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도넛맨이 누구야?
모두가 도넛맨이 누구인지 묻는다. 그 중에는 이런 질문도 있다. 크리스피크림 출신인가, 아니면 던킨도넛츠 출신인가? 이렇게 묻는 이유는 정말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음악을 하는지, 혹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 5>에서 탈락하며 빠른 속도로 잊혀진 그가 이제 와서 (특정 SNS에서만)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것이 그의 랩 실력이나 음악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약간 서글프기까지 하다.
래퍼 도넛맨이 갑자기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은 그가 SNS의 한 게시글에 단 답글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도 호출하지 않은 대화에 뜬금없이 끼어들어 여성,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 혐오로 점철된 답글을 연이어 달았다. 또, 이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자신의 계정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여성, 사회적 약자 혐오 발언에 대해 비판하는 (대부분 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우리 음악 듣지마’라고 말하는 것, 그가 말하는 ‘우리 음악'이 무엇인지는 그의 옷차림으로 가까스로 추정할 수 있지만 그가 그것을 ‘우리 음악'이라 부를 정도로 깊은 소속감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무도 그에게 아이돌 이야기를 꺼낸 적 없는데 먼저 나서 ‘아이돌 그룹 상품들이나 많이 사줘’라고 대응하는 것.
안타깝게도 도넛맨이 남긴 회심의 트윗은 그가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국힙'이 진정성을 증명하는 방식
도넛맨의 태도는 여성이 ‘힙합’을 들을리가 없다는 편견과 젊은 여성이 소비하는 대중 문화에 대한 무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다. 그리고 이는 현재 한국 힙합씬의 많은 래퍼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정신’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국힙’으로 불리는 한국 힙합씬에서, 방송에 출연하거나 대중성을 좀 더 고려한 음악을 만드는 것을 ‘오버그라운드’로 구분하고 그렇지 않은 음악을 ‘언더그라운드’로 구분하여 대립 구도를 형성코자 하는 기묘한 경향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논쟁은 항상 힙합의 ‘진정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을 하는 래퍼들은 ‘실력이 없다’거나 ‘진짜 힙합이 아니다’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최근 힙합이 국내 대중음악산업에서 주류 장르로 떠오르면서 언더와 오버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실력있는 래퍼들이 대거 방송에 진출했고, 언더 힙합씬에서 인정을 받는 이들이 음원을 발표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국힙’은 K-POP 열차에 탑승하였고 이제 랩퍼들에게 ‘오버'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 되었다. 이 시장에 발을 한 번이라도 담그냐 안 담그냐 여부가 이후의 먹고 사는 문제를 너무 크게 좌우한다. 랩퍼도 사람이니 먹고는 살아야 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동안 암암리에 오버를 손가락질 하던 형님들도 대부분 브라운관으로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오버와 언더를 전처럼 칼로 무 베듯 명확하게 가르기 시작하면 인지부조화가 와 버린다. 그럼 이제 한국 힙합의 진정성은 어디에서 찾나?
이를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아이돌 래퍼’와 ‘진짜 래퍼’ 구분짓기다. 아이돌 그룹에 소속되어 있으나 힙합 음악을 하는 멤버가 ‘아이돌 래퍼’로 그룹지을 수 있을만큼, 그리하여 가시적으로 차별할 수 있을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탈-아이돌급' 래퍼되기
아이돌 래퍼는 한 때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래퍼에게 쏟아졌던 비난에 더해, ‘여성팬들의 비위 맞추기’에 대한 남성들의 비아냥까지 함께 감수해야만 한다. ‘진짜 래퍼’ 형님들이 인정하는 그들의 ‘관객’과 ‘리스너’에는 여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힙합에서 젊은 여성이란 대체로 가사 속에서, 또는 애프터파티에서 래퍼에게 ‘오빠 멋있다' 라 말하며 안겨오는 가슴과 엉덩이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젊은 여성이 주체성을 가지고 힙합을 인정하고 소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을 용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그것이 바로 ‘아이돌이 하는 짓’이 된다. 도넛맨이 ‘가서 아이돌 그룹 상품이나 사라’고 이야기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발언이다.
이런 ‘국힙’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으며, ‘진짜 힙합’이 하고 싶은 아이돌 래퍼들은 그래서 꾸준히 이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힙합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 혹은 ‘탈아이돌급 래퍼’가 되기 위해 아이돌 래퍼들은 ‘남자 래퍼’ 혹은 ‘남성팬’에게 익숙한 음악을 만들어 내며, 거리낌없이 여성을 후려친다. 문제는 그러한 음악과 가사에 대상화 등을 포함한 여성혐오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는 것이다.
위너의 송민호가 <쇼미더머니 4>에 출연해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랩을 한 것도, 몬스타엑스의 주헌이 굳이 여성 혐오적인 가사로 널리 알려진 블랙넛의 피처링곡으로 믹스테잎을 발표한 것도, 그리고 빅스의 라비가 솔로 힙합앨범을 발표하며 자연스럽게 뮤직비디오에 속옷 차림의 여성들을 양 옆에 둔 장면을 집어넣은 것도 전부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진짜 래퍼’로 인정을 받기 위한 과정에서 실제로 그들의 랩 실력이 어떤가는 중요하지 않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의 모든 래퍼가 아이돌 래퍼보다 랩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 힙합’이 아이돌 래퍼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는 방식이 남성 래퍼와 남성 리스너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래와 무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진짜 래퍼’로 인정받는 과정속에서 국힙의 여성혐오는 점점 공고해진다.
아이돌 그룹 상품을 사자
그래서 사실 ‘아이돌 그룹 상품이나 사라’는 도넛맨의 조언은 정말로 새겨 들을만한 조언이다.
실제로 아이돌 래퍼의 경우 여성팬들의 요구가 그들의 수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여성의 피드백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아이돌 래퍼는 적어도 여성팬의 눈치를 보거나, 피드백을 해주거나 혹은 잘생기기 위해 외모를 열심히 꾸며주기라도 한다. 다수의 래퍼가 여성 혐오적 발언을 하고 그에 대한 비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거나 혹은 더 나아가 이를 지적하는 여성을 모욕하는 것보단 정말 훨씬 낫다.
실제로 ‘아이돌 래퍼’인 빅스의 라비는 솔로앨범을 발표하며 공개한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에 여성 혐오 및 상품화 장면에 대한 지적이 있자 해당 부분을 빠르게 삭제했다. 소속 엔터테인먼트의 공식적인 피드백도 있었으며, 라비 자신도 개인 계정을 통해서 어떠한 변명도 없이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도넛맨이 ‘아이돌 그룹 상품이나 사라’고 조언한 바로 다음날 말이다.
그러니 도넛맨의 싱글앨범이, ‘국힙’이 안 팔리는 것은 아이돌 래퍼가 진정성 없는 힙합을 해서, 여성팬들이 아이돌 음악만 들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다. 힙합을 죽게 만드는 것은 한국힙합이 진정성을 위해 투쟁하는 방식, 그 속에 녹아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것이 공고해진 체계일테다.
참, 참고로 도넛맨은 ‘아이돌 상품’ 라비의 믹스테잎에 피쳐링을 한 적이 있다. 그냥, 그렇다고.