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4일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 시티가 임신 중절 수술 합법화, 비범죄화를 승인했다. 이 사실은 31개 주와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멕시코가 임신 중절 수술을 비난의 대상으로 여기는 가톨릭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매년 400만 건의 임신 중절 수술이 이루어지며 임신 중절 수술 시술을 받는 여성 5000여 명이 불완전한 시술로 인해 사망한다. 또한 시술을 받은 여성의 30~40%가 심각한 후유증으로 고통받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임신 중절 수술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가톨릭 국가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사회적 논의로 부상하기 어렵다. 특히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두려워한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많아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멕시코에서 임신 중절 수술 합법화, 비범죄화가 이뤄진 것이다. 이와 같은 멕시코의 낙태법 개정 과정을 다루는 것은 최근 한국의 모자보건법 사태를 비춰봤을 때 유의미한 일이다.
1: 1970년대
멕시코 신페미니스트 운동의 시작
1970년대부터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의제를 중심으로 임신 중절 수술권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때의 멕시코 신페미니스트들은 멕시코시티 출신의 중산층 여성들로 높은 교육수준, 좌파적 정치성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전통적인 의미의 정치 형태, 정치 대표성 개념을 부정했다. 대신 소규모의 의식화 그룹이나 연구회 활동으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임신 중절 수술권을 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연관시켜 운동을 진행했다. 그렇게 운동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1976년 페미니스트 여성동맹이 설립되었고, 임신 중절 수술권에 대한 법안을 최초로 의회에 제출하게 된다. 멕시코 정부는 학제간 그룹을 구성하는 등 이에 관심을 보였으나, 의회가 이에 대한 논의를 거부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79년에는 여성자유권리국가전선이 두 번째 임신 중절 수술 합법화 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우파 정치 세력과 가톨릭 교회가 압력을 넣어 임신 중절 수술 합법화는 다시 한번 좌절된다. 이후 페미니스트 진영이 분열되기 시작하며 우파 기독교 세력에 의해 멕시코 신페미니스트 운동은 쇠퇴기에 접어들고 만다.
2: 1980년대
‘부유층 여성들은 임신 중절 수술하고 빈곤층 여성들은 죽는다'
대부분의 활동이 중앙 정치 과정과 분리되어 있었다는 점, 따라서 단일한 행동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점은 이전 세대의 멕시코 신페미니스트 운동이 가진 한계점이었다.
이런 실패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1980년대의 임신 중절 수술 합법화 운동은 전략을 선회한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 대신 ‘자발적 모성'이라는 구호를 채택한 것이다. 여성의 자율권 호소 만으로는 라틴 아메리카 사회의 광범위한 연대와 지지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여기서 ‘자발적 모성'이란 여성의 선택, 건강권, 사회정의, 공공보건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때 멕시코 페미니스트들은 ‘부유층 여성들은 임신 중절 수술하고 빈곤층 여성들은 죽는다'라는 말을 회자시키며 보수 기독교 세력의 반대를 넘어설 수 있었다. 임신 중절 수술문제가 개인의 영역이 아닌 정부의 공공정책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3: 보수 기독교 - 가부장제 - 여성의 몸 간의 상관관계
"임신 중절 수술 공격은 보수층에게 유용한 정치적 수단. 도덕적 포장으로 자신들의 부패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교계를 비롯한 보수층의 결집에도 유용한 것이었다."
임신 중절 수술권 공격은 진보진영을 비윤리적인 양 낙인 찍고 진보적 정책을 발목잡기 위한 히든 카드다. 이를 통해 가족 제도를 강화하고, 양육, 노인 부양, 간병 등의 일들을 개별 가정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최후의 피해자는 결국 여성이 된다.
멕시코의 사례를 통해 각 사회, 문화, 나라, 사안에 따라 '임신 중절 수술'라는 이슈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명분화 될 수 있는 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기독교 세력이 큰 한국 역시 지금처럼 '여성의 자기 결정권'만으로 싸우기에는 임신 중절 수술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보수층, 기독교 세력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의 경우, 지난 4.13 총선 때 2% 가까이 지지를 얻은 ‘기독자유당’도 있다. 얼마 전 검은 시위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이 의견을 나눴다.
“얼마 전 ‘검은 시위’에 갔었는데, 거기서도 주로 ‘여성의 자기 선택권으로서의 임신 중절 수술’을 아젠다로 삼고 있었다.”
“여성의 몸으로 태어나 겪게 되는 가장 직접적인 문제라 더욱 분노했는데, 그러다보니 다른 각도에서 보기가 어렵기도 하다. ‘내 자궁은 내 것'이라는 구호도 트랜스젠더 여성과 같은 성소수자들을 배제한다는 이야기를 보고, 시의적절하게 논쟁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되었다.”
“‘자기 선택권’뿐 아니라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해서 쟁취할 수 있다는 멕시코의 사례가 와닿았다. 지금 논의는 대부분 여성의 자기 선택권 프레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새롭고 진보된 가치긴 하지만 승리를 위해 다양한 프레임을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다.”
한국의 상황을 비춰보며 '여성의 자기 선택권' 뿐 아니라 다양한 프레임이, 또 트랜스포빅하지 않은 방식의 구호들이, 제도권 정치에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현재 멕시코시티 성인여성은 가족이나 배우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임신 중절 수술결정의 자율성을 가지며, 항상 무료로 임신 중절 수술을 시술 받는다. 또한 멕시코시티가 아닌 타 지역의 여성들도 멕시코시티 시민과 동등한 자격과 방식으로 합법적 임신 중절 수술을 시술 받고 있다. 보건부 통계에 따르면 2007년 법안 통과부터 2008년 3월 5일까지 6581건의 합법적 임신 중절 수술시술 중 14.2%가 타 지역 여성들의 임신 중절 수술 시술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윤리의 갱신'
임신 중절 수술권도 ‘누구’의 윤리인가, ‘어떤’ 측면에서의 윤리인가를 잘 살펴봐야 할 쟁점이다. 이슈를 접하는 각자가 자기 기준에서 윤리성을 판단하기 때문에, 단순히 ‘자율권’으로 논쟁하는 건 어쩌면 소모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다른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윤리를 갱신할 기회가 없다. 수십년이 지나는 동안 세대마다 달라진 삶의 양상을 윤리에 반영할 과정, 기존의 ‘보편’과 다른 삶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거다. … 이 갱신을 위해 새로운 기준에 대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