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은 없는, 지금 우리의 축제를 위해

생각하다퀴어퀴어퍼레이드

나중은 없는, 지금 우리의 축제를 위해

유의미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말과 탈

2017년 7월 15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제18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오십 명이 참석했던 대학로의 첫 퍼레이드 행진과는 달리, 이제는 100개가 넘는 단체가 부스로 참여하고, 총 8만 5천 명이 참석한 대규모의 행사가 되었다. 한편 이렇게 세간의 이목을 끄는 만큼 해가 갈수록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진다. 이번 축제 이후의 그런 ‘말’과 ‘탈’은, 축제와 전혀 관계 없는 내가 들은 것만 해도 셀 수 없다.

혐오 세력의 근거 없는 비난은 그렇다 쳐도,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도 아쉬웠던 점과 부족했던 점에 관한 토로와 비판이 많이 나왔다. 사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화가 났다. 밀도 높은 업무를 직접 할 자신은 없지만, 성소수자가 조금 더 눈에 띄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축제를 만드는 기획단에게 늘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고를 조금 더 감사할 수는 없을까? 대부분 돈도 안 받고 자원활동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잖아!’ 하는 생각으로, 축제 이후 뿌듯한 마음만 나눠 가져도 모자랄 기획단들의 귀에 크고 작은 비난만 들릴 게 안타까웠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을 추진한 사람들로서는, 일단 회의를 소집하거나 논의를 해서 어떤 방향으로 해결할지 결정을 내리고, 또 이에 대응하는 사과문이든 입장문이든 작성하여 게시하고, 외부에 항의해야 할 일이라면 또 이와 관련된 항의 내용을 작성하여 전송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내부적으로 다짐하는 등 일련의 실무적 부담으로 이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축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중한 것도 아니다. 이럴 줄 알았다는 식의 비웃음, 아직도 개선하지 못했냐는 꾸짖음 등이 섞인 조롱과 비난도 많고, 최선을 다해 일을 진행하고 있을 사람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서 빨리 응답하라는 재촉도 많다. 좋든 싫든 축제가 이렇게 성장했기에 책임과 의식을 가지고 이를 귀담아들으려 노력해야겠지만, 이들도 사람이기에 피곤할 것 같다. 올해도 역시 이것도 저것도 부족했다며 따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사과를 해도 그게 다냐고 하는 고객님, 더 잘하겠다고 해도 어떻게 배상할 거냐고 묻는 우리 고객님들과 닮은 모습이었다.

직업 정신

나는 카페에서 일한다. 주로 커피를 만들고 판매하고, 손님들이 카페 내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이런저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기본적으로 이 일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가능하면 세심한 배려와 친절을 주고 싶다. 감기 기운이 있는 손님에게 따뜻한 물을 챙겨주는 정도의 일로 누군가를 미소 짓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나 또한 그런 뜻밖의 따뜻함으로 고된 하루를 버틴 적이 있고, 심지어 삶의 의욕을 되찾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직업 정신을 늘 유지할 수는 없다. 바로 노동강도 때문이다. 출근 시간에 너도나도 커피를 한 잔씩 마시려고 카페로 몰려올 때면, 손님이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업무량이 발생한다. 내 손은 지금 아메리카노에 뜨거운 물을 받고 있고, 내 눈은 다음에 만들 라떼를 쳐다보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물티슈 좀 주세요’, ‘빨대 있어요?’, ‘화장실은 어디에요?’, ‘휘핑크림 좀 더 주세요.’,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뭐에요?’ 하는 손님들이 동시에 몰려든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무언가 하나를 놓치면 내 고객님들은 클레임을 건다. 따뜻한 물을 달라고 했는데 깜빡 잊었을 때, 기대한 서비스를 받지 못해 실망스럽다는 불만을 듣는다. 나로서는 억울하고 서운하다. 최선을 다했는데, 이것저것 챙기던 와중에 하나를 놓친 것뿐이다. 요청받은 것 중 따뜻한 물은 깜빡 잊었지만,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하고 무지방 우유로 덜 뜨겁게 스팀 하는 건 잊지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걸 응대하려고 고용된 사람이기도 하고, 손님은 당연히 낯선 장소에 왔으니 이것저것 질문하고 요청할 수 있다. 문제는 매출에 걸맞은 인원의 노동자를 배치하지 않는, 사람은 적게 쓰고 폭리를 취하려는 고용주다. 한 명을 더 고용해서 업무량이 반으로 줄어든다면, 손님에게 새로 나온 메뉴를 추천해볼 시간도 있을 것이다.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친절한 서비스를 하고 싶어서 매일 결심하며 출근하는데 말이다.

원인

다시 퀴어문화축제로 돌아가 보자. 축제에서는 왜 그렇게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을까? 스피커의 음향이 너무 컸다는 문제와 애프터 파티의 입장료 차등 문제를 같은 층위에서 다룰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비슷하게도 너무 많은 일을 정신없이 소수의 사람이 나눠 맡고 진행해서라고 생각한다. 첫 축제 때 기획단이 대여섯 명이었다면, 작년 기준으로 지금은 약 팔십 명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축제의 구성이 파티와 영화제 등을 포함해 다양해졌기 때문이고, 퍼레이드 기획단의 숫자만 보면 고작 열다섯 명이다. 축제 참가자 인원이 그때에 비해 약 1,700배 늘어날 만큼 덩치가 급격하게 커진 것을 함께 생각하면, 사실상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 범위와 강도는 늘어났을 것이다. 예산 또한 작년의 수치를 기준으로 약 2억의 규모를 집행하고 있는데, 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업무량을 예상해보자. 열악한 상황이 발생한 문제의 변명은 될 수 없지만, 원인은 이게 맞을 것 같다. 기획단이 일부러 경솔하고 미흡하게 준비하고 싶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충분히 논의하고 다각도로 고민할 시간과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있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던 문제들이다.

그렇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다. 특히 소수자 중의 소수자의 관점에서 감수성에 관해 지적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문제 제기의 형식을 갖추라거나 실무적 부담을 일으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활동가들의 업무가 많고 벅찬 상황에서 굳이 특정 사람들이 선별되어 배제될 때는 권력이 개입한다. 입장료에서 굳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 손해를 본 것처럼, 여력이 없어도 그 와중에 특히 배제되는 건 때로는 여성이고 때로는 트랜스젠더고 젠더퀴어고, 때로는 정신질환자가 된다. 의도적인 것이 당연히 아니지만,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고객 말고, 동료라면

비단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시민 사회 운동을 하다 보면 단체를 운영하는 활동가와 회원의 관계에서 이런 비슷한 긴장을 자주 발견한다. 바쁜 시간 바리스타와 고객 간의 관계처럼 서로 원망하고 상처 입는 상황 말이다. 어떤 단체를 지지하고 후원하다 보면, 그 단체의 다소 의아한 실수에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지지하는 이 단체가 페미니즘을 표방하면서 어떻게 이런 문제에 예민하지 못하여 터무니없는 결과를 내놓는 건지 원망스럽고 배신감이 든다.

그럴 때 나는 일단 ‘고객’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활동가와 회원의 관계는, 한쪽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쪽은 받는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노동력으로 누군가는 후원으로 누군가는 또 다른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단체가 행사를 주최했을 때, 주최 단체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은 참가자로서 고객의 정체성을 가지고 불만 사항을 말하고 이런저런 요구를 하기는 쉽다. 그러나 함께 사회 운동을 하는 동료 시민으로 생각한다면,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사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완전무결한 행사가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면 성심성의껏 함께 해결할 거라는 신뢰이다. 문제 자체를 성가시게 느끼는 듯한 활동가를 신뢰할 수 없고, 상황을 무시하고 일방적 주장을 하는 참여자를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지적이 실익 없는 비난과 조롱이 되지 않게 하고, 문제 제기자에게 배제와 낙인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건 모두의 몫이다. 연대하는 사람으로서 더 나은 단체 혹은 행사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지도록, 일단 이 일에 집중할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퀴어문화축제에 가해지는 비판이 모두 정당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중에는 근거 없는 비난도 있지만 정당한 비판도 있다. 그리고 내 위치와 권력을 간과한 채 주관적으로 무엇은 정당하고 무엇은 부당하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심지어 비난과 조롱을 멈추라고 할 자격도 없다. 자긍심과 생존이 걸린 믿었던 성소수자 운동에서마저 배제당한 사람들에게, 정중한 태도로 올바르게 항의하라고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내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은 그 비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감정만을 소모한다. 악의가 있어서 혹은 몰라서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질타가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더 잘하라고 하고’, 활동가들도 ‘더 잘하고 싶은’ 경우에는, 그저 여건을 만드는 게 해결방법이 아닐까?

애정을 가진 지지자라면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문제를 하나씩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운동을 계속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 존경이 또 하나의 억압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들의 지속적 활동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후원하겠다. 우리 모두 더 나은 운동과 더 나은 성과를 만들기 위해 함께 힘을 보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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