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정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눈 이번 세션은 지난 총선 결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양한 수치를 통해 한국 여성의 정치참여 환경에 대해 파악하고, 이어서 지난 19대 국회가 여성 관련 입법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 먼저 알아봤다.
“20 / 51 / 17”
4.13총선을 돌아보기 위한 숫자들
지난 총선 결과를 두고 많은 언론들이 다음과 같은 보도를 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모두 포함해 51명, 여성 당선자 비율은 17.0%로 역대 선거 중 가장 높았다.”
20대 국회의 여성의원 당선인 수는 최초 여성 당선인이 나온 2대 국회 때보다 25배 이상 늘었다. 또 직전 19대 국회와 비교해서는 4명 늘었다.
여성 당선인은 지역구 26명(더불어민주당 17명, 새누리당 6명, 국민의당 2명, 정의당 1명), 비례대표 25명(새누리당 9명, 더불어민주당 7명, 국민의 당 7명, 정의당 2명)이 당선되어 전체 비율은 17%로 역대 최대 수치다.
그러나 국제의원연맹 회원국의 평균 여성의원 비율은 22.7%로 우리나라보다 5.7%포인트 높다.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경우 거의 남녀동수에 가깝다. 한국의 여성의원 비율은 작년 여름기준 111위로 일본에 비해서는 조금 높지만 북한과 동일한 순위다.
17%. 역대 최다라고 즐거워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껏 국회가 얼마나 남성에 치우쳐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지방 당선자 중 여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서울 16명, 경기 7명, 광주·전북·경북 각 1명이 당선되었다. 다른 지역은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애초에 지역구 여성 출마자는 남성 출마자의 8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 중에서도 4분의 1 을 조금 넘는 26명이 당선된 것이다.
이어서 지난 19대 국회의 여성 관련 입법 성과와 한계를 잠시 돌아보았다. 주요 성과로는 양육비 관련, 양성평등기본법 제정, 여성폭력 관련 정책 개정 등이 있다.
특히 2012년도에 여성폭력 관련 정책이 대폭 개정되는데, 이는 국회에서 18명으로 만들어진 특위회를 구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회 내에 여성이 들어가고 특위를 구성하자 법률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점에서 이 인과가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중요하다.
동시에 여전히 계류 중인 법안들도 많다. 예를 들어 스토킹 처벌에 관한 건은 2012년도부터 2013년, 2015년에 연속해서 나왔으나 아직도 계류 중이다. 2012년 발의된 인신매매방지 법안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국회 비준이 되었다.
‘정치인’ = 5-60대 남성?
‘55.5’ ‘남자’ ‘해외 명문대 출신’ ‘변호사, 의사, 기업가, …’ ‘자산 보유액 XX위' …
현재 국회의원들의 평균 연령, 성별, 이전 직업 등을 조사해보면 많은 것이 드러난다. 지난 총선의 경우 여성 비율이 늘고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당선되었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정계에 입문한 연령을 살펴보면 50대가 대부분이다.
“어릴 때 ‘나이 많고 양복 입은 할저씨’가 정치하는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저들이 모르는 삶이 너무 많다.”
“대한민국은 5-60대 남성에게만 결정할 권한을 준다. 그런데 사실상 그들이 제일 낡은 관점에 빠져있지 않나. 다양한 이익집단을 대변해야 하는데 한 가지 색깔로만 계속 덮이고 있다.”
여성 의원 당선 수가 늘어나고, 청년 비례대표도 더 많이 당선되기 시작했으니 점점 나아지고 있는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점이 있다.
“여성 의원들이라며 얼굴이 나오는데, 추미애, 심상정, 진선미, … 다 이런 분들이더라. 아무리 여성이 많아졌어도 그 중 젊은 여성은 아직도 정말 없다. … 또 여성의원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심상정 의원이 군대 문제 생겼을 때 군복 입고서 군대에 방문하는 모습이 너무 황당했다. 아니면 김을동 같은 사람이 있다.”
“청년 정치인이라고 했을 때 나오는 사람들은 조성주, 이준석… 전부 남성이다. … 조은비씨 같은 경우는, 대중과 보수 정당이 어떻게 청년 여성 정치인을 소비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 총선 끝난 직후 열린 여성의원 집담회에 갔던 참여자가, 여성의 입장에서 이번 총선을 분석한 이야기를 공유해 주었다. 자리에는 녹색당의 김주온, 더민주 남영희, 정의당 김정은, 장하나 의원 등 젊은 여성 정치인들이 있었다.
“ 이번에 새누리당 비례대표에서 순번제가 깨진 부분에 대한 문제점을 많이 이야기하셨고, 남녀동수제를 왜 제안하지 않는지, 30%까지만 여성을 의무적으로 넣자는 게 소극적이라는 반응도 많았다.”
“생각치 못한 부분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대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는 거였다. ‘여성이 과연 여성 정치를 위해 여성 정치인을 뽑는가?’에 대한 질문도 많이 나왔다. 당에서는 단순 의석 확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여성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에 나선다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청년이나 여성이 대표성을 가진 후보로 나올 수 있으려면 정당 내에서 청년이나 여성이 조직화되어 있고 이익집단화되어있어야 하는데, 일단 당내에 이를 받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성 정치인 되기
(1) 여성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야 해
참가자들은 클린턴과 트럼프의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드러나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H는 클린턴에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언론의 지적 또한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후보에게 ‘자꾸 왜 이렇게 웃느냐’, ‘손녀 학예회 가서 보일 법한 미소를 보이느냐’ 하는 식으로 비판한다. 어떨 때는 클린턴이 너무 다가가기 어렵고 딱딱한 이미지라며 욕하더라. 웃으면 웃는다고 난리, 안 웃으면 안 웃는다고 난리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수사가 무색하게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투사해 당선이 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간과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실언이나 실정을 할 때는 ‘여성'이 되어 욕을 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여성 및 여성 정치인들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는 의견이 나왔다. 남성 정치인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위협적 존재나 경쟁 상대로 전혀 느끼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공격도 적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클린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여성 정치인은 카리스마와 결단력이 요구되는 동시에 여전히 ‘친절하고 상냥한' 여성스러움도 함께 요구 받는다. 이중적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정치권에서 청년이나 여성에 씌우는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