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곰퍼츠: 낙태할 권리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싸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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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곰퍼츠: 낙태할 권리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싸우는가

신한슬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네덜란드 출신 여성 의사 레베카 곰퍼츠는 그린피스에서 활동하며 위험한 방법으로 몰래 낙태를 시도하다 죽어가는 여성들을 만났다. 국가가 낙태를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이 안전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선박을 타고 공해 상에서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ives)’ 활동을 시작했다. 그 연장선으로 온라인에서 낙태가 금지된 나라에 낙태약을 보내주는 ‘위민 온 웹(Women on Web)’ 활동도 하고 있다.

이민경 작가를 비롯한 페미니스트 출판사 <봄알람> 멤버 네 명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테마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도, 오래된 건축물도 아니다. 낙태, 즉 여성의 재생산권을 쟁취하기 위한 유럽 6개국 여성들의 투쟁의 역사와 현재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프랑스, 네덜란드, 아일랜드, 루마니아, 폴란드, 시칠리아에서 싸우는 여성들을 만났다. 이 여행기는 <유럽 낙태 여행(Journey for Life)>이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유럽 낙태 여행> 중 네덜란드에서 만났던 이민경 작가와 레베카 곰퍼츠가 7월7일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봄알람이 북토크를 시작하기 직전, 핀치가 이들을 만났다. 낙태할 권리를 위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어떻게 싸워야 할지 이야기했다.

낙태 반대 논리의 모순을 파헤치자

낙태를 범죄시하는 사람들은 주로 태아의 생명권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도 법무부가 낙태를 허용하면 낙태율이 급증하고,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베카 곰퍼츠: 중요한 건 낙태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는 거다. 사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는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다. 낙태를 일부만 허용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강간으로 인한 임신을 제외하고는 태아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낙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생각해 보라. 낙태 반대 사유가 정말 태아 때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태아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왜 강간에 인한 임신만 낙태를 허용하는가? 

우리는 이런 비일관적인 주장을 파고들어 자신이 낙태를 반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옳다고 믿는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낙태를 지지한다는 것은, 사실 여성이 낙태가 필요한 다른 사정에서의 낙태를 지지하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이 주장의 중심에 있는 것은 태아가 아니라, 여성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매우 적은 사람들, 내 추측에는 1% 이하의 사람들만 정말로 태아를 걱정해서 낙태를 반대한다.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여성의 생명이 위태롭든, 여성의 건강이 위협받든.

여성이 스스로 원하는 경우에만 낙태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 태아에 대한 윤리적 상황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다. 그건 여성을 불신하는 것이다. 사회는 여성이 자기 자식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그렇게 가르친다. 여성의 양육 능력에 대한 믿음은 사회의 중요한 기능이다. 그런데 여성이 '현재 나는 자식을 키울 능력이 없고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낙태를 선택하는 것은 왜 최선의 판단이라고 믿지 못한다는 말인가? 나는 이것이 우리가 계속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민경: 한국 사회에서 낙태에 대한 토론을 할 때 질문이 구성되는 방식부터 혼란을 야기한다. 만약 “낙태에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만 해도 당연히 낙태는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다. 중요한 건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경험이라는 것과 형법으로 다루어야 할 죄라는 것은 굉장히 다른 얘기다. 그런데 그게 교묘하게 섞여 버린다. 나만 해도 어릴 때는 ‘만약 내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한다면 불쌍한 아기를 죽이고 이기적으로 살아버릴 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낙태는 이기적이고, 벌을 받아야 하는 ‘죄’의 영역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페미니스트가 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데 이걸 국가가 처벌해?’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성들 사이에서도 낙태라는 것이 동반하는 감정들과 죄의 영역이 뒤섞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남성들 같은 경우는 자신들이 여성의 죄를 벌 줄 주체라고 생각한다. 레베카가 말한 것처럼 강간은 괜찮다, 장애아는 괜찮다, 이런 식으로 ‘괜찮은 낙태’와 마땅히 벌받아야 할 낙태를 자신들이 선별해주려고 든다. 사실은 그런 게 아니고 여성의 입장에서는 이유가 어찌됐든 낙태란 비슷한 감정을 동반하는 똑같은 경험이고, 국가가 참견하지 않아도 여성이 알아서 삶에서 감내해야 할 과정이다. 그런데도 낙태가 죄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은 잘못됐는데,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맘인데?’ vs ‘아기가 불쌍해’ 이 논의에서 계속 떠나지 않는다.

7월7일 광화문 아크홀에서 열린 <유럽 낙태 여행> 북토크.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남성들에게 ‘낙태’란 자신들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여성의 재생산권 이슈를 설득해 나가는 데 답답함이나 좌절감도 있을 것 같은데.

레베카 곰퍼츠: 한 번도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느낀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인권이 없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인권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대부분은 매일매일 일상을 견디기 바쁘니까. 동시에, 낙태가 법으로 금지된 나라에서 낙태를 해야 하는 문제에 처한 여성들조차도, 대부분은 이를 정치적인 이슈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여성들에게 낙태는 이슈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들이 연대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정치적인 이슈임을 환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위민 온 웹(Women on Web)’에 도움을 요청하는 여성들에게 낙태를 둘러싼 세계적인 현황과 더불어 낙태는 여성의 권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메일로 경과를 주고받을 때, 자신의 낙태 경험과 이야기를 온라인 또는 언론과 공유하지 않겠냐고 권유한다. 이를 통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여성들을 도울 수 있고,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일이 여성의 재생산권 투쟁에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인터뷰를 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만약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만이라도 함께 여성의 재생산권을 위해 투쟁할 수 있다고 해도 상당히 많은 수다. 그리고 직접 낙태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주변에는 낙태를 경험한 사람들이 이미 있다. 문제는 그들이 아는 사람이 낙태를 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낙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그들 주변의,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이것이 추상적인 이슈가 아니라 매우 가까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통계로 평균적으로 여성 4명 중 1명이 평생 1번 낙태를 경험한다고 하는데, 그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친구, 가족들과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는 정치적인 이슈로 쉽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권리 문제? 바로 옆에 있는 여성의 삶의 문제!

핀치에서도 여성들의 낙태 경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나누자는 취지의 페이지를 개설했다. 어떤 여성은 ‘위민 온 웹’에서 낙태약을 받았을 때, “살아도 된다”라고 누가 자신에게 말해준 것 같다고 썼다. ‘파도 위의 여성들’이나 ‘위민 온 웹’에서 도움을 받았던 여성들에게 받았던 메시지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는지.

레베카 곰퍼츠: 매일매일, 여성들로부터 ‘당신이 제 생명을 살렸다’라는 메일을 받는다. 그 전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고, 자살을 생각했고, 이런 단체가 존재할 줄 상상도 못했다는 이메일이 온다. 이런 메시지가 우리를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당신이 그 구절을 읽고 감동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매일 감동을 받는다. 왜냐하면 많은 여성들이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나의 가장 큰 과제는 ‘우리를 찾을 방법을 모르는 여성들을 어떻게 찾아내서 더 많은 여성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다.

이민경: 트위터에서 낙태를 하고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분이 있었다. 그래서 돈을 좀 보냈다. 가짜다, 아니다, 뭐 그런 얘기가 많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장난일 가능성이 있을지언정 그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분이 트위터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받은 덕분에 매일매일 자신의 건강상태와 기분을 올려줬다. 그 사람 한 명이 그렇게 트위터에서 얘기한 게 파급력이 컸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서도 파급력이 컸고, 누군가 트위터 사용자가 그걸 지나가다가 봤다면 ‘낙태를 하고서 그 다음에 삶이 이어지는 구나’ 같은 걸 알릴 수 있지 않나. 그분이 그렇게 계속해서 발언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고무적이었다. 그전까진 누가 낙태했대, 라는 소문을 듣거나, 우리 할머니 세대에서 낙태했다는 얘기를 듣거나, 친구가 낙태를 했다는 얘기를 해서 울거나, 이미 다 처치가 끝난 채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페미니스트 공론장이 만들어져서 문제 해결을 같이 했다. 임신을 하고, 낙태비를 모금하고, 차후 경과를 알려주고, 응원하고, 이런 과정을 같이 했던 게 개인적으로 큰 감동이었고, 이 운동을 어떤 방식으로 계속 해야겠다는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낙태를 한 여성들이 보내 준 경험기에서 혼자 겪기보다는 옆에서 누가 지켜봐 주는 게 필요하다는 내용이 많았는데.

레베카 곰퍼츠: 나는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어떤 여성들은 낙태 과정을 혼자 겪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도 된다. 다른 여성들은 믿을 만한 사람들, 파트너나 가족, 부모, 친구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어떤 여성들은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기를 바라지만 도움을 줄 사람을 찾지 못한다. 그 경우가 슬프다. 만약 믿을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거나, 그저 혼자 있는 편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가까운 이웃이나 누군가에게 ‘제가 몸이 정말 안 좋은데 1시간 뒤 전화를 하셔도 받지 않으면 한 번 확인해달라’고 부탁을 해놓는 게 중요하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한국처럼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는 주로 인터넷에 의존해서 낙태에 대한 정보를 얻는 수밖에 없다.

레베카 곰퍼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번째는 인터넷에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영어로 ‘낙태 하는 법’을 인터넷에 치면 허브나 비타민C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효과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위험할 수도 있다. 여성들이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또한 낙태약을 제공하는 소스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위민 온 웹’에서 제공하는 낙태약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증한 안전한 약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출처도 많다. 알다시피 인터넷은 쓰레기통인 동시에 놀라운 정보의 보고다(웃음). 어떻게 정확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지 교육해야 한다.

두번째는, 당연하게도 많은 여성들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문맹이거나, 빈곤하거나, 여러 경우가 있다.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여성일수록 낙태를 해야 할 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이민경: 인터넷을 쓰기 전보다는 낫다. 그러나 정보의 진입격차가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트위터를 통해서 낙태를 할 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위민 온 웹’ 같은 단체가 알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화라든가, 경제적 상황이라든가, 아무튼 어떤 요소들이 종합되면서 누구는 이런 커뮤니티를 알 수 있고 없는 차이가 발생한다. 젊은 여성들의 새로운 시도나 연대에 전혀 닿지 않는 여성들이 있다.

가장 취약한 여성이 안전한 낙태로부터 가장 소외된다

공교육에서 낙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면 좋을 텐데, 실상은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낙태는 ‘하지 말라, 하면 인생 끝난다’는 정도다. 공교육에서 낙태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다른 나라의 사례가 있나?

레베카 곰퍼츠: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 스웨덴이 좋은 예시 같다. 낙태에 대한 낙인이 없다. 굉장히 적은 나라만이 중립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또 어떤 나라가 있을까…

이민경: 네덜란드?

레베카 곰퍼츠: 음… 좋다. 네덜란드 얘기를 해보자.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들이 겪는 문제가 있다. 여전히 네덜란드의 미디어는 낙태를 문제적이고, 힘들고, 부정적인 일로만 묘사한다.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선택한 게 얼마나 훌륭하고 좋은 일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낙태한 여성들을 낙인 찍기 때문이다. 영국도 비슷하다고 알고 있다. 프랑스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이민경: 별로 그렇지 않다.

레베카 곰퍼츠: 그런가?

이민경: 프랑스 활동가들은 네덜란드가 프랑스에 비하면 유토피아라고 했다.

레베카 곰퍼츠: 그렇다면 이건 어디서든지 해결해야 할 이슈인 것 같다. 결국 기본적으로 낙태가 공공보건체계에서, 공공보건기금에 의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제공되는 나라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낙태를 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의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낙태가 합법이지만 특별히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낙태를 할 수 있다. 이런 의료기관들은 항상 도시 중심부에 있다. 시골에 사는 여성들은 몇 시간씩 여행을 해야만 병원에 갈 수 있다. 만약 여성이 아이가 있거나, 폭력적인 연인관계에 종속돼있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모든 낙태가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아 돈이 없으면 낙태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미국 여성들도 우리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미국에서 낙태를 하려면 500달러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 여성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 쫓겨나 차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낙태를 위해 500달러를 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낙태가 허용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낙태를 제한하는 모든 사회적인 불평등과 불의는 언제나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민경: 루마니아 같은 경우 과거에 낙태에 관한 참혹한 역사가 있어 낙태가 합법이고 프랑스보다 낙태 허용 주수도 길다. 그런데 성교육이나 재생산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피임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여성이 피임보다 훨씬 몸의 부담이 많은 낙태를 하게 된다. 그래서 루마니아가 유럽의 제1위 낙태국이다. 낙태를 못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낙태가 피임의 방편이 되면 다른 피임 방법보다 여성의 몸에 훨씬 무리가 가기 때문에, 루마니아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오히려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과 그들이 강조해야 할 것이 다르다. 그러나 사실 하고 싶은 말은 같다.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하라는 거다.

레베카 곰퍼츠: 나라마다 상황은 조금씩 미묘하게 다르다. 네덜란드는 임신 22주까지 낙태를 할 수 있다. 14주까지만 허용되는 프랑스, 벨기에, 독일보다는 낫다. 그러나 포르투갈에서는 포르투갈에 살지 않는 여성들까지도 정부에서 낙태 비용을 제공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미등록 이주민이거나 난민일 경우 정부에서 돈을 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여성들이 돈이 없어서 우리에게 연락을 한다.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전선이 조금씩 다르다.

이민경: 맞다. 프랑스 활동가들은 22주까지 주수가 늘어나길 바라기 때문에 네덜란드를 롤모델로 생각한다.

레베카 곰퍼츠: 그러나 네덜란드에는 낙태 시술을 하는 의료기관이 너무 적다. 3개 지역(province)에는 아예 낙태 의료기관이 하나도 없다. 내가 자란 질랜드에도 낙태 의료기관이 전혀 없다. 아주 먼 지역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 사는 15살짜리 여자 아이가 임신을 해서 2~3시간이 넘게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한 번도 간 적 없는 큰 도시로 낙태를 하러 가는 걸 상상할 수 있나? 그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은 프랑스가 더 낫다. 그냥 일반 약국에서 낙태약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위민 온 웹’ 팀을 소개해달라. 몇 개 국어로 제공되고 있나? 몇 명이서 활동하는가?

레베카 곰퍼츠: 처음 ‘위민 온 웹’이 시작될 때부터 즉각적으로 5개 국어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그리고 폴란드어였다. 다른 수많은 나라에서 낙태가 금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태국, 인도네시아, 아랍, 베트남 헬프 데스크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의 요청이 오면서 2015년에 한국 헬프 데스크를 만들게 됐다. 현재 우리 팀에는 한국인 헬프 데스크 직원 두 명이 있다. 내 생각에는 한 명 정도가 더 필요한 것 같다. 한국으로부터 오는 이메일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인원이 추가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만약 누구라도 관심이 있다면 연락달라. 사실 일도 그렇게 많지 않다(웃음). 전 세계적으로 22개 헬프 데스크가 있고, 17개 언어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12명 정도 인원이 두 개 혹은 더 많은 언어를 사용해 모든 이메일에 답하고 있고, 한 달에 1만 개 이상의 이메일이 온다. 모든 과정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다.

헬프 데스크 직원들은 두 달 간 훈련을 받는다. 의사의 감독 하에 일하는 경력 직원들이 신입 직원을 훈련시킨다. 낙태약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기본 지식이 담겨 있는 훈련 매뉴얼이 있다. 약의 성분, 부작용, 생리, 성병 등등 모든 정보가 있다. 이 매뉴얼을 기반으로 시험을 쳐서 모든 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이 훈련 과정은 매우 엄격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지만 강한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많은 직원들이 오랫동안 ‘위민 온 웹’에서 일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일은 정말로 정신적인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정말 훌륭한 여성들이고, 대단한 팀이다. 사실 남자, 정확히는 소년도 한 명 있다. 시리아에서 몇 년 전 전쟁을 피해 망명한 소년인데 그의 어머니가 아랍 데스크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아들도 함께 하게 됐다. 지금 22살인데 여성의 권리에 매우 헌신적이다. 이런 팀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전세계에 구축된 핫라인에 장난전화나 위협, 협박이 오지는 않는가? 한국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할 일인데.

레베카 곰퍼츠: 우리는 언제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의 이메일을 받는다. 그래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일부 사람들은 우리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몇몇 몹쓸 이메일이나 전화가 오기도 하지만, 현실은 결국 도움이 간절한 건 여성들이다. 나는 한국에서 핫라인을 만들어도 똑같을 것이라고 본다. 낙태 이슈에 대해 너무 강한 감정을 갖고 있는 나머지 실제로 전화를 걸어서 욕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안전한 낙태를 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런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낙태약을 먹는 걸 막으려 드는 몇몇 극단주의자들보다 실제로 당장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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