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만에 다시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 체력은 늘 성과 없이 바닥을 치는데 MB는 오랜 시간 테니스로 단련된 건강을 자랑하며 천수를 누린다니 왠지 억울해져 시작한 운동이다. 오전 9시 동네 체육관에 들어서면 기묘한 활기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수십여 명의 중년・노년 여성들이 ...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의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청와대는 ‘사실상의 종전’이라고 덧붙였다. 평화의 기쁨으로 공론장이 들썩이는 이번 방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문재인 대통령 일행이 평양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한복을 입은 환영인파였다. 다소 촌스러울 만큼 원색에 가까운 북한의 한복은 남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과거 남한에서도 ‘귀한 손님’이 올 때마다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공항에, 도로에 늘어서곤 했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감각이 한복을 통해서 재현된 것이다. 평양 공항에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늘어섰던 같...
2018년 5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이제까지 불법촬영의 피해를 입은 ‘여성’이 경찰에 고소를 하면 피해자가 경찰의 비난을 듣거나 가해자를 잡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 그런데 ‘남성’이 피해자가 되고 ‘여성’이 가해자로 지목되자 경찰은 매우 신속하게 가해자를 체포했고, 규탄시위는 바로 이런 행태를 문제 삼았다. 지금까지 불법촬영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경찰과 검찰, 재판부 등을 규탄하며 제대로 된 절차와 처벌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 시위는 시위가 의도하는 목적과 다른 측면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이 시위 참가자의 자격을 “본 시위는 생물학적 여성만 시위참여 가능합니다”라는 문구...
‘인싸 되는 법’, ‘인싸 개그’, ‘인싸 맛집’……. 최근 어디서나 ‘인싸’라는 말이 대유행이다. 오픈형 국어사전에 의하면, ‘인사이더’의 준말인 ‘인싸’는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에서 ‘주류’로 불리는 이들이 형성하는 흐름, 소위 ‘트렌드’로부터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감지된다면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그런데 좀 기이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아싸’, 즉 ‘아웃사이더’가 ‘몰개성한 사회에서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사는 멋쟁이’라는 낭만화된 의미로 통용됐던 것과 사뭇 대조적이지 않은가. 평균적이고 안전한 삶에 대한 욕망을 은폐한 채 자신이 ‘아...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 2018)의 출간 이후, 책을 소개할 때 종종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한국문학사에서 정전화한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 중심의 거대 ‘문학’을 부수고, 복수의 다양한 목소리가 교차하는 ‘문학들’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문학’을 설명할 사례가 지난주 SNS에서 화제였던 이외수의 「단풍」 사건이다. 짧게 지는 가을 단풍을 ‘화냥년’에 비유한 이 시는 SNS에서 논쟁을 이끌어냈다. 이외수는 이 시의 여성혐오적 구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독서량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난독증이 심하고, 난독증이 심한 사람일수록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거나 행...
백일몽 [day-dreaming, 白日夢]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 이 글은 필자가 무지개책갈피 주최 <퀴어문학 포럼>(성공회대, 2019. 11. 9)에서 발표한 「구겨버린 입장권(2)─퀴어문학의 독자성readership 구성에 관한 메모」의 일부를 축약・재구성한 것이다....
백일몽 [day-dreaming, 白日夢]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
며칠 전 서울인권영화제와 한국퀴어영화제가 함께 하는 네 번째 공동상영회 <퀴어, 인권> 행사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트랜스와 관련한 영화, 향정신질환 의약품과 제약회사, 그리고 유럽과 미국 정치권과의 카르텔을 다룬 영화,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난민 의제를 다룬 영화, 아일랜드의 동성결혼 법제화 과정을 다룬 영화 등이 상영되었다. 모든 영화가 중요한 의제를 다루고 있지만 나는 트랜스를 다룬 영화 중 단편 영화 <첫 외출>(김혁 감독, 2018)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당신에게는 당신을 지킬 의무가 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의 속편을 준비하던 때 적었던 첫번째 소제목이다. 2016년 말쯤 계획했던 속편 출간은 유야무야 무산되었으나 그 때부터 지금껏 나는 어쩐지 무산되었던 속편을 끊임없이 입으로 읊으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언니, 그의 친구, 온라인으로 연결된 여성, 인터뷰를 위해 만난 여성, 강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나를 잠시 불러 세운 여성, 학교에서 만난 동료, 동료의 동생까지 수없이 많은 여성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해야 했고 그 때마다 내가 동일한 간절함을 담아 건네는 첫 마디는 언제나 같았다. 네게는 너를 지킬 의무가 있어....
백일몽 [day-dreaming, 白日夢]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
백일몽 [day-dreaming, 白日夢]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끝나지 않았던 운동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사람들은 ‘운동’은 이미 끝났고, 신자유주의가 대학가를 지배했다며 혀를 찼다. 그 말은 분명 일부 사실이었다. ‘한총련’으로 상징되었던 대규모 학생운동은 이전만큼 동원력을 가질 수 없었고, 매년 4월 30일에서 5월 1일로 이어지는 민중대회에도 대학 단위의 대오는 적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학교 본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삭발식을 하던 언니들의 모습을. 갑작스레 인상된 등록금 문제를 중심으로 교육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학생회장단은 한 달간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때 천막을 지키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며...
퀴어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이거나 페미니즘과 같은 저항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 ‘지금보다 더 좋아질 미래’는 중요한 가치다. 오늘 내가 적극 참여한 운동이 당장 내일의 삶은 아니라고 해도 몇 년 뒤 나와 내 동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는 운동을 지속시킬 중요한 동력이 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사는 곳보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정보는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미국은 이렇고, 프랑스는 저렇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렇고, 대만은 저렇다는 식의 정보는 한국보다 더 낫다고 평가하는 사회 혹은 한국에는 없는 법과 제도를 갖춘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무엇이 필요하고 장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