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 6. '퀴리 부인' 말고 아는 사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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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 6. '퀴리 부인' 말고 아는 사람 없어?

주연

들어가며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만든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영상은 여성 어린이들에게 ’여성 발명가를 얼마나 알고 있니?’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발명가들을 보여주고 아이들의 놀라움과 흥분이 담긴 표정을 담았다. #MAKEWHATSNEXT(다음 무언가를 만들어봐)'라는 해시태그로 끝나는 영상은 성인 여성들에게도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어릴 때 가장 재미없는 책은 위인전 류였다. 모두 먼 서양의 이야기였고, 죄다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과학 분야에서는 유독 여성이 없었는데, 마리 퀴리의 이름은 누구나 기억한다. 그마저도 퀴리 ‘부인’이라고 쓰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성과를 내 온 여성들의 존재를 대체로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성인이 된 지금이라도 어떤 여성들이 있었는지 아는 순간에 느낄 수 있는 두근거림을 공유하고자 고대부터 근, 현대까지 뛰어난 여성 과학자들과 그들의 업적, 여성으로서의 삶이나 비화를 살펴보았다.

퀴리 부인 말고 다른 사람은?

‘과학자’라 했을 때 생각나는 것들이 무엇인지 묻자, ‘폭탄머리를 하고 있는 백인 남자’,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 ‘위험해 보이는 실험 도구를 들고 있는 사람’, 아인슈타인, 에디슨, 이휘소, 황우석(!) 등이 나왔다. 반면 ‘여성 과학자’를 물었을 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리 퀴리가 나왔다.

“퀴리 부인!!!?”
 “아니다, 마리 퀴리라고 해야 한다(웃음).”
“산드라 블록(웃음)”, “고스트 버스터즈”.

‘여자가 과학은 무슨’이라는 고정관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조사를 통해 알게 된 대부분의 여성 과학자들이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반대로 인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여성의 교육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의 공식적인 배제를 통해, 이후에는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성역할 강요로 인해 학업이나 연구를 지속할 수 없어 괴로워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여성 인물인 마리 퀴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리 퀴리는 바르샤바 대학의 굳게 닫힌 문을 뒤로하고, 당시 여성에게 입학이 허용된 파리 소르본느 대학의 입학 시험을 따내기 위해 어려운 파리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여학교를 졸업한 마리는 남학생만 뽑는 바르샤바 대학교와는 달리, 성 차별이 없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싶어했으나 학비가 없었기 때문에 3년간 시골의 부유한 농가의 가정교사로 고용되어 고용주의 딸과 아들을 가르쳤으며, 나중에는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했다.’


뉴턴의 오류를 해결하며 아인슈타인의 중요 이론(E=MC^2)의 기초를 마련한 물리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 역시 여성이라서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을 총체적으로 경험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에밀리 뒤 샤틀레.

그는 결혼과 출산 이후 과학의 세계에 진입할 수 없어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가 남자였다면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과학아카데미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풍요로운 환경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업를 열정적으로 지원했던 아버지 마저 ’책 읽는 여자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내 딸이 드디어 미친 게야. 지난주에는 카드 판에서 2,000루이 넘게 따더니, 세상에 그 돈의 반을 책 사는 데 썼다는군. 매일 책 읽는 여자에게는 신이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라.”
– 1724년, 루이 니콜라, 에밀리 뒤 샤틀레의 아버지

또 그는 남성 연인보다 뛰어나면 안될 것 같다는 압박을 받았고 여성이기 때문에 연구가 평가절하당하는 것을 걱정했다.

“볼테르가 상처 받을까봐 몰래 실험을 해야 했다. 아직 내 연구결과를 제출할지 결정하지 못했지만 여자인 내가 주목받지 못할 건 뻔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진지한 판단의 대상이 되고 싶을 뿐이다.”
– 1738년, 볼테르 몰래 과학아카데미에 제출할 논문을 준비하던 에밀리 뒤 샤틀레

샤틀레는 라이프니츠의 취약한 이론을 보완하는 작업 등 수많은 과학 이론들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그의 업적과 이름보다 ‘볼테르(Voltaire)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내가 왕이라면, 여자에게 인간이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갖게 해줄 텐데. 특히 이성에 관련된 모든 권리를."이라 밝히며 당대의 여성의 교육 부족을 지적하기도 했다.

공부하기 위한 투쟁

11세기 초에 유럽에서 최초의 대학이 만들어졌다. 당시 여성은 대학 교육에서 배제되어 입학이 불가능 했고, 1108년이 되어서야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에서 최초로 여성 입학을 허용했다. 그리고 700여 년 뒤인 1865년에 공과대학으로서는 최초로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MIT)에서 여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교육의 배제는 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지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이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뛰어넘어야 하는 제 1의 방해는 물론, 부모로부터의 방해였다.

‘최초의 러시아 제국 과학협회의 회원으로 선출된 수학자’, ‘근대 유럽시대에 수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처음 받은 여성’, ‘과학저널 첫 여성 편집위원’, ‘수학교수로 임명된 첫 여성’. 이 모든 대단한 수식어가 붙는 여성 수학자 소피아 코발레스카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독일에서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위장 결혼까지 했다. 그렇게 간 독일에서도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청강생 자격증만 줬다. 그는 간신히 베를린 대학 수학 교수로부터 개인 강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다.

코발레프스카야가 독감이 겹친 폐렴으로 죽음을 며칠 앞둔 시기에 독일의 한 잡지와 인터뷰 내용이다. 병석에 누워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코발레프스카야는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Q. “성이나 나이라는 이유 때문에 수학 연구에서 어떤 방해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까?”
A. “사실, 아버지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배운 여성을 싫어하는 큰 편견이 있었습니다.”

가정의 영역으로 묶어두기

마리 퀴리는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이지 않나.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사람은 저 사람 뿐이다. 그런데도 퀴리 ‘부인’이다. 여성을 끊임없이 가정의 영역에 가둬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정말로 특출난 결과를 갖고 오지 않는 이상 인정받을 수 없다. 멍청한 남자들은 이렇게나 세상에 많이 나와서 쓰레기 같은 것들을 잘만 만들고 있는데도(웃음).

세계 최초의 여성 대학교수인 로라 마리아 바시(1711-1778) 역시 결혼 문제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

1738년 바시의 결혼 계획이 알려지자 학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시간을 뺏길 것을 걱정하는 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바시는 자기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실험실습도 하도록 허락받았다. 대신 연구와 학생 교육에 필요한 도구나 소모품 등은 바시의 봉급에서 해결하도록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학 당국이 그 비용도 지급했다.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 근대 유럽 초기의 여성 의학 교수들 중

여성을 가정 영역으로 한정 시키려는 이러한 문제가 현재도 마찬가지로 공공연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하면 직업인으로 보지 않는다. 출산 휴가 다녀온 뒤 돌아오면 경력 단절이 심각하다. 그러면 집에서 코딩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다. ‘이제는 그런(전문적인) 일 못할 것 같다’며 자존감이 깎이는 경우도 많다.

H는 ’그동안에는 나 자신을 한번도 결혼할 사람, 애를 낳을 사람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며, 그래서 출산과 결혼이 왜 내 커리어와 관련 있는지 몰랐다'며, ‘주위에서 결혼과 출산을 한 뒤 겪게 되는 저런 상황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문제가 되겠구나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여성을 남성에게 주어지는 트로피, 출산 기계로 받아 들이는 사회에서는 여성 본인의 선택이나 그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전에 어떤 일을 했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싶건 그저 ’경단녀'일 뿐이다.

누구나 누군가의 돌봄과 집안일과 육아를 경험하고 나서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여성이 가정에서의 역할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이로 인해 커리어상의 차별까지도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건 아니다.

성과 무시하기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여성 과학자가 꾸준히 연구를 이어가고 성과를 내더라도 다음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성과를 가로채 버리거나 공로를 빼앗기는 경우다.

1950년의 로잘린드 프랭클린.

남성 동료들로부터 부당하게 공로를 빼앗긴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여성 과학자는 로잘린드 프랭클린 (1920-1957)이다. DNA 구조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왓슨과 크릭이 바로 그 남성 동료들이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철저한 실험을 통해 DNA의 나선 구조를 입증했으며 이 실험에 근거해 왓슨과 크릭의 초기 모델의 허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왓슨은 프랭클린을 '반항적인 신데델라, 여성적인 매력을 보이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한 여성'이라고 평가했다. 명백한 여성혐오다. 또 프랭클린의 과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그녀의 사후에야 그 업적을 언급했을 뿐이다. 이들의 언행은 어떻게 남성 과학자들이 여성 과학자들을 바라보는 지를 잘 보여준다.

"로지(프랭클린)는 날카로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주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만일 옷차림에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아주 멋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 31살의 나이에 영국의 10대 같은 옷차림…."

비슷한 사례로 조셀린 벨 버넬(1943-)이라는 과학자가 있다. 그녀는 대학원 연구 중에 자전하는 중성자별인 펄서를 발견하며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예견했던 중력장을 입증하며 외계 행성 발견에 중대한 지표를 세웠다. 그런데 이 발견으로 상을 받은 것은 남성 동료였던 휴이시였다. 벨 버넬은 제외되었다. 심지어 버넬은 기자들로부터 자신의 발견에 대한 의견을 듣는 대신 "마가렛 공주보다 큰지, 남자 친구는 있는지"와 같은 질문만을 받았다. 그녀가 ’여성 천문학자'라는 것이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여성 과학자들은 노벨상 수상 뿐 아니라 학회 가입이나 교수 임명 등에서도 배제와 모욕을 당했다. 상대성 원리만큼 중요한 현대 물리학의 발견으로 여겨지는 뇌터의 정리를 만든 독일의 수학자 에미 뇌터(1882-1935) 역시 마찬가지였다.

뇌터는 괴팅겐 대학의 강사로 임명될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지만 무급으로 연구와 수업을 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식 임용에 대해 교수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유명한 수학자이자 뇌터의 정식 임용을 주장했던 힐베르트는 뇌터의 임명을 지지하기 위해 “여기는 대학교이지 목욕탕이 아니다"라고 했다.

익명화

여성이기 때문에 성과를 삭제 당하는 일들은 여성을 ’익명'의 존재로 만들어 내는 데에 일조한다. 1946년 2월 14일 최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에니악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애니악을 만든 6명의 젊은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존재는 지워지고 남성 엔지니어들만 유명해졌다.

이처럼 자신의 의사와 관계 없이 익명화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여성의 성취에 뒤따라 오는 부당한 공격이 뒤따르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하는 익명성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로라 마리아 바시는 1745년 교황청이 유럽 전역에서 교황의 즉위명을 딴 ‘베네딕토 석좌 학자’로 위촉되었다. 25명 가운데 여성으로는 바시가 유일했다. 하지만 어떻게 교황 석좌 학자에 여성이 포함될 수 있느냐는 학계의 반대에 부딪쳤다.

그는 남성들로 이루어진 모임에 홀로 있는 것도, 자신의 성별에 대한 온갖 논쟁과 설전에 대해서도 예의 없다고 느껴 석좌 학자 위촉을 거부하게 된다.

라부아지에 부부.

마리 안느 라부아지에 역시 익명화 된 여성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경우는 남편 라부아지에와 함께 연구를 하고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이름으로만 업적이 남겨졌다. 세계 최초의 화학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화학의 원소들 (The Elements of Chemistry)> 속 도표와 다이어그램들은 모두 마리가 그린 것이었다.

그 외에 그는 논문 주석을 달거나 번역도 맡아 했는데, 모두 남편 라부아지에의 이론에 중요한 이론들이었다. 이런 작업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과학적 지식은 출중했지만 아무도 그의 공로를 기억하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고 있다는 M은 이런 직접적인 익명화 뿐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 익명성에 숨게되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재능이 많은 남자들이 견디기 힘든 것은 세상의 무관심인데, 여성들은 무관심보다 적대감이다. 세상은 남자들에게 말하듯 여자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씌여있다. … 익명에서 벗어났을 때 경험해야 하는 여러 고비가 여성들을 두렵게 만들기 때문에, 익명성을 사용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왜 여성의 성과를 잘 알지 못했나’라는 주제와 관련해 중요한 지점이다. 과거의 사례들에서는 직접적 장벽들로 인해 이름이 가리워진 경우가 많이 나오지만, 여성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심리적 장벽의 문제도 크다는 점을 빼놓고 익명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간접적인 효과 역시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완벽에 관한 강박을 더 많이 요구 당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 시도로 스스로가 평가 받는다는 경험을 어렸을 때부터 겪어왔기 때문이다. 실패를 한 번만 해도 낙인이 찍혀버리고 나-여성을 평가하는 바로미터(barometer)가 된다. 실패를 많이 해봐야 한다는 건 여성들에게 헛소리다(웃음). 

개인적인 부담감에 더해 여자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마다 ’이래서 여자는 ~하다’며 여성 전체를 대표해 평가절하 되는 과대 대표성 역시 여성들을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더 프로페셔널 해야 하고, 실수하면 안된다. 내 뒤에 더 어린 여자 후배가 온다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부담도 여성들에게 지워진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증명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던 소피 제르맹(1776-1831)이라는 수학자가 있다. 그는 수학 강의 노트를 입수해 공부한 뒤 자신의 공부 결과를 남성의 이름으로 바꾼 뒤 해당 교수에게 보냈다. 제르맹은 "주변에서 여성 과학자를 비웃는 것이 두려워" 가명을 사용했다고 했다.

사기꾼 효과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와,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익명화 할 뿐 아니라 심한 자기 의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의 성과와 노력을 계속 검열하고 불신하고, ‘내가 잘못해서 이만큼인 거야, 이건 아직 완벽하지 않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열심히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사기꾼 효과(Imposter Effect, Fraud Effect)라고 한다.

나도 그런 것 같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나보다 더 잘 할 사람이 있을 것 같고, 이미 그런 것들은 다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쉽게 시도할 수가 없다. 주변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정말 멋지고 똑똑한 사람인데도 자기가 틀렸을까봐 두려워서 나서지 않는다. … 글쓰는 걸로 따지자면 정말 거지 같은 글도 남성들은 ‘지면’위에서 쓴다(웃음). 가끔 남성 필자들을 보면 일기장에 써야 하는 걸 지면에서 자꾸 쓸까 싶기도 하다. 여성 필자가 뭐 하나 잘못쓰면 난리가 난다(웃음).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N는 말하는 방식에도 이러한 자기 의심이 묻어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성의 화법 중 ‘개인적으로 나는~’이 자주 쓰이는 것과 남성의 화법 ‘(내가 정의를 내린다!는 태도로 )사회는 이래 자본주의는 이래’라고 쉽게 이야기 한다. 남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남의 감정에 귀 기울일 필요 없는 말의 차이는 권력의 위계에서 나온다.

따라서 여성들은 자주 익명성에 기대어 말하게 된다. 남성의 이름으로 필명을 만들어 글을 낸 소설가들, 자신의 성별을 밝히지 않고서 하는 여성의 활동들이 많다. 천재인 여성들도 제재를 받고 검열과 공격을 당하는데, 평범한 여성들은 더더욱 자기 의심을 하는 상황에 더욱 쉽게 처하며 자기 검열과 포기에 익숙해진다. 이렇게 익명성 뒤에 숨고 가리면서 시도와 성취가 드러나지 않는 악순환이 생긴다.

과거의 여성 과학자들은 위대한 지성을 외모와 함께 평가 받고(히파티아), 결혼을 이유로 학문의 세계에서 떠나야 할 것을 미리 걱정 받으며(바시), 남편의 업적으로만 남았다(마리 안느 라부아지에).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쉽에 휩싸여 괴로움을 경험하고(마리 퀴리), 여자라서 대학에 입학할 수 없어 공부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리제 마이트너), 성과가 아닌 사생활에 대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며 (조셀린 벨 버넬), 심지어 노벨상을 빼앗기는 경우(로잘린드 프랭클린)도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왜 성과를 잘 모르고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들의 투쟁이 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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