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에게서 예전에는 학생들이 젠더 위계 질서를 말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면 요즘은 젠더 위계 질서보다 젠더 다양성을 말하는 것에 관심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트랜스젠더퀴어 혹은 젠더 다양성을 주장하는 일련의 흐름으로 인해 여성과 남성 사이에 발생하는 불균형한 차별, 젠더 위계 질서를 말하기 어려워졌다는 식의 주장은 꽤나 널리 퍼져 있다. 이 주장은 젠더 위계 질서를 다루는 논의와 젠더 다양성 논의는 서로 모순되거나 배척한다는 이해를 전제한다.
이분법에 반항하고
단순함에 저항하라
1960년대 후반 서구 사회에서 제2물결 페미니즘이 시작되었을 때 페미니스트들이 내건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 사회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가사 노동을 자연스럽게 잘 할 것이고(당연히 잘 해야 하고 못 하면 그것이 문제가 되고) 남성이라면 공적 임금노동에 적합하기에 가사 노동을 못 하는게 당연하다는 편견이 만연했다.
제2물결 페미니즘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당연한 자연 질서로 삼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바꾸려 했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비본질화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 평가 자체가 위계적이라는 인식을 내포한다. 즉 여성성과 남성성은 단순히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남성성은 우월하고 여성성은 열등하다는 이분법적 가치 질서가 가부장제 체제를 유지한 중요한 장치라는 지적이다.
이 주장은 페미니즘 내부의 다층적 목소리를 통해 더욱 복잡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제2물결 페미니즘이 시작될 때부터 함께 했던 흑인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많은 비백인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의 의제가 중산층 백인 여성의 이해를 중심으로 구축되었음을, 장애가 있는 페미니스트는 비장애 여성의 이해를 중심으로 구축되었음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인종에 따라, 직업, 계급, 출신국가, 언어, 장애 등에 따라 여성성과 남성성의 의미는 다중적으로 구축되기에 여성성과 남성성의 위계 질서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낯설어하며 낙태를 강제하고 미혼/비혼 여성의 출산은 비난하는 것처럼.
여성성과 남성성의 의미를 복잡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과 억압 구조를 부정하는가? 혹자는 여성이 겪는 차별을 말할 수 없게 만든다고 불평하지만, 여성성과 남성성의 의미를 복잡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은 차별과 억압의 작동 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한다.
다양성이
위계질서를 해치는가?
사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의미를 복잡하게 사유하는 작업은 인간의 젠더 정체성 범주를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구성하는 방식 자체를 질문하면서 제2물결 페미니즘과 함께 진행되었다. 인간은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만 태어나는가? 인간은 왜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만 인식되는가? 인간을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만 분류하는 방식은 정말로 자연질서라서 질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인가?
일련의 질문은 젠더 정체성 범주가 구성되는 방식을 질문하고 젠더 정체성 범주 자체를 다양하고 다른 방식으로 사유한다. 이 문제제기로부터 트랜스남성과 트랜스여성의 개념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젠더 정체성 범주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젠더 다양성 논의라고 불리는 논의의 시작이자 현재의 양상이다.
인간의 젠더 범주를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나누는 것에 문제제기하는 젠더 다양성 논의가 과연 젠더 위계 질서를 부정하는가? 젠더 다양성 논의가 젠더 위계 질서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모든 젠더가 어떤 차별이나 위계 질서 없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해야만 한다. 물론 이 주장은 젠더 다양성을 논하는 이들 중 일부가 지향하는 방향 중 하나다. 지향하는 방향 중 하나라는 말은 지금 현재 상황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젠더 다양성을 통해 등장하는 무수하게 많은 젠더 정체성 범주는 매우 자주 그 자체로 부정되고 무시된다. 트렌디한 유행에 불과하다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유의미한 정치적 의제가 아니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젠더 다양성은 많은 사람에게 부정과 부인의 대상으로 존재하기에 지금도 정치적 투쟁의 장으로 실존한다. 즉, 젠더 다양성 논의와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주장하는 개개인은 이미 사회적 위계 질서에 의해 차별을 받는다.
차별의 복잡한 얼굴을
드러내기
또한, 젠더 다양성 논의는 이원젠더 체제에서 많은 젠더 정체성이 위계적 차별 질서를 통해 억압 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논의는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억압을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하기보다 바로 그 논리 구조를 통해 어떻게 더 많은 젠더 정체성이 삭제되고 억압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여성은 억압 받지 않으며 다른 다양한 젠더 정체성만이 진정으로 억압 받는다’는 식의 주장은 젠더 다양성 논의에 대한 가장 지독하고 악의적 오해다.
타인의 고통, 억압, 차별 경험을 부정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지배 권력을 모방하고 재생산하는 행동일 뿐이다. 젠더 다양성 논의는 인종이나 장애와 같은 분석 범주가 여성 혹은 남성 범주를 복잡하게 만들 듯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 정체성 범주를 비롯한 다양한 젠더 정체성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고 이로 인해 차별과 억압 역시 복잡한 양태로 구성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기에 젠더 다양성 논의는 젠더 위계 질서를 부정하는 작업이 아니라 젠더 위계 질서를 더욱 정교하게 사유하는 방식이다. 젠더 다양성 논의는 더 많은 페미니즘 의제를 발굴하고 생산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여성’ 범주를 단순하게 만드는 지배 권력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