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북클럽& 살롱: 3. '페미니스트' 되기

알다퀴어

페미니스트 북클럽& 살롱: 3. '페미니스트' 되기

주연

혐오는 언제나
'권력'을 타고 흐른다

'여성'에서 ‘트랜스젠더'나 ‘바이섹슈얼’로 위치만 바뀌었지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나는구나, 되풀이되는구나 하는 걸 느꼈죠.

I는 ‘바이섹슈얼 혐오'와 관련해 최근 게이가 바이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한 것을 발단으로 트위터에서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헤테로(이성애자)에 의해 존재를 삭제 당하는 일에 맞서왔던 게이가, 똑같은 방식으로 바이의 위치성을 삭제하는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며 놀랐다고 했다. 다른 참여자들 또한 ‘여성’에게 있어 온 일들이 대상과 표현만 조금씩 변할 뿐 거의 똑같이 일어난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이야기했다.

게이나 레즈비언들은 바이 여성이 남성을 만나는 걸 보면, ‘너는 언제든 편하게 이성애 사회로 편입할 수 있겠네’ 같은 말을 하고 쉽게 외면한다.

I의 이야기처럼 바이섹슈얼은 같은 성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게이에도, 레즈비언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성애 사회와 성소수자 사회에서 이중의 배제를 겪어 왔다. <여성혐오가 어쨌다고?> 6장 '혐오는 무엇을 하는가'에서는 지난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이 거부되었을 때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한 ‘무지개농성단' 운동을 예로 들고 있다. 

'무지개농성단'은 분명 LGBT/퀴어가 참여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농성은 … 게이 혹은 동성애자 활동가와 단체의 운동으로 재현되었고 실제 그렇게 보도되었다.

이처럼 ‘성소수자’, ‘LGBT’, ‘퀴어'를 가리키는 것이 단순히 동성애자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읽히면서 양성애, 무성애 등의 존재는 삭제당한다.

I는 이런 문제가 언어의 무지, 무지할 수 있는 권력에서 나오며 그것이 성소수자 내에서도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I는 바이섹슈얼에서 ‘둘'을 뜻하는 ‘바이'가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젠더와 같은/다른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걸크러쉬’ 좀 쓰지 마

I는 사람들이 자신의 젠더와 성적 지향에 대해 주어진 대로, 통념적 삶을 살아가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때로 ‘시스젠더 헤테로’를 당연한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전혀 의문을 던져본 적 없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오히려 놀랍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당연한' 통념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폭력이 되는가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며 ‘걸크러쉬'라는 단어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최근 여기저기 쓰이는 ‘걸크러쉬’라는 단어는 거기에 깔린 전제부터가 문제다. 걸크러쉬는 보통 여성이 여성에게 멋지다고 느끼며 반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여성에게 여성이 끌리는 상황은 예외’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즉, 자연스럽게 레즈비언들을 예외적인 존재로 상정하게 된다. 여성이 여성에게 갖게 되는 관심과 감정이 동경인지, 성애적 사랑인지 스스로 깨달을 겨를도 주지 않고 자꾸 ‘예외적인 것'으로 선을 긋는 단어를 마구 사용하는 것은 통념을 강화하고 배제와 혐오로 이어지게 만든다.

어떻게 성찰하고 연대할 것인가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받는 차별과 위협, 혐오를 공유하고, 논의를 확장해 성소수자/트렌스젠더에 대한 혐오의 문제를 살펴보며 어떻게 연대하고 성찰하며 나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이 이어졌다.

특히 ‘당사자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한 참여자는 이성애 연애를 해 왔지만 자신이 ‘성소수자' 운동에서 타자로 느낀 경험을 이야기 하며 어떤 연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거기에 대해 J는,

물론 젠더는 유동적이고 변화할 수 있고, 언제든 내가 성소수자로 자신을 정체화 할 수도 있겠지만 성소수자는 ‘소수자’다.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이 성소수자 운동의 당사자를 파악하기 위한 항목 체크에서 ‘타자'라고 느꼈다고 할 수도, ‘타자'라는 말을 적용하기도 어렵다. ‘라벨링’한다는 건 언제나 주류가 소수자에게 할 수 있는 거지 그 반대는 아니니까.

라고 답했다. 자신이 가진 소수자성을 이해하고 위치성을 파악하는 과정이 계속 되어야만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쉽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답할 수 있다. 시스젠더 여성으로서의 페미니즘 운동에 시스젠더 남성이 완전한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 시스젠더 여성이 트랜스젠더 여성 운동의 ‘당사자'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가 당사자 위치에서 운동할 수는 없다. J는 “각자 경험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당사자와 비당사자 사이에 분명 차이가 있고, 그걸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어떻게’ 연대할 지를 고민하면 되는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딘가 내 자리에 서서 계속 다른 사람의 자리를, 그곳과 이곳의 차이를 이해하고 노력하려는 태도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데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해야 한다'는 것을 찾으려고 하기 보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을 찾아 지적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을 지목해내는 방식은 어떨까? ‘너는 성차별주의자구나!’ 같은 방식으로.

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 첫 모임에서는 이렇게 연대에 대한 고민과 페미니스트 선언에 대한 이야기로 긴 시간을 마무리했다. 

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의 두 번째 모임은 이, 공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8(금)에 페미니스트 북클럽 & 살롱의 이, 공학 세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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