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북클럽& 살롱: 1. 역차별, 군대, 남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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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북클럽& 살롱: 1. 역차별, 군대, 남성성

주연

책 소개 & 책 선정 배경

가장 먼저 다룰 주제는 ‘지금-여기의 페미니즘’이다.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윤보라 외)>를 토대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 책은 여섯 명의 필자들이 온라인에서의 여성 혐오, ‘OO녀’ 담론, 성소수자 혐오, 학내 페미니즘 문제 등 비교적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여(학생)휴(게실)의 이불이 고까워 - 공간과 젠더 

“여학생 휴게실이 대두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 ‘깔아 놓은 푹신한 이불’이 있다는 걸 되게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런 공간을 왜 여자라서 갖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여성의 경우 평소 공간 자체가 편안할 수 없기 때문에 휴게실을 만들었다는 생각에는 못 미치고 ‘그냥 누울 수 있다(남학생)'는 것과 ‘학교에서 이불을 덮고 누울 수 있다(이불이 비치 된 여학생 휴게실의 경우)'는 차이를 더 크게 보는 거죠.”

“그러면서 저한테 ‘남학생 휴게실도 만들어줘’ 하는데, ‘그걸 왜 나에게 이야기 해’. (웃음)”

“여학생으로서 학교 생활하는 몇 년 간 끊이지 않고 들어야 했던 질문 중 하나가 ‘총여학생회/여학생 휴게실, 그런 게 왜 필요한 거냐?'였거든요. 이 질문은 늘 ‘그건 역차별이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고요. 4장에 나오는 ‘논지당 사건’은 그런 뒤틀린 의문과 정서를 반영한 상징적 사건이에요.”

온오프라인 학내공간의 젠더 불균형

이야기는 남초 학교, 남초 학과를 졸업한 참여자 H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H는 차례를 보다가 가장 화가 나는 주제를 다룬 4장 ‘남성 피해자론과 역차별론’부터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글만 읽었을 뿐인데도 당시 온라인 게시판에서 오고 갔을 이야기와 분위기가 ‘절절 끓게' 공감이 갔다고 했다. ‘학교'라는 공간 역시 젠더적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어떤 학내 이슈가 생기든 발화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발화하는 지가 모두 젠더 권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온라인 공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들이 이어서 나왔다. 학교마다 있는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미 대부분 남초 커뮤니티로 게토화 되어 여학생들은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렇게 논의는 젠더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몸’에 대한 사회학적인 상상의 부족

‘몸'은 주로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으로 인지된다. 그래서 몸에 대한 경험 역시 전부 개인적 경험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만으로는 보통의 공간이 어떻게 성차별적으로 형성되어 있는지, 여성의 몸은 같은 공간에서도 어떻게 다른 경험을 하는 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

참여자 J는 살면서 줄곧 ‘나 개인의 불편함’이라고 생각해왔던 문제들이 단지 ‘내 몸'이라서 겪는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여학생 휴게실'의 존재를 통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내 몸이 ‘여성의 몸'이라서 혹은 다른 요인들로 인해 겪는 문제임을 알게 될 때 그동안 내가 살아온 공간,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비로소 반추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조치 중 하나인 ‘여성 전용 공간'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마다 ‘역차별'론이 마치 짝처럼 붙어 등장하고는 한다. ‘여성 전용’만 붙으면 남성들은 굉장히 분개하는데, ‘여성들을 필요 이상으로 배려해서 남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으면 ‘정말 그런가?’싶기도 하다.

군대와 역차별

대한민국의 혐오 연대기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대한민국의 혐오 연대기]를 보면,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성 혐오의 유구한 역사의 시발점은 1990년대 후반의 ‘군가산점 폐지 논란'이다.

위의 연표에서 볼 수 있듯 1950년대부터(분명 그 이전에도) 여성을 라벨링하고 잘못된 이미지를 덧씌워 억압해 왔지만,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는 1990년대 후반 무렵에 시작된다. 본격적인 정보 사회로 진입하며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더 민주적이고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넘쳤던 시기다. 그런데 군가산점과 관련한 헌법 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는 온라인 상에서 여성들을 향해 들끓었다. 이러한 온라인상의 분노는 부산대학교 월장 사건 등 오프라인 공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군대 가라고 한 건 여자가 아닌데?

온라인 공간의 여성혐오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1장 뿐 아니라 4장에서도 군대 이야기는 중요한 이슈다. 책에도 나오듯 군대 문제는 역시 여성-비남성의 인정을 가장 많이 요구하는 동시에 남성 피해자론이 가장 널리 인정되는 이슈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군대, 역차별, 남성 피해자론이 한 지점으로 엮이기 시작했다. 

“책에 보면 ‘따라서 많은 경우 군필 남성에게 중요한 것은 군대 경험을 피해와 차별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일이 아니라 군대 경험에 대한 비필자-비남성-여성의 인정이 된다.’라는 말이 나와요. 정치 이슈로 이끌어가기보다는 개인적인 반감과 일정 집단에 피해를 주장하는 데에서 끝나는 거예요.”

“‘그런 불만들을 단순히 여성인 나에게 이야기할 게 아니라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했더니 ‘순진한 소리’라는 반응이 돌아와서 어이가 없었죠.”

“저도 ‘이 문제를 차라리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심지어 '성평등한 정책을 내는 정치인이 나오면 여성들이 표를 안 줘서 안될거다' 라고 말하시기도 하더군요. 그게 저희 엄마였어요.(웃음)”

이러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희한할 지경이다. 남성들은 군대 문제를 비롯해 자신이 경험한 피해들을 ‘남성의 피해’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피해자임을 매우 강조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사회적 차원, 시스템 개선의 논의를 발전시키려는 지점에 오면 매우 무기력한 태도를 취한다. 이렇게 구미에 맞게 ‘젠더 문제’를 요리조리 정체화하는 모습은 제법 흥미롭다.

이런 ‘남성 피해자'들이 주체적인 문제 해결 대신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요구하는 방식은 문제의 근본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자신이 ‘남성'이기에 경험한 문제의 원인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은 것으로 상정한 ‘비남성'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남성'의 대표는 ‘여성’,그리고 ‘미필자'다. '남성 피해자'들은 그들에게 인정 및 해결까지 요구하는 해괴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그런데 과연 ‘피해'만 있을까? 

군대에 다녀온 ‘군필’ 남성들이 얻게 되는 경제적 우위는 매우 크다. 오죽하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는 ‘남성인 것이 스펙'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다. 군대가 나쁘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시스템에 균열을 낼 의욕이 딱히 없는 이유는 그것이 이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이득 또한 주기 때문은 아닐까?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군대 문제가 어떤 삼각형 구도 안에서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1. 정치적으로는 ‘빨갱이 논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2. 경제적으로는 군대를 다녀와서 받을 수 있는 더 나은 경제적 대우를 위해
  3. 문화적으로 본인의 ‘남성성’을 인정받고 지키기 위해

군대를 없애거나 바꾸는 데에는 큰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 덕목에 가깝다. 오히려 ‘비남성-여성-미필자'는 이러한 덕목들을 갖출 수 없어 자주 배제와 소외를 경험하는 실질적인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권력을 지키게 해주는 강력한 요소가 바로 ‘남성만’ 할 수 있는 군대 경험이다. ‘군복무는 자신의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 때문에 국가로부터 강요된 피해이며 괴로운 경험이다.’ vs. ‘하지만 ‘내’가 다녀온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인정받아야만 한다’와 같은 역설적인 주장이 계속 유지되며 거기에 맞는 희한한 논리들을 만들어내는 이유일 수 있겠다.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남성성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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