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엔 여성의 몸과 삶, 정치의 연결관계를 살펴보았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일상의 영역에서도 실천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어졌다.
일상 정치의 어려움: 페미니즘 영업하기
중앙 정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일상 가운데에서 문화를 전복시키는 방식의 운동이다. 페미니즘 원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작년부터 시작된 ‘메갈발 페미니즘’은 주로 이러한 일상에서의 전복적인 운동들을 중심으로, 중앙 정치 영역까지 힘을 실어주는 강력한 바텀-업 양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일상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대화’조차 벽에 부딪힌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뭉쳐야 하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끝까지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인지 매 순간 고민하게 된다.”
“‘이해 못 하면 버리고 가자’는 이야기가 많잖나. 사실 그러고 싶을 때가 많긴 하다. 내가 그런 것도 가르쳐줘야 하나? 하면서.(웃음)”
이처럼 페미니스트들이 타인을 설득하는 어려운 작업을 지속가능하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논의의 단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사람들의 프레임은 뭔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 뭔지를 파악해야 한다. 함께 세운 전략을 통해 설득의 에너지를 덜 소모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내가 가진 중요한 자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설득을 이어가겠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된다면-하면서 약간 영업하는 마음이 드는 거다. 아이돌 팬처럼, ‘메타 덕질을 할 거야’(웃음). 페미니즘도 그런 식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 중요한 건 결국 컨텐츠인 것 같다. 재미있는 애니든, 페미니스트 팬질이든 매개되는 요소가 필요한 것 같다. 배제를 부르는 경우는 보통 현실과의 접점 없이 학술적으로만, 담론으로만 접근할 때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꾸준히 페미니즘 컨텐츠가 많아졌으면 한다.”
대담: 페미니스트 정당 창당 가능성
여성을 정치적으로 강력한 집단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당 창당은 가장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정당이 만들어질 가능성에 대한 대담이 이어졌다.
E: “그래서,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정당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시나?”
Y: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조금은 힘들지 모르지만, 결성되고 난 뒤 원내 진출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 한다. 오히려 기존 정당에서 페미니즘 이슈나 페미니스트들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J: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나’를 약자의 자리로 위치시키고 정치화하는 활동은 즐겁고 유쾌한 과정만은 아니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지만,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J: “나는 반대로, 과정은 오히려 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들어지고 난 뒤 무얼 할지 합의하는 과정이나 공격받는 일 때문에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기존 여성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 ‘누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존 여성 정치인들이 현재 페미니스트 운동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회의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E: “일단 새로운 정당은 그 권위가 불안정하다. 활동 중인 페미니스트 여성 정치인들도 예를 들면 ‘더불어민주당에 있는 게 신생 페미니스트 정당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O: “꼭 페미니즘 정당이 아니더라도 정당 자체가 새로 만들어지지 않은지도 좀 됐다. 그래서 가시화되는 정당 구도는 잘 안 깨지는 것 같다. 이름만 바뀔 뿐.”
H: “하지만 여전히 F!의 구드룬 같은 ‘선배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역할은 중요하며 필요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의제화를 시켜야 하는지, 대중들에게 다가갈 방법은 무엇이 있는 지 등 지혜를 나누며 주도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Y: “해 볼만한 일일 것 같긴 하다. ‘사람을 모으겠다’고 마음 먹고 모으면 분명 많을 거다. 혹시 정당으로서 뭔가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어떤 의미로 보다 발전된 생각과 의제들을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J: “최근에는 이런 소규모 모임이 많다. 그게 많은 이유도, 어쨌든 에너지는 폭발하는 중인데 이걸 대체 어디다가 꽂아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웃음) 의회에 바로 꽂고 싶은데.”
Y: 맞다. 과녁이 없는 거다. 그래서 텀블벅에만 계속 꽂히고 (웃음) 텀블벅 보면서 ‘와 이거 정당 회비로 들어갔으면…’ (일동 웃음)
J: 이걸 제대로 물꼬를 트지 않으면 언젠가는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흐름이 없어질 것 같진 않지만, 적절한 시기에 물꼬를 터서 실질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H: 맞다. 그렇게 조금 더 지나면 좌절해 버릴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