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의 반응은 ‘왜 인천에서?’였지만, 사실 2016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만 열린 퀴어문화축제는 2017년 부산과 제주에서 첫 행사가 열렸고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2018년 4월에는 전주시에서 처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고 10월에는 광주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부산, 제주, 전주(광역시가 아니다), 광주 등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환영했다. 하지만 인천광역시에서 열린다고 했을 때, 반응은 달랐다. 인천은 인구 300만 명에 가까운 대도시이자 광역시지만 서울 주변에 있는 위성도시와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동시에 지난 6.13 지방선거 당시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살고 망하면 인천산다)라는 말로 논란이 되었듯, 가난하고 살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이런 여러 이유가 겹쳐, 서울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데 굳이 왜 인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느냐는 반응이 상당했다.
2018년 9월 8일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바로 그 날부터 ‘왜 인천에서?’라는 반응은 사라졌다. 대신 인천은 퀴어운동에서 매우 중요하고 역사적인 공간이 되었다. 행사 당일 참가한 많은 사람은 분노, 울분, 슬픔, 우울, 울컥거림을 표현하고 있고, 앞으로 진행될 전국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여 혐오 세력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날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나 역시 이런 감정으로 살고 있다.
'깃발을 들지 말라'
그날 그 행사에 직접 참가했거나 행사 상황을 전해들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경찰의 무능한 대응은 더 많은 분노와 울분을 야기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퀴어 깃발과 혐오 피켓의 교환에 있었다. 반퀴어-혐오 세력은 퍼레이드를 진행할 길을 열어 주는 대신 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자 모두가 깃발을 단 하나라도 들지 말 것을 요구했다. 대형 깃발만이 아니라 작은 손깃발을 포함하는 요구였다. 경찰은 이 요구를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측에 그대로 전달했다. 깃발을 내리라는 반퀴어-혐오 세력의 요구는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축제를 준비하려고 아침 일찍 모여 있을 때 그리고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내내 반퀴어-혐오 세력은 수시로 깃발을 내리라는 요구를 했다. 행사를 이제 막 준비하던 단계에서 그들은 각 단체의 깃대를 부수고 깃발을 훔쳐갔고, 그들이 도로를 점거하며 퍼레이드를 방해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깃발을 뺏고 찢고 깃대를 부수었다. 이것은 퀴어를 상징하는 깃발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특정 목적으로 진행하는 행사는 행사의 목적에 따라 깃발이나 소속 단체가 드러나는 물건을 사용하지 못 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고 적극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경우도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언제나 무수하게 많은 깃발이 펄럭이는 행사다. 이때 펄럭이는 깃발은 자신이 속한 단체나 모임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지만 자기 정체성을 가시화하려는 의도일 때도 많다. 퀴어문화축제에서 펄럭이는 깃발은 퀴어에게 적대적이고 퀴어를 혐오하고 퀴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회에게 ‘나/우리-퀴어’가 존재함을 선언한다. 동시에 이 사회가 이성애규범성을 지배 규범 삼아 작동하는 사회라고 해도, 모든 사람이 이성애-이원젠더에 속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기에 이성애규범의 폭력성을 진지하게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반퀴어-혐오 세력이 계속해서 깃발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깃발이 꼴보기 싫다기보다 인천을 비롯한 전국 퀴어문화축제가 의도하는 퀴어의 가시화, 퀴어 정치학의 선언을 부정하고 삭제하려는 의도였다. 경찰은 바로 이런 의도의 말을 조직위에 그대로 전달하며 그것을 협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너희들 존재 자체를 지운다면 퍼레이드를 허락하겠다’는 요구는 협상의 언어가 아니라 지배 규범에 충실한 폭력 행위고 이 사회에서 퀴어를 삭제하겠다는 말살의 언어다.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제정하고자 할 당시, 성적 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차별 금지 사유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발생했던 적이 있다. 보수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반퀴어-혐오 세력은 성적 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차별 금지 사유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하며 헌장 제정 과정 자체를 방해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보수기독교 목사들을 찾아가 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2018년 인천의 경찰은 혐오의 언어를 조직위에 협상안이라고 가져왔고, 이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퍼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은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그 날, 단 한 번도 축제에 호의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조직위에게 짜증을 냈다. 반퀴어-혐오 세력으로 인해 행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 하고 있고 문제가 생기고 있음에도 경찰은 여러 번 조직위에게 이제 그만 해산할 것을 요구하고, 너희들 때문에 우리-경찰이 고생한다고 짜증을 냈다. 한 경찰은 ‘이런데(반퀴어-혐오 세력이 이렇게 반대하는데) 행사를 하고 싶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은 철저하게 반퀴어-혐오 세력의 입장에서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입장에서 인천퀴어문화축제를 대했다.
혐오 발화를 정당화한다는 것
퀴어 정치학의 실천은 혐오 발언과 동등한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과, 인천 경찰의 협상안은 모두 퀴어를 향한 혐오 발화를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정당한 요구, 정치적으로 경청할 가치가 있는 발언으로 승인하는 행위다. 실제 인천 경찰은 경찰의 확성기를 수차례 반퀴어-혐오 세력의 목사에게 넘겨, 반퀴어 목사가 퀴어문화축제 참가자에게 깃발을 내려야 퍼레이드를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을 하게 했고 그 확성기를 통해 “동성애를 절대 반대입니다”라고 발언할 수 있도록 했다. 혐오 발화와 퀴어/깃발 정치학을 동일한 층위에 둘 때 이것은 단순히 퀴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많은 혐오 발화를 가치 있고 경청할 만한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정당화하는 문제며 그렇기에 모두와 관련된 문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축제가 끝났음을 이야기하던 바로 그때, 경찰은 반퀴어-혐오 세력을 향해 오늘 수고했다고 말했다. 나의 일행이 경찰에게 강하게 항의했음에도 경찰은 다시 한 번 오늘 고생 많았고 수고했다고 말했다. 퀴어문화축제로 인해 혐오 세력이 고생 많았다는 발언은 페미니즘 때문에 스쿨미투가 생기니 학교에서 페미니즘 행사를 없애자는 발언과 같다. 혐오가 아니라 폭력적 사회 구조에 문제제기하는 집단이 문제라는 뜻이다.
꼭 덧붙여야 할 말이 있다. 조직위는 그날 깃발을 내리는 조건으로 퍼레이드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혐오의 언어를 협상의 언어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런 험악한 상황에서도 퍼레이드를 진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반퀴어-혐오 집단의 지속적 방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경찰은 계속해서 혐오에 동조할지도 모른다. 이럴 때 퍼레이드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는 앞으로 혐오 세력이 아무리 방해하고 또 방해해도 퀴어문화축제를 결코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알리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축제의 포기고 조직위는 바로 그 목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축제의 의미를 만들었다.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극악한 혐오 세력의 폭력과 이에 동조하는 경찰의 태도를 목격하고 경험하며 퀴어와 앨라이들은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것은 오래 아물지 않을 흉터가 되었다. 하지만 이 흉터는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숨고 싶도록 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더 힘을 내어 혐오 세력과 싸우고 부당한 사회 구조와 싸울 수 있는 용기의 징표가 될 것이다. 인천은 퀴어 운동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