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넷플릭스: 데이팅 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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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넷플릭스: 데이팅 라운드

신한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유성애자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매력적이고 믿을 만한 사람과 로맨틱한 관계를 시작하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솟아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스물두살이 그랬다.

사회의 압력 때문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전체가 여자와 남자 둘이 붙어 있으면 전부 이성애와 연관시키고, 연애 못하면 무조건 루저 취급하는 이성애 집착 사회였던 건 10대 때도 스무살에도 스물한살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때는 그다지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매체가 이성애 연애 타령을 하는 와중에 아무 생각도 욕구도 없는 내가 이성애자는 맞는지, 유성애자는 맞는지 고민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연애가 하고 싶은 것이다. 성적인 욕구 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로맨틱한 관계, 독점적인 관계, 내가 아직 해 본 적 없는 그런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스스로가 유성애자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호르몬 때문일까? 심리적으로 외로웠던 걸까? 그냥 우연이었을까?

일러스트 이민

미지의 세계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연애는 너무 미지의 세계였다. 친구는 친구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인데, 모르는 사람이지만 연애를 할 가능성이 있는 ‘연애 예비군’은 어디서 갑자기 생겨나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소개팅’을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이렇게 하는 거구나!

물론 그렇게 하는 방법만 있는 건 아니었다. 6개월 간 5명과 소개팅을 해 본 끝에 나는 소모되고 지치고 이성애자가 아닌 거 같다(즉 남자는 연애 대상으로 안되겠다)라는 결론만 내렸다. 결과적으로 내가 연애를 하기로 결정한 사람은 친했던 대학 선배였고 우리는 7년 간 연애를 했다.

어쨌든 연애에 대한 의지만 있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전혀 몰랐던 때, 소개팅은 좋은 수단이었다. 예기치 못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됐다. 내가 원했던 연애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지, 어떤 대화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어차피 성공적인 연애라는 건 SNS에 자랑할만한 일들이나 각종 상업적인 기념일을 챙기는 것과 크게 상관이 없다. 나도 몰랐던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연애의 주요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얼리티쇼 <데이팅 라운드>의 주인공도 연애할 상대를 찾아 소개팅을 한다. 이 버라이어티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한 명이 5명의 상대와 각각 ‘첫번째 데이트’를 한다. 그들은 데이트 당일에 처음 만난 사이다. 데이트 코스는 비슷하다. 1차는 식사, 2차는 간단한 차나 술. 어떤 상대와는 2차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상대와는 3차로 집까지 바래다주며 산책을 할 수도 있다. 상대에게 매력을 발견할수록 데이트는 길어지고 즐거워진다. 에피소드 마지막에 주인공은 5명 중 한 명을 선택해 ‘애프터 데이트’를 한다.

남의 연애
구경하는 즐거움

연애 중 가장 재미있는 건 남의 연애라고 하던가. 우리는 ‘전지적 시청자 시점’에서 그들의 데이트를 구경할 수 있다. 마지막에 누굴 선택할 것인지 추리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친한 친구 여러명이서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각자 ‘미는 커플’이 다르면 열띤 토론을 벌일 수도 있다. 데이트 중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상대에겐 “저 사람 왜 저래?!” “넌 완전 아웃이야!!”라고 함께 화를 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남의 데이트를 5개씩 7화나 보면 질리지 않을까? 연애란 게 비슷비슷한 거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취향부터 완전히 다르다. <데이팅 라운드> 시즌1에 등장하는 주인공 7명은 이성애자 백인 남성, 이성애자 아시안 여성, 이성애자 백인 여성, 동성애자 아시안 남성, 동성애자 흑인 여성, 이성애자 백인 노인 남성 등 정체성이 다양하다. 그들의 데이트 취향과 대화 내용은 아주 다르다.

물론 연애 상대를 구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어떤 점은 비슷하기도 하다. 모두들 소개팅을 전전하던 때의 나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얘기하고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게 무엇인지 점차 찾아간다. 편안하게 장난칠 친구 같은 상대인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섹시한 상대인지, 아주 다른 인생을 보낸 흥미로운 사람인지, 인생에 대한 관점이 비슷한 상대인지.

솔직히 나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이 주인공인 1화가 정말 재미없었다. 결말, 그러니까 최종 선택한 상대도 너무나 뻔하고, 데이트를 5번 하면서 주인공의 매력은 전혀 알 수 없었고 상대방 여성들의 매력과 개성만 잘 알게 됐다. 그냥 이 프로그램의 포맷에 대한 감을 잡는 역할만 했던 것 같다. 스킵해도 문제 없다. 나머지 편은 각각 다른 재미가 있었다. 특히 레즈비언이 주인공이었던 편이 가장 흥미로웠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 정도만 이야기하자. 넷플릭스에서 <데이팅 라운드> 시즌1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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