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페미니즘 운동사: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전개 과정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두 번째 세션은 ‘동아시아 페미니즘 역사'였다. 광범위한 주제 속에서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사를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어떤 운동이 있었는지 살펴봤다. 이어서 위안부 운동의 점화, 전개 과정부터 민족주의/식민주의/가부장제 하에서 중층적인 하중을 견디고 있는 포스트/식민국가의 여성의 위치성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이어졌다.
우리는 ‘가련한 피해자'가 아니다
위안부 문제에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참가자 N은 처음 이 문제에 대해 ‘이상하게 느꼈던 경험’을 나누었다.
"위안부 문제를 고등학생 때 처음 접했다. ‘일본 놈들 = 나쁜 놈들’ 이 첫 인상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시위 현장에 나갔는데, 낯설더라. 피해자 분들의 말씀을 듣고 싶어 간 건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 잔뜩 듣다가 돌아오며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전형적으로 보이는 위안부 할머님들과 ‘소녀’들의 이미지를 보면서 이게 맞나, 무언가에 의해 놀아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해석한 위안부 문제를 보니 그제서야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해가 되더라.”
참가자 J 역시 청소년기부터 배운 위안부 문제가 왠지 ‘내 문제’로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고 했다. 가해자를 무자비한 존재로 더 크게 부각하고 ‘우리 민족’과 ‘우리 민족의 여성’을 피해자화하는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우리 민족의 여성’에 내가 들어가나? 하지만 나는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 역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나를 피해자 집단으로 손쉽게 이해하기도, 쉽게 거리를 두기도 어려웠다. 문제긴 문제다 싶은 채로 시간이 흘러가다 탈식민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여성들은 단순한 선악구조나 남성-국민의 입맛에 맞춘 민족주의의 관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위안부 문제를 탈식민 페미니즘의 언어를 만나며 서서히 납득할 수 있었다. ‘같은 민족 남성의 재산으로서의 여성이 빼앗긴/범해진 사건’으로 보는 민족주의 관점은 꾸준히 자민족 여성을 수동적인 피해자로 만든다.
이때 여성들은 민족과 국적 때문에 그 피해자성에 결박되기 싫지만 이 끔찍한 역사를 완전히 외면하기도 어렵다. 탈식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가지기 위해 스스로를 어딘가에 ‘소속'시키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의 여성', ‘국가의 어머니', ‘우리의 소녀'라는 틀에서 벗어나 여성의 관점에서 문제를 설명해 낼 언어를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언어가 대체 어떻게 다른 것일까?
1. 페미니즘의 언어 ‘생존자' vs 민족주의의 언어 ‘피해자’
"한편으로는 생존자라는 워딩 자체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피해가 발생한 시점 이후에 거기에 정박되거나 멈춰있지 않았고, 가시화되었건 아니건 집회를 1000회 이상 진행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생존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이 워딩에 동의하고 싶다."
'생존자'라는 워딩은 위안부 운동과 함께 전개된 이론적 연구, 작업들을 통한 성과이다. 그간 페미니즘 연구가들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침묵’에 주목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중층적인 정치학들을 드러내 왔다. 이들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단순한 경험적 증거를 넘어 겹겹의 탈식민적 구조와 정치학이 작동하는 산물로 이해했고, 이를 통해 당사자들은 단순한 ‘피해자’에서 벗어나 ‘생존자’로 위치성을 바꿀 수 있었다. '정조에 대한 침해'라는, ‘피해자성에 정박된 할머니’로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보아 온 기존의 봉합되고 식민화된 재현 방식이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생존자'라는 단어는 단순히 피해자와 생존자라는 지칭 사이에 간극을 만들고 고통의 정도를 스펙트럼화 하기 위함이 아니다. 같은 상황을 가지고도 다르게 힘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말하기다.”
민족주의 담론에서 말하는 ‘피해자'는 ‘국가의 순결'에 대한 피해를 말한다. 즉 여성을 국가의 재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취하는 동시에 은연중에 순결을 빼앗긴 여성을 ‘피해자'로 낙인찍는 효과를 낳는다. 이것이 민족주의의 순결 이데올로기다.
한국에서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재현은 이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자주 일어나며 당사자/비당사자 여성들 모두에게 또 다른 억압이 됐다. 타국의 남성들에게 ‘범해진' 여성들을 지키는 것도 범해야 하는 것도 자국, 자민족 남성이어야 한다는 민족적 순결 이데올로기 안에서 늘 주체는 ‘자국 남성'이다. 이때 자국 여성은 ‘누구에게 범해져야 하느냐’만 달라질 뿐 수동적 주체로 전락한다.
2. ‘위안부’, 민족의 피해인가 여성 폭력 문제인가?
민족주의와 탈식민 페미니즘 각각이 위안부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도 있었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 국내에서 위안부 문제는 오랫동안 주로 민족적 차원의 피해로 이야기되어 왔다. 반면 국제사회에서는 주로 여성 폭력의 문제로 위치지어져 왔다. 이러한 이론적 갈등은 1990년 대에 가장 심화 되었다.
사학계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여성 폭력의 문제'로 범주화하면 다양한 위안부 피해국 간의 차이들을 드러내기 어렵다고 보았고, 여성학자들은 민족 문제로 환원해 버릴 경우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전형화 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여성학자들의 경우 전쟁과 식민경험이 여성에 가하는 폭력이 가시화 되지 않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을 통해 보다 풍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위안부 문제를 ‘민족문제’다, ‘젠더문제’다라는 좁은 선택지 사이에서 둘 중 하나에 방점을 두는 대신 식민주의와 가부장제, 민족과 젠더가 상호 교차된 식민지 역사의 상흔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성중심적 일본제국주의와 함께 가부장적 남한국가 사회를 응시’하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시각의 요청은 ‘가해국 일본 대 피해국 한국’, 혹은 ‘남성(가해자) 대 여성(피해자)’이라는 이분법적인 가해/피해의 구도를 넘어선다.
이처럼 위안부 운동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는 관점과 재현의 문제에 대한 핵심적인 쟁점을 제기했고, 민족 프레임으로 희생자를 만들고 동시에 보상하려고 하는 의도를 비판했다. 많은 참가자들이 여기에 공감을 표했다.
흑인 여성 운동가 벨 훅스는 "민족, 나라 내에서도 식민지 여성의 위치는 이중적으로 주변화되어 있다."고 했다. 탈/식민지 여성에게는 이중화된 배제와 폭력이 존재한다.
3.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사과할 수 있다는 권력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맨날 사과문이 올라오는 걸 보며 너무 화가 났다. 사과하면 뭐가 되나?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보상금과 사과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성찰이 있나 싶다."
최근 끝없이 이어진 ‘OO계 성폭력’ 해쉬태그와, 여기에 사과문이 남발되던 상황과 연결되며 참가자 H가 ‘사과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여기에 대해 폭로할 수 밖에 없는 사람과 사과문을 쓸 수 있는 사람 간에 존재하는 위계가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서도 일본에 '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모습은 남성-국가 끼리 피해자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사과와 피해보상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것들을 주고받는 주체가 누구인지 성찰해야 한다.
탈식민 페미니즘은 이에 대해 한쪽이 어느 한쪽에서 사과를 받으면 끝나는 국가와 국가 간의 일로만 여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의 침묵을 구조적으로 마련해 온 일본과 한국 국가, 양국의 가부장제 사회에 화살을 돌린다. 즉 ‘우리’ 내부에서 지속, 재생산되는 식민성에 대해 고려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일본 놈’만 나쁜 놈이고, ‘한국 놈’은 늘 착한 놈일까?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가해자는 오직 일본인 뿐일까? 베트남 전쟁 때 한국 군인들의 강간 문제는 어떤가? 전쟁, 국가, 나아가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다양한 폭력들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만 파악하는 것은 손쉬운 만큼 많은 것을 놓친다.“
4. ‘피해자’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렇게 ‘피해자화'하는 데에는 언론이나 매체들이 포르노적 이미지를 만들고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었다. 위안부 생존자들의 삶을 마치 에디터가 된 것 마냥 마음대로 자르고 붙여 ‘민족의 피해자'를 보고 싶어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 자료화 시켜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를 보고자 하는 욕망’은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 피해자를 어떤 틀 안에 가두어 두고자 하는 일방적인 시각에서 비롯된다.
"너무 당연하게 '우리 민족'의 문제이니 말해보라고 할 수 있는 권리를 맡겨 놓은 마냥 군다. '한 번 말 좀 해봐요'라는 태도로 증언을 요구하는 것. 그저 일본에 가서 따지기 위한 증거로 채택하기 위한 작업들이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 불편했다. … 한 번은 남자친구와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나는 너무 힘들어서 더 볼 수가 없는데 상대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여느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무감하게 보더라. 그 때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역사물로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이 생겼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접할 수 있는 방식은 결국 ‘재현'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으므로, 어떤 간극을 피할 수는 없다. 그동안에는 민족주의 프레임 안에서 이 여성들의 발화점이 고정되었고, 본인의 삶에 대한 기억과 경험 역시 그 안에서 구성되었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들의 경험과 폭력의 흔적을 가시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이를 해체하거나 다른 식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서발턴(subaltern)’들의 역사쓰기
식민치하의 여성, 위안부 피해 여성 등 기존의 독립운동과 민족주의로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이들이 ‘서발턴(subaltern)’이다. ‘하위 주체’를 뜻하는 서발턴은 기존의 주류 언어에 의해 설명할 수 있는 틀 바깥에서 삶을 경험한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래서 기존의 방식으로 자신을 재현하는 데에 계속적으로 실패한다.
“서발턴은 내 경험을 ‘이해시키기 위해’ 계속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거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이해를 못하지, 제대로 이야기해봐’라는 태도를 계속해서 마주하는 것. 나는 계속해서 내 설명의 부족함에 대해 알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처럼 일종의 ‘보편’이 있고 그 방식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듣지 않으려는 세계에서 페미니즘은 말을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덜어준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 ‘누구’에게 들리기 위해 말하고 쓰느냐에 있어서 덜 분열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서발턴들에게 가능한 연대가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시해주는 참여자도 있었다.
“서발턴은 자기를 재현해보려고 하는데 언어가 없기 때문에 다른 길을 찾아보려 시도한다. 이때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고 우세해서 쉽게 지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이 어려움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경험을 새롭게 공유하는 것 자체가 자기를 재현하는 노력의 지속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서발턴이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끊임없이 발화하는 것 자체가 연대의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참가자 A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경험을 더 많이 말하고, 기술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개인들, 즉 ‘나'의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을 학습 했었나 싶다. 개인의 일상을 역사적으로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주의든 순결 이데올로기든, 그런 프레임들이 '개인'의 역사를 포섭해 버리지 않도록 스스로의 삶을 기술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내가 역사에 대해 무지하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누구의 역사를 아는가'가 문제가 되잖나. 누구의 역사를, 어떤 매개자를 통해 알게 되는가가 이렇게 중요하다. 우리가 더 많이 말하고, 쓰고, 기록해서 우리의 역사를 남겨야 한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고조되기도, 식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기 위치와 자기 관점에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접속하는 방식을 기록하는 것 중요한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쉽게 휘말리거나 많은 걸 습득했는데 결과적으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결국 여성-나의 경험을 내것으로 재구성해서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사건은 나에게 '피해자성'만 남기는 대신 다르게 의미화 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물론 이런 기록은 개인적 차원의 의미만 가지는 게 아니다. 어떤 여성 기록이 또 다른 여성들에게 중요한 용기의 자취를 남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