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여자야,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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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여자야, 남자야?"

루인

최근 나는 함께 사는 고양이의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동물 병원에 갔다. 수의사는 고양이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입원시키기로 결정한 뒤 나를 두고 “엄마로 불러야 할지, 아빠로 불러야 할지… 흐흐”라는 말을 했다. 엄마나 아빠 혹은 캣맘이나 캣대디는 반려동물이 있는 주인이나 집사, 혹은 주로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에게 자주 사용하는 호칭이다. 

그 수의사는 내 고양이의 입장에서 나를 엄마로 불러줘야 할지 아빠로 불러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헷갈린다는 소리다. 일단 나의 고양이는 나를 엄마로도 아빠로도 부르지 않으며 그저 “냐아옹”하고 부른다. 그러니 수의사의 그 말은 고양이의 관점에서 나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와 관련한 질문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나와 고양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나에 대한 호칭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당신 여자야 남자야?

나는 나 자신의 젠더 범주를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설명하지 않으며 트랜스젠더퀴어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젠더퀴어와 관련한 유명한 농담 중에 “당신 여자야 남자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 젠더퀴어는 “예” 혹은 “아니요”라고 대답한다고 한다(질문의 의도에 충실한 답변은 “여자” 혹은 “남자”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수의사의 그 말은 나의 젠더 범주와 관련한 매우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시점에서 내가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통하지 않고 ‘모호’한 모습으로 통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수의사의 그 말로 인해 어떤 불쾌함은 느꼈을지언정 그것이 내게 어떤 피해를 야기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수의사가 자의적으로 나의 젠더 범주를 결정하기보다 난감함, 곤란함을 표현하는 질문을 했다는 점에서 수의사의 태도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가해는 아니지만
폭력인 것

하지만 그 말에 담긴 폭력성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만 환원하고자 하는 관습적 인식, 여성/엄마 아니면 남성/아빠로 정확하게 구분해서 불러주는 것이 예의라고 여기는 문화,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헷갈려 하는 행태를 모욕이라고 여기는 문화, 여성은 엄마여야 하고 남성은 아빠여야 한다는 이성애-가부장제 가족 구조의 언어 관습, 여성 아니면 남성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모호한’ 존재가 있을 때 그들을 조롱해도 괜찮고 이 조롱은 유머의 일종이라는 규범(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자주 이 조롱을 접할 수 있다), 그 수의사의 경우는 아니지만 상대의 젠더 범주가 무엇인지 상대방에게 먼저 확인하기 전에 ‘내’가 그것을 알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으며 나의 결정이 정확하기 때문에 상대의 젠더 범주를 정중하게 질문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사유하지 않는 무지의 권력, 수의사는 내게 질문을 했지만 그 질문이 다른 어떤 젠더 범주의 가능성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 여성/엄마 아니면 남성/아빠라는 이분법에 수렴시키려고 한 의도였다는 점 등이 수의사의 발언에서 유추할 수 있는 폭력성이다. 이 폭력성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이자 자연질서로 작동하고 있는 폭력 구조의 내용이기도 하다.

나는 수의사의 말을 듣고 어떤 피해를 겪지는 않았지만 묘한 불쾌함은 느꼈다. 수의사의 질문이 문화적 관습으로 구성된 폭력 구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의사는 내게 불쾌함을 줄 의도 자체가 전혀 없었다(“흐흐”라는 웃음은 수의사의 버릇이기도 하다). 폭력은 상대방을 괴롭히겠다는 식의 의도를 통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상대방을 ‘칭찬’하거나 ‘관심’을 표명하려는 의도로 기존의 폭력 구조를 반성하지 않고 반복, 재생산할 때 발생한다. ‘여성’에게 칭찬한답시고 “남자 못지 않게 일을 잘해”와 같은 말처럼.

폭력과 피해의 관계학

나는 수의사의 발언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수의사의 발언에서 나는 불쾌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나의 젠더 범주 실천이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니 나는 이것을 더더욱 피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피해라면 트랜스젠더퀴어의 젠더 이분법에 부합하지 않는 젠더 실천의 성공은 언제나 곧 피해의 발생이자 피해자되기인가라는 질문을 야기한다.

하지만 피해가 없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괜찮은 것은 아니다. 피해가 곧 폭력은 아니며 폭력이 곧 피해는 아니다. 피해가 없다고 해서 폭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피해는 없어도 폭력은 계속해서 작동한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퀴어를 끊임없이 배제하고 이 세상에 부재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동시에 괴물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이원젠더체계가 반드시 트랜스젠더퀴어에게 피해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피해는 이원젠더체계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원젠더체계와 상관없이 다른 방식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이원젠더체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반드시 피해는 아니다. 

오히려 트랜스젠더퀴어 커뮤니티에게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원젠더체계가 야기하는 폭력은 정확하게 그리고 계속해서 이야기될 수 있어야 한다. 폭력과 피해의 관계를 복잡하게 사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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