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을 혐오한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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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을 혐오한 남자들

김다정

미국의 제 45대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패배했다. ‘똑똑한 여성 대통령’을 견딜 수 없는 백인 남성의 표가 집결한 결과였다.

그러나 국내 언론과 정치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클린턴의 패인을 분석했다.

버니 샌더스였다면 이겼을 것이다

몇몇 기사에서는 민주당의 또 다른 대통령 후보였던 ‘남성’, 버니 샌더스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두드러졌다.

“올 초부터 클린턴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겨루던 샌더스는 자신이 본선 경쟁력은 더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건 사실이었다. 공화당 후보로 예상되는 트럼프를 상대로 한 본선 예측 조사에서 샌더스는 늘 10퍼센트를 한참 웃도는 압도적 우위를 보인 반면 클린턴은 아슬아슬한 모습이었다.

결과론이지만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도널드 트럼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또 이미 수많은 언론이 전한 평가들처럼 그녀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미국이나 세계의 미래를 위해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2016.11.10, 프레시안)

프레시안은 ‘美 민주당, 샌더스 주저앉히더니 꼴좋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샌더스가 본선 예측 조사에서 우위를 보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클린턴이 애초 도널드 트럼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는 깎아내리기도 서슴치 않았다.

한편 이재명 성남시장은 입장문을 통해 "트럼프의 승리라기보다는 힐러리의 패배다. 민주당 후보가 버니 샌더스였다면 승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웃사이더’의 승리다

또한 이번 대선을 ‘기득권 정치인’ 클린턴과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대결로 해석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국내 주요 언론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며 이번 대선의 핵심 요인인 여성혐오를 지웠다.

트럼프 승리의 중요 원인… ‘기득권 힐러리’ (2016.11.10, 헤럴드경제)
앵그리 화이트의 정치변화 갈망, 대이변 이끌었다 (2016.11.10, 연합뉴스TV)
트럼프 성공 이유는?…기성 정치를 향한 '분노' (2016.11.10, TV조선)
‘잘나가는 엘리트’ 클린턴 기득권 이미지 거부감 컸다 (2016.11.10, 중앙일보)
"트럼프 승리로 '워싱턴 정치'는 탄핵당했다" (2016.11.10, 프레시안)

트럼프는 공직 경험이 없다는 것에서 ‘정치적 아웃사이더’다. 하지만 그 맥락을 배제한 채 국내 언론은 그를 서슴없이 그저 ‘아웃사이더’로 불렀다. 그래서 트럼프의 승리는 오히려 일부 정치인들에게 언더독의 승리로 감명을 준 모양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정치적 경력을 제외하면 제 1세계의 기득권 핵심층에 속하는 부유한 백인 남성이다. 그의 어디가 아웃사이더의 반란이자 승리로 읽힌다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이뤄낸 대이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더불어민주당
“기존 워싱턴정치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는 기존 정치권에 반성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 “미국국민들이 민생과 괴리 돼 기득권이 되어 버린 낡은 정치를 심판한 것이다.” - 국민의당
"기존 질서에 대한 분노로 미국민은 강한 변화를 선택했다." -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아웃사이더 민란군이 백악관을 점령했다. 제도권 주류사회의 카르텔을 민초들이 균열을 냈고 트럼프가 그 중심에 섰다.” -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양극화와 기득권층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미국식 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표현되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클린턴이 획득한 표 깎아내리기

출구조사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은 흑인 유권자의 88%, 라틴계 유권자의 65%, 그리고 여성 유권자의 54%에 달하는 표를 획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은 그의 성취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뉴스1은 ‘클린턴 무엇이 잘못됐나…흑인·라틴계·젊은층 표심 놓쳐’라는 기사를 통해 클린턴의 유색인종 표를 굳이 오바마 대통령의 득표 비율과 비교했다.

흑인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 당일 아침까지 88%가 클린턴에 한 표를 행사했다.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대통령 당선인)에 표를 내준 흑인은 8%에 불과했다. 물론 이 80%포인트(p)도 엄청난 격차긴 하다. 하지만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트 롬니 당시 공화당 후보에 승리를 거뒀을 때보다는 상당히 낮은 수치다.

라틴계 유권자는 어떨까. 이번 대선에서 라틴계 유권자들은 65%가 클린턴에, 29%가 트럼프에 한 표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겉으로 보기엔 클린턴의 압승으로 보인다. 하지만 4년 전 오바마 대통령은 라틴계 사이에서 75%의 득표율을 보였기 때문에 클린턴은 오바마 대통령에 비해 10%p나 부족한 득표율을 얻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2016.11.10, 뉴스1)

뿐만 아니라 뉴시스는 아예 트럼프의 당선 핵심 요인을 ‘여성표’라고 분석한 닛케이의 보도를 인용했다. “클린턴은 54%로 트럼프 보다 여성표를 많이 받았지만, 두 후보 간의 여성표 격차는 대선 결과를 좌우할만큼 결정적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4%p의 차이는 유권자의 수로 환산하면 약 249만표다.

“조금만 더 젊었을 때 나오지”

클린턴 후보의 외모와 나이에 대한 언급도 역시 빠지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뜬금없이 ‘성형’ 이야기를 꺼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지난해 4월 유튜브를 통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유권자들의 입길에 올랐다. 깊이 파인 주름살과 늙은 외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클린턴의 선거전략이었다. 2008년 대선 도전 당시 까칠하고 매몰찬 이미지가 패인 중 하나였다는 분석에 따라 이번엔 보톡스를 끊고, 연륜 있는 ‘국민 할머니’로 변신을 꾀했다는 것이다. (2016.11.09, 경향신문)

뿐만 아니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9일 밤 방송된 <JTBC 특별대담>에서 "힐러리가 좀 더 젊을때 나왔으면 나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요소가 없다곤 말을 못해요"라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했다. 남성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는 진행자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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