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으로 레즈비언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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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적으로 레즈비언 되기

유의미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동성애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

표지에 예쁜 무지개가 그려진, 유명한 호모포비아 교수의 책 제목이다. 물론 저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 질문의 의도가 불순하다. 타고나는 것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질병도 아니고 고칠 것도 아닌데 선천인지 후천인지 따져서 뭐할까 싶지만, 나 또한 스스로 참 많이도 던졌던 질문이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처럼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홉 살에 걸그룹 핑클을 좋아하면서 그랬나? 일곱 살 때 유치원의 여자 반장이었던 나리를 좋아했는데, 더 이전에 여섯 살 때는 짝꿍이었던 혜미를 좋아했고, 아니 혜미를 알기도 전에 TV 애니메이션 뾰로롱 꼬마 마녀의 민트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아니 그 전에는 내 금발 머리 미미 인형을 끔찍이도 아꼈는데!’

누군가는 이십 년 전 짝꿍 이름은 기억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 애의 얼굴뿐 아니라 책상 밑으로 함께 발장난을 치던 장면까지도 생생하다. 그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반복된 기억의 되새김질 때문이다. 사랑은 무엇인지, 그게 사랑이었는지, 그럼 나는 레즈비언인 건지, 이렇게 된 건 언제부터였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조금이라도 여자를 좋아했던 순간들을 모아 하나하나 되짚어가는 과정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를 이루는 특성을 모두 선천과 후천으로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을 만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책을 읽으며 놀았던 걸 보면 조금은 선천적이다. 그러나 상냥하고 명랑한 성격을 동경해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결국엔 꽤 잘 해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유치원에 다닐 때는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더는 못 버티고 울면서 집에 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 시간을 즐기고, 직접 모임을 만들어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 어떤 기간에는 틈만 나면 사람을 찾아 어울리고 시끌벅적한 모임을 진심으로 좋아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간단히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내 삶의 긴 역사와 수많은 말이 생략되어 있다. 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게 거짓말인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까지의 경험을 들여다보고 해석해서 내가 내린 결론이니까 말이다. 다들 비슷할 거다. 온전하게 타고나는 부분과 자라면서 형성되는 부분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타고났지만 또 어느 정도는 스스로 일깨우거나 훈련한 거고, 취할 부분을 취하고 바꾸고 싶은 부분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내가 내 특성을 소개할 때 누구도 선천인지 후천인지 물으며 타고난 부분만 진짜로 인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혹시 나중에 더 생각해보고 나에 관한 설명을 조금 바꾸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평생 자기 자신을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거니까.

나는 애쓰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여자가 좋았고, 그 마음의 동요를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주목했다. 일상의 수많은 사건 중 그 일을 집중적으로 고민했고, 외롭게 헤맨 끝에 레즈비언이라는 내 이름을 찾았다. 고민 끝에 만난 그 이름이 반가웠고 마음에 들었다. 나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해서 나를 소개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런 세월을 거치며 그 이름에 애착이 생겼다.

처음에는 내가 그 이름을 달아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다.

 얼마나 여자를 좋아해야 레즈비언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을 레즈비언으로 부른다면, 여성부터 사랑까지 모두 모호했다. 사랑에 욕망, 끌림을 포함해도 마찬가지이다. 남들과 비교해서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혼자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명확해지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 감정이 사랑이 맞는지, 그리고 나도 그 상대도 여성에 포함되는지 대체 어떻게 규명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나는 얼마나 여성인 채로 얼마나 여성을 사랑해야 레즈비언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여성이라는 범주가 임의적이고 사랑이 이데올로기인데 어떻게 사람이 레즈비언일 수가 있는지, 또 끌리는 상대라는 게 사람도 바뀔 수 있고, 사람이 같아도 성별이 유동적일 수 있는데, 상대와 성별을 전제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해도 되는 건지, 그건 또 얼마나 불안정한 일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레즈비언이기를 선택했다. 

낱낱이 근거를 모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이름에 어울린다고 느꼈던 지점들이 있었다. 사람이기에 정확히 분류되지 않는 여러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인과관계가 하나하나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이거야말로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누군가에게 해명할 필요 없이 내가 가장 잘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 언제부터 사랑이었는지 흑역사까지 탈탈 털고 기억도 안 나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내 느낌에 레즈비언인 것 같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결정하면 되는 거로 생각했다. 뭐 우연일 수도 있고 운명일 수도 있고 사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일단 그렇게 시작해보기로 했다.

어딘가에는 나랑 비슷한 만큼 여성이고 나랑 비슷한 만큼 여성에게 끌려도 레즈비언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정체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퀴어 정체성 중 다른 이름이 더 나를 잘 설명한다고 느낄 때도 있었고, 지금도 정확히 말하면 레즈비언으로만 정체화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나를 레즈비언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알아듣고 생각하는 모습과 대충 비슷하고, 내 개인적인 맥락에서는 큰 어긋남이 없기에 그렇게 소개한다. 그리고 그 이름에 따라오는 편견도, 그 이름으로 받아왔던 차별도, 그 이름으로 일상에서 해왔고 해나갈 정치도, 좋든 싫든 기억을 함께 만든 레즈비언 커뮤니티도 이제는 내 존재의 근간이 되었다. 입을수록 내 몸을 닮아 점점 더 편해지는 청바지가 있다. 레즈비언이라는 이름이 나에게 그랬다. 그 이름을 쓸수록 그 이름이 편해졌고,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감각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삶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움직일 때마다 한 걸음씩 그 이름에 다가가, 처음보다 그 이름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나 ‘레즈비언’은 청바지처럼 입고 벗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레즈비언인 것이 나를 구성하는 여러 특성 중 하나의 무게로 취급되고, 정체성을 옷처럼 갈아입을 수 있는 여건이라면 얘기가 다를 것이다. 사람이 백 명이면 백 개의 섹슈얼리티가 있고, 각자 자유롭게 욕망을 추구하고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며,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면 말이다. 행여 이름을 붙이고 정체화를 했다고 해도 ‘저 레즈비언이에요.’ 하는 말이 ‘저 어제 치킨 시켜 먹었어요.’ 정도의 무게가 되는 상황이면, 나는 굳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힐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게 아니고, 나는 여전히 그 이름을 선택함으로써 싸워야 한다. 때로는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피곤해져야 한다. 내게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이건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레즈비언으로 살기로 하는 건 쓸데없이 엄중한 결단이고 실천이 된다.

남들과 다른 이름으로 나를 규정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동안 외면할 수 있던 수많은 문제에 눈을 떠야 했다. 교과서의 이성 교제를 설명하는 대목을 가만히 응시해야 했고, 동성애자의 이름을 써내라는 담임의 설문지를 뚫어져라 바라봐야 했다.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동성애에 관한 편견이 튀어나올 때면, ‘그거 아니래.’ 하며 레즈비언의 대표라도 된 것처럼 변호하곤 했다. 집에 돌아가서는 각종 자료를 긁어모아 논리를 만들고 공부했다. 그렇게 그 이름을 가지는 대신 그 이름의 무게를 떠안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건 일종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까지 무거운 이름을 원한 적은 없었다. 그냥 사랑하고 섹스하는, 즐겁기만 할 수도 있는 얘기였다. 수험생활을 다시 할까, 대출을 받을까 말까, 회사를 그만둘까 같은 일생일대의 고민보다는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이태원에 갈까 홍대에 갈까,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까 하는 정도의 즐거운 고민과 더 어울리는, 정말로 청바지를 입고 벗는 가벼운 선택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레즈비언을 하려면, 저 무거운 것들도 같이 가져가야만 했다.

그래서 동시에 레즈비언인 것은 선택의 문제만은 아니고, 내 삶의 일부이다. 레즈비언으로 살아온 역사가 있고, 이미 형성된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내 미래와 삶의 방향까지도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과 엮여있다. 이건 기호나 취향처럼 갈아탈 수 있는 게 아니다. 레즈비언이라는 특성이 공격받는다고 해도 나는 레즈비언과 쉽게 분리될 수 없다. 설 곳이 없어지면 담배를 끊으면 되는 흡연자인 편이 차라리 낫다. 나는 레즈비언이 설 곳이 없어진다고 해도, 내 과거와 미래를 끊을 수가 없다.

레즈비언인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지 줄기차게 얘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우리의 사랑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존중받고 싶지 않다. 사랑을 하든 말든 누구와 하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사는 국가는 지금 나의 키, 머리 길이, 성품, 취미 같은 것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런 요인들을 이유로 누구와 결혼하고 누구와 결혼하지 말라고 한 적도 없다. 성별도 똑같다. 바라는 건 그게 다다. 그냥 그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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