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치 의제를 구현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여성 대표자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여성이 여성을 대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나? 나아가, 제도권 정치 영역 외에서의 운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제도권 정치의 바깥에서 페미니즘은 어떤 방식으로 정치 운동이 되어가고 있는지, 포스트-메갈 세대의 페미니스트 정치 운동에 대해 스스로 되짚어 보았다.
여성 대표자의 딜레마
참여자 Z는 여성 정치인/의사결정권자가 기존의 남성 의사결정권자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소수자성 때문이다.
“여성은 세상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역사적으로 유구하게 억압 받아온 전통이 있지 않나.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소수자나 억압받은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를 여성의 특징으로 보는 것도 문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성을 정의하는 일인 동시에, 여성과 페미니스트에게 짐을 지우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에서 하나의 소수자성을 가진 소수자가 다른 소수자성을 가진 소수자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가정일 수 있다. 레즈비언들의 바이섹슈얼 혐오, 서구 헤테로 페미니스트들이 아시아 여성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오독 등이 그 예다. ‘여성이니까 너도 이해해야지'라는 식으로 더 많은 부담이 지워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특히 여성 정치인에게는 ‘여성이니까’ 지워지는 부담은 과대대표성의 문제도 있다. 특히 실수하거나 과실이 생겼을 때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강조되어 비판 혹은 비난받는 경우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대표해야 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이은재 의원이 조희연 교육감에게 잘못 던진 질문에 대해, 그의 문제를 ‘컴퓨터도 모르는 멍청한 여성'으로 대표해 비난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멍청한 남성들은 ‘멍청한 남성'으로 대표되어 욕먹지 않는다.”
그 외에도 늘 여성을 위한 활동과 정책을 펼쳐야 한다거나, 더 많은 소수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기대 역시 여성정치인들이 경험하게 되는 당사자 정치, 정체성 정치의 어려움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다른 소수자들을 언제나 이해할 수 있는가/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결국 개개인마다 가능한 범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청소년 혐오를 하고 있진 않은지, 일상 속에서 매순간 적당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거기서부터 새로운 가능성이 시작되기도 한다고 보는 참여자들도 많았다. 단일한 가치를 쫓는 이들은 내부적으로 균열이 적을 수 있지만,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기로 약속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는 차이를 조율해나가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러한 차이와 갈등은 이전보다 풍성한, 더 나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토대가 된다.
우리 세대의 페미니스트 정치 운동
- 일상에서, 또 공적영역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정치적 행위는 무엇일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기존 질서에 더 많은 여성들이 편입하는 것’과 ‘일상 속에서 새로운 판을 짜는 일’ 중 어떤 것이 더 적절한 방식일지 고민했다.
“여전히 두세 명이라도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는 것, 공부를 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큰 운동의 공간은 이런 소규모의 모임 혹은 넷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당내에서 활동해서 뭘 조직하고 의견을 올려보내고 이런 운동에 대한 감이 없는 대신 다른 것들은 잘 할 수 있다. 티셔츠를 만들고, 뱃지 만들고 그것들을 팔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전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운동의 공간은 의회-중앙정치와 기존의 시민사회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다. 특히 2010년대에 나타난 넷 페미니스트들은 거리와 온라인 공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하며 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참여자 E는 호주제 폐지 운동 승리를 예로 들며 조금 다른 의견을 내기도 했다. 여성이 권력의 중심에, 의사결정권 자리에 있다는 것이 여성의 삶에 좀 더 큰 단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여성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 지는 것이 중앙 정치 영역의 분위기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론 시민운동이 받쳐주지 않았으면 안 되었겠지만, 노무현 정권이 없었으면 호주제 폐지가 얼마나 가능했을까 싶더라. 당시 여성가족부 뿐 아니라 사법부 장관이 강금실이었다. 위의 결정권을 여성이 쥐고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느꼈다.”
이처럼 일상에서 하는 실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페미니스트 운동 방식들과 더불어 페미니스트들이 기존 정치 체계에 뛰어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일상과 중앙정치는 서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참가자 Z에게 정치란 “잘못된 것에 관한 합의”를 만들고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을 모으는 일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그러한 합의들을 만들어 나가는 활동이 곧 중앙 정치로도 이어진다고 보았다.
“아직 우리에게는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합의조차 없다. 정치는 결국 사람들이 좀 더 모일 수 있는 의제를 세우고 그걸 중심에 놓고 힘을 합쳐 싸워야 하기 때문에, 이런 합의들을 거쳐 주제를 정해 운동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 차원에서 더 많은 합의가, 대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뒷받침될 때, 원내 진입이나 조직적 정치 운동은 결국 전략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지금처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쉽게 지칠 것이다’라고 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토로하고, 헤어지는 과정이 반복될 뿐 실제로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이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문제의식을 실천으로 연결시키고 싶다는 욕망이 곧 정치적인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디딤돌이 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다.
“지금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하는 게 제일 어렵다. 자기 공간에서 자기의 이슈를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시작해서 사람들을 모아내는 일도 중요하다. 그 자리에서 ‘그거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는 게 가장 정치적인 행동이다. 후보나 정치적인 의제가 떴을 때, ‘내 의견은 이런 방향이야’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것 역시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에서, 시민활동으로, 일상의 영역에서 정치를 이어나가는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에 좀 더 다각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해석들이 또 다른 정치적 실천을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