는 소위 ‘다문화’라며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적 노력을 드러낸다. 그러나 용어 자체에서 드러나듯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지우며 ‘문화적 다양성'을 채워주는 존재로만 그리고 있다는 문제가 존재하기도 한다. 총량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주 여성들에 대한 문제를 짚어내고 연대하는 것 또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3. 소피아
젊은 여성들은 어디에

“영화 시작부터 계속 ‘젊은 여성들은 어디에? 지식인들 위주인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활동하는 사람들, 발언하는 사람들, 카메라에 비춰지는 사람들은 대체로 모두 나잇대가 높았고 젊은 여성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영원히 고통받는' 청년 여성인 소피아가 등장한다. 소피아는 지식인 계층도 아니고, 나이가 많지도 경력이 오래 되지도 않았다. 그저 대학원에 다니고 일자리를 구하는 평범한 청년 여성으로,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정당 창당에 참여했다. 그는 늘 가장 안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일한다.

정당  Feminist Initiative의 로고

처음에 페미니스트 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주요 인물들은 소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교수나 기자인 여성들 위주였다. 비슷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비슷비슷한 생각과 질문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점차 부당함을 느낀다. 

소피아는 지속적으로 이런 지식인 중심, 윗 세대 중심, 권력이 있는 쪽에 더 관대한 의사결정 방식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나 대중에 다가가지 않는 정당의 방향성에 대해 날카롭게 평가하며 자신이 믿는 가치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 하기를 놓지 않는다.

“소피아가 상처받은 와중에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다 같이 감정적인 것들만 케어하고 공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가치를 혁명해 나가려고, 일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좀 다치더라도 가치를 보며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좋았다.”

결국 소피아는 노력한대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공동 당대표가 되는 기회를 얻는다. 당대표가 된 후에도 만족하지 않고 대표들 중 가장 어린 자신이 ‘그저 청년 대표 역할에만 머무르고 싶지 않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한다. 이러한 모습은 늘 기계적으로 청년과 여성을 할당하는 상황을 마주하는 우리에게 통쾌함을 주었다.

소피아라는 캐릭터를 통해 ‘젊은 여성’이 조직 내부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 지 되돌아 보는 대화를 나누었다. 곧 운동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의견을 나누는 훈련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무슨 말을 했을 때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를 해치려는 건가, 나를 비난하려는 건가’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최대한 아무리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 해도 말이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조직 내 갈등이라는 주제로 되돌아가면,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의견에 일치가 안 되는 사안들은 매우 많다. 다만 개인으로서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고. 이런 경험을 작은 단위에서부터 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조금 다른 의견도 나왔다. 운동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희생자 서사에 대한 우려였다. 지금 들끓고 있는 한국의 영페미니즘 운동은 자기희생 서사를 가지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지겨운 희생 서사 좀 끝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빠져나가서 동료들을 모함한 에바(Ebba)처럼 되거나 자기 희생을 보상 받고 싶어서 다음 세대에 짐을 지우게 될 거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누구를 밀어줬으니까 다음은 내 차례겠지’ 같은 것이다. … 결과적으로는 자기가 지치지 않고 오래 하는 게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인데 대부분은 대의를 위해 헌신하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거다. 그러기보다, 내 정체성과 당위성을 잃지 않고, 소진시키지 않으면서 넣어두고 계속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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