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 19. 경계의 문제와 페미니스트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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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 19. 경계의 문제와 페미니스트 정치학

주연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지난 세션에서 살펴 본 대만의 민주화/근대화 과정은 페미니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발제자는 지난 세션 이후 어떻게 여성이 동등한 근대화 주체로서 역할을 하고 지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 어떤 제도적인 장치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궁금해 했다.

'동아시아와 성 정치’에 대해 조사하던 중 민주주의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근대화라고 본다면, 여성은 이때 동등한 주체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여성이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동아시아 페미니즘 마지막 세션에서는 일본을 살펴봤다.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는 페미니즘이 배제되어 있었다. 《동아시아의 근대성과 성의 정치학》(한국여성연구원 편, 푸른사상사, 2002)는 일본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는 과정 속 여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전전이든 전후든 일본의 정치 체제 안에서 과연 페미니즘 정치학이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인지, 혹은 페미니즘 정치학이 일본의 민주주의 체제 - 근대 정치학에서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세션에서는 주로 전쟁 이전의 천황제 아래의 근대화 시기, 그리고 전후 일본 국가 건설기의 한계를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되짚어 보았다. 특히 근대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작동한 ‘가족국가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페미니즘 정치학이 풀어야 하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국가 이데올로기 안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불가능하다’

먼저 일본의 근대화 과정, 일본 국가 건설 정치학 중 천황제 하의 일본 근대화 시기 가족국가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돌아봤다.

가족국가 이데올로기가 등장한 배경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시작했다. 서구 제국주의에 노출됨에 따라 정치 체제는 봉건주의에서 절대군주정치제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서구 열강들에 의한 식민화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최우선 과제는 어떠한 희생의 댓가를 치르더라도 영토를 지키는 일이었다.

일본은 서구 외세로부터 자국을 방어하고 지키기 위해 어떤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야 했는데, 그게 가족국가 이데올로기였다. 일본은 제국주의 아래 동아시아 전체를 천황에 속하는 일종의 가족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즉 가장(家長) 역할을 하는 이는 천황이었다.

제국주의 조칙(효, 애정, 화합, 겸손, 박애)에 쓰인 사회적 코드들은 국가 가족의 가장인 천황과 연결되었다. 이렇게 국가 안으로 ‘가족'이라는 윤리 개념을 들여와, 폭력적 정치권력을 자연적 질서로 위장했다. 페미니스트 정치학에서 바라보는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가족국가 이데올로기에서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의 하부 층위가 된다. ‘공적인 것’도 좀더 큰 ‘공적인 것' 앞에서는 ‘사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이처럼 위계적 질서에 따라 ‘공'과 ‘사'는 변화했다. 가족국가는 근대국가 체제를 위해 끌어오기에는 매우 ‘후진 체제’였다. 이렇게 가족국가 이데올로기가 공사 영역을 왜곡시키며 여러 문제들로 확장되었다.

학문적인 시야에서 사적인 영역을 배제하는 문제. 성별과 성을 가족제도로 격하하거나 계급 문제를 노동문제로 격하하며 정부와의 문제로 위치시키는 것 역시 근대 정치학이 여성을 무시한다는 증거다.

여성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었나, ... 그 역사적 기원은 무엇인가, '성적 지배의 실체, 특정한 체계, 그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을 이해하기 위해' ... 역사를 재정의하지 않을 수 없다(Mizuta, T. , 1973)

근대 국가에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배제된 존재’

가정폭력을 ‘사적 문제', ‘사생활 문제'로 규정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이처럼 안/밖, 공/사를 나누는 국가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존재를 배제한다. 하지만 이렇게 배제되는 존재, 차이를 시작하는 존재로서 여성들은 근대국가에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특히 근대 국가를 구성하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유효했다.

전쟁 후 민주주의자들은 근대국가제체를 ‘새로운 것’으로 이야기 하지만 결국 이 근대국가체제를 옹호하는 ‘우리들'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전통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 근대 국가 체제를 옹호한 민주주의 철학자들이 이야기 하는 ‘일본인'들은 누구인가라는, 결국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시작된다.

여성은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차이의 지점으로 존재한다. 여성들은 '개인'이 아닌 차이 사이에서 중첩된 존재다. 중간적인 존재들, 차이의 경합 사이에 있는 존재다. 결국 여성 주체 자신도 그 자신의 경계를 분명하게 확정할 수 없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근대 정치학이 전제하고 있는 ‘동질적인 정체성’에 대해 비판한다.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전통적 정체성이 아닌, 차이들이 서로 경합하는 존재들에게 전통적인 정체성이 타당한지 질문하며 더 나아간 논의를 이끌어 냈다.

천황제 하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의 딜레마

천황제 국가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력을 주장하는 것은 곧 천황에 대해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국가 구성원 하에서 이루어진다. 시민권을 '인준' 받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천황제 하의 여성운동의 딜레마는 천황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 민족 침략 음모에 공모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고 해도 일본 여성은 온전한 시민이 될 수 없었다.

민족주의 하에서 일본 내 여성운동은 여성 주체들 간의 차이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일본 내 ‘다수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민족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 구성원을 재정의 하는 방식 찾아낼 과제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정치적인 것”과 “주체”에 관한 페미니스트 이론을 통해 진보적으로 성찰할 수 있었다. 가족국가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 자체를 은폐한다는 그 점에서 정치적인 행위였으며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왜, 어떻게 이것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떤 영역을, 무슨 의미로 그것이 정치적이라 생각하는지, “우리”란 또 누구인지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균열을 낼 수 있는 것은 페미니즘 정치학이 될 수 있다.

대담

일본과 다르지 않은 한국

"박정희 역시 우리에게 일본의 천황 같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박정희는 근대 한국의 '아버지'다. 그가 집권하면서 근대화와 산업화 모두 이루어졌잖나. 국가와 남성 지도자상이 일치하면서 권력이 강화되었고 군대문화가 한국 사회에 남아 계속 작동한다."

"한국 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국부>라는 개념. 대만에는 장제스가, 싱가포르에는 리콴유가 있다."

“김정일 김일성도 있다…” (일동 웃음)

남성을 ‘국가의 아버지'로 놓고 근대화를 이룬 국가들은 일본 말고도 많다. 한국에는 ‘반신반인'이라는 박정희가 있었고, 북한과 대만,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천황제라는 공식적인 제도만 없다 뿐이지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국가라는 경계, 근대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과제를 정당화 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부패한 정권이나 혁명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권력에서 배제하거나 모성적 주체라는 왜곡된 방식으로만 만든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김제동은 얼마 전 촛불집회에서 “국가는 국민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실언해 논란을 빚었다. 아무리 세상을 바꾸고 싶어도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안의 여성 혐오는 더욱 깊숙히 존재한다.

남성적 상상으로 건립된 사회에서 여집합으로 존재하는 여성

'여성 주체가 차이의 지점으로 존재한다’, ‘분리되어있으나 중첩된 존재들'이라는 이야기들이 와 닿았다. ‘경계'란 결국 권력을 가진 이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배제할 목적으로 만든 것일 뿐이다. 모든 경계들은 중첩된 부분을 갖고 있는 게 자연스럽다. 이를 억지로 나누려고 하는 것 자체가 목적성 있는 행위다.

‘공적인 것’, ‘정치적인 것’들은 남성 주체들의 입맛에 맞게 호명된 뒤 여성은 그것의 여집합인 ‘OO 하지-않은-사람’으로만 지칭되어 왔다. 여성은 호명된 것들의 여집합이나 잉여를 도맡아야 했다.

예외 상태를 이야기해 온 아감벤 생각이 났다. ‘벌거벗은 삶’인 조에(zoe)는 ‘경계 바깥으로 완전히 배제된 것도, 그렇다고 포함된 것도 아닌 존재'로 내외부가 구분되지 않은 중첩적 존재다. 이게 딱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포함적 배제'의 상태. 여기에 여성시민의 자리가 있지 않나.

이처럼 여성은 누군가 그어놓은 경계에서 중첩적 잉여적 개념으로 분리되어왔기 때문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모호함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던질 수 있는 새로운 질문들이 있다. 페미니즘 시각으로 정치학을 봤을 때, 다른 걸 상상하고 제시할 수 있는 거다.

책에서 저자는 근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말하는 ‘우리', 즉 ‘일본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와 비슷하게 지금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기준들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질문하게 만드는 것은 기존의 체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발견하는 민족주의와 가족 이데올로기, 그리고 불가능해졌던 페미니즘 정치학의 문제를 되돌아보면서 서구에 대항하기 위해 가져다 쓴 것이 하필이면 가족 이데올로기였을까 싶어 다들 씁쓸해졌다. 동아시아의 여성은 서구에 의해, 같은 민족/국가의 남성들에 의해 이중적으로 배제되었으며 여전히 ‘2등 시민'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문제들을 발견해 낼 수 있고, 비판하며 뛰어넘고 다음 시대의 상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건 페미니즘적 시각과 페미니스트들이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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