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북클럽&살롱 : 11-2. 지금-여기-우리의 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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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국가로부터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다른 곳의 페미니즘 정치 운동, 그리고 이전 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이 해 온 활동을 살펴보고 난 뒤 우리가 던진 질문은 ‘그렇다면 지금-여기-우리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의제는 뭘까?’였다. 그 첫 번째는 가장 개인적이며 가장 정치적인 전쟁터인 ‘여성의 몸에 대한 자율권'이었다.

여성의 몸이 국가의 것, 가정의 것, 사회의 것이 아닌 여성 개개인의 것이 되어야 공적 영역에서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많은 이슈들에 나서서 싸울 수 있다. 지금은 여성 시민의 몸을 결혼을 해야 하는 몸, 출산을 해야 하는 몸 등 국가의 인구조절을 위한 ‘재생산’ 요구에 맞추게 하고 가정에 잡아둔다.

최근 크게 논란이 되었던 모자보건법 개정 및 가임기 여성 출산지도에서도 알 수 있듯, 국가가 여성의 출산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을 때 여성 개개인의 삶은 손쉽게 지워지는데다 피임의 의무와 부담을 일방적으로 지게 된다. 심지어 국가는 여성의 생리마저도 우습게 여긴다. 

“남자들이 나서서 ‘생리대 그거 얼마 한다고'라고 이야기하는 게 웃기다. 매달 여자만큼 피를 흘려 보고나 하는 소리인지?”

“생리컵을 처음 써봤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더라. 해방의 느낌 같기도 하고 그 기억이 강렬하다. 약간 맛본 해방감 같은 것이랄까. 그런데 생리컵도 국가에서 유해물질로 수입을 못하게 막아뒀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재난 구호물품에서는 생리대가 빠졌다가 뒤늦게 논란이 일자 포함되고, 생리컵은 유해물질로 금지한다. 법과 제도는 모두 '남성 시민' 기준으로 정비되어 있다. 젊은 여성에게 필요한 법과 제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의사결정권자가 만들어내는 체계 속에서 여성 시민은 지속적으로 제도권 바깥으로 밀려난다. 

여성의 몸에 대한 무지는 곧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여성 청년 정치인인 한 참여자는 지방에서 남성들이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그는 ‘싸움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직위인데, 피가 흐르는 전쟁터의 맨 앞에 설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는 제대로 대답을 못했는데, 두고두고 화가 나더라. 며칠 뒤 생리컵 넣느라 화장실에 앉아 피묻은 손으로 생각했다. ‘여기가 전쟁터다’라고. 내 몸이, 삶이 전쟁터인데, 남성들이 뭘 알고 나에게 저런 질문을 던지나? 피는 내가 여기서 매달 흘리고 있다.

정치권은 경제권과 함께

몸에 대한 자율권 다음으로 여성이 정치적 힘을 가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월급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신입 초봉이 남자-여자 간 200만원이나 차이 난다. 군대 갔다 온 걸 경력으로 치기 때문이다.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회사인데도 군대를 경력으로 쳐서 남자는 2년반, 여자는 3년 일해야 주임을 달게 된다. 근속 연수가 13년인 여성이 여전히 선임대리인 경우도 있다.

소득은 곧 권력이다. 그리고 경제권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성별 간 임금격차 문제는 심각하다. 남성은 이미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제적 권력에서도 우위를 차지하며 이는 곧 다른 부문에서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높은 직급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자리에 여성보다 남성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이는 조직 내에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의사결정권의 억압과 경제권의 교묘한 결합이다.

‘동일임금, 동일노동’이 이루어진다면 여성들은 좀 더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며, 직장을 잃을 걱정 없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남성들과 동등한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하는 바는 매우 크다. 이는 성별과 상관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감각이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는 기회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이런 구절을 남겼다.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여성의 경제권과 동일임금 동일노동이 페미니즘의 중요한 의제인 이유다.

‘4인 가족’ 모델의 생애주기 끝장내기

위에서 살펴본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현재 자본주의는 가부장제와 결합된 ‘남성 가장 모델'에 기반해 남성이 가정의 소득원이기 때문에 임금을 더 줘야 한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즉 기존의 공부-대학-취직-결혼-출산 이라는 근대적 생애주기 모델, 4인 가족 모델을 깨야 한다.”

남성 역시 가장 역할 모델로 인해 압박감에 시달리는 게 괴롭다면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벌고, 똑같이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함께 기존의 남성 부양자 모델을 깨버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미 존재하는 ‘4인 가족’ 모델의 생애주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있을까? 

그 사례로 진선미 의원이 2014년부터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생활동반자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한 <파트너 등록법>이 언급되었다.

법안에는 ‘국가는 성애적 관계의 남녀 간의 결합만을 법적으로 보호하며 이들만이 그에 따른 보험, 주거, 고용, 의료, 금융, 복지 상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니까 기존의 이성애자 여-남 결합을 한 사람들은 제도와 법망 안에서 보호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배제되는 것이다. 법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 이 법안을 2016년 12월에 다시 추진하기 위한 지지서명 운동이 있었다. 개인 간 결합의 다양한 형태를 보장함으로써 여성의 삶 역시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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